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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야사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역사

천년의 야사

소장전자책 정가5,000
판매가5,000
천년의 야사 표지 이미지

천년의 야사작품 소개

<천년의 야사> 1934년 10월 창간되어 1939년 10월 통권 제55호로 종간한 월간 야담전문잡지에 연재한 윤백남의 야담을 한 권으로 엮었다. 『한문야담집』·『삼국유사』, 역사서 소재의 이야기, 중국의 야담·사담(史談) 등이 대부분 소재로 흥미위주의 읽을거리들로 채워져 있다. 윤백남의 창간호 권두언에 흥미위주의 편집 목적을 “얄팍한 현대문명으로서 두툼한 조선 재래의 정서에 잠겨보자. 그리하야 우리의 이저진 아름다운 애인을 그 속에서 차저보자.”라는 추상적인 말로 드러냈다.
《천년의 야사》는 윤백남이 남긴 야담 중 <안류정 (安流亭)의 노옹> ,<경벌포의(警罰布衣)>,<괴승신수(怪僧信修)>,<후백제비화(後百濟秘話)>,<적괴유의(賊魁有義)>,<투환금은(偸煥金銀)>,<사각전기(蛇角傳奇)>,<초췌연화편(憔悴蓮花片)>,<이식과 도승(道僧)>,<순정의 호동왕자>,<정열의 낙랑공주>,<홍윤성과 절부>,<보은단 유래>, <우연의 기적>, <원수로 은인>,<장마가 실어온 발복> 등 총 15편이다.


출판사 서평

야사, 천년의 역사 속 숨은 이야기
개화기 영화 제작자 겸 극작가, 소설가, 영화감독 윤백남이 남긴 야담집

《천년의 야사》는 저자 윤백남이 전문 야담잡지 《월간야담(月刊野談)》에 연재했던 소설 중 총 16편을 선별해 전자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개화기 콘텐츠 창작자 겸 제작자인 윤백남과 대중이 어떻게 소통했는지 당시 독자들이 무엇에 흥미와 관심을 느꼈는지, 그리고 여가시간에는 무엇을 읽고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했는지를 상상해볼 수 있다.

텔레비전, 컴퓨터, 모바일 등 과학의 발전은 다양한 디바이스의 발전을 이끌고, 대중의 욕구는 영화, 드라마, 웹소설, 웹툰,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가 생산 및 유통되는 현재를 만들어냈다.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로 곤란을 겪는 현대인과는 달리 정치·경제 그리고 사회적으로 궁핍하고 암울했던 1934년, 대중은 무엇을 보고 듣고 즐겼을까? 당시의 콘텐츠 창작자들은 대중과 어떻게 소통했을까?
1934년 10월 창간한 야담 전문잡지 《월간야담(月刊野談)》는 설화, 항간에 떠돌던 궁중 비화나 정치 뒷이야기 따위를 엮었는데 일반 대중에게 쉽게 통할 수 있는 역사 일화나 야담을 소재로 흥미 위주의 소재를 골라 엮고 중국소설의 번역물을 실었다. 1934년 10월 창간해 1939년 10월까지 통권 55호까지 발행했으며 윤백남을 비롯해 김동인, 방인근, 양백화, 윤효정 등이 집필자로 참여했다.
윤백남은 창간호 권두언에서 “얄팍한 현대문명으로서 두툼한 조선 재래의 정서에 잠겨보자. 그리하야 우리의 이저진 아름다운 애인을 그 속에서 차저보자.”라는 말로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흥미 위주로 잡지임을 드러냈다. 《천년의 야사》는 당시 일반 대중들이 흥미를 느낀 읽을거리와 전설, 설화, 야담 등을 느긋하게 읽어볼 수 있는 시간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통속적이지만 흥미진진한 야사,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안류정 (安流亭)의 노옹 : 조선 후기 영조 때의 문신 이종성이 훗날 작위를 박탈당한 숙의 문씨가 꾸민 음모를 밝혀낸다.
●경벌포의(警罰布衣): 손생원은 동문수학했던 유생이 함흥에서 감사가 된 소식을 듣고 먼 길을 떠난다. 함흥으로 가늘 도중 산적괴수가 된 양생과 조우한다. 양생에게 후하게 대접받은 손생원은 함흥감사가 된 친구 유생을 찾아가 도적을 토벌하겠노라 병사를 빌려 산채를 찾아가지만 양괴수에게 붙잡힌다. 양괴수는 의리와 은혜를 잊은 손생원을 풀어준다. 빈손으로 집에 돌아온 손생원은 양괴수가 산채에서 보내준 금은보화 앞에서 후회한다.
●괴승신수(怪僧信修): 고려 말, 괴승 신수가 가난한 부부를 만난 후, 세속의 비난과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신수와 부부 간에 기이한 인연을 맺는다.
●후백제비화(後百濟秘話): 백제 멸망 후, 망국의 설움을 지닌 견훤의 성장 일화와 후백제 건립 비화를 담았다.
●적괴유의(賊魁有義): 홍건적 괴수 장해림과 고려 문신이었던 하상유, 그리고 강부인의 이야기이다.
●투환금은(偸煥金銀): 조선 연산군 때 한치형의 문인이었던 조성산은 갑자사화로 한치형이 죽자 그 외아들을 거둔다. 벼슬살이에 나선 한가는 넉넉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조성산의 궁핍을 모른 체한다. 조성산은 우연히 인연을 맺은 녹림객의 도움으로 큰 부를 이룬다.
●사각전기(蛇角傳奇): 김의동은 부원군 신수근의 노복이었지만 도망 나와 봉표사의 마부가 된다. 사신 일행을 따라 대국을 따라간 김의동은 우연히 수백 년 묵은 뱀의 뿔을 구해 큰 부를 이룬다.
●초췌연화편(憔悴蓮花片):고려 충선왕은 원나라 공주를 잊지 못해 번민한다. 이익재는 사직을 위해 왕에게 원나라 공주를 잊도록 충언한다.
●이식과 도승: 조선 인조 때 문신 이식과 도승 간의 특별한 사제의 인연을 담았다.
●순정의 호동왕자: 낙랑공주를 잃고 권력을 둘러싼 암투에 지친 호동왕자는 낙랑공주의 무덤을 찾아가 죽음을 맞는다.
●정열의 낙랑공주: 낙랑공주는 호동왕자를 위해 낙랑군의 신기인 북과 나발을 없애고 아버지 최리에게 죽임을 당한다.
●홍윤성과 절부: 조선 전기, 문관 홍윤성은 홍계관의 말대로 수양대군에게 발탁된 후 공을 세워 영의정까지 오른다. 다만 흉악하고 난폭한 성정을 바꾸지 못하면 후사가 없으리라는 홍계관의 예언도 이루어진다.


저자 프로필

윤백남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888년 11월 7일 - 1954년 9월 29일
  • 학력 와세다대학교 정경과
    경성대학교 학사
  • 경력 극예술연구회 대표
    매일신보, 동아일보 기자
    민중극단, 문예영화협회 창단

2017.05.2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윤백남(尹白南,1888.10.4~1954.9.29) 소설가, 극작가 겸 연극 영화인
본명 교중(敎重). 충남 공주(公州) 출생. 1910년 도쿄 고등상업학교를 졸업, 1909년에 귀국한 후 〈매일신보〉 기자로 근무하며 극단 문수성(文秀星)에 참여해 연극활동을 했다. 1919년 〈동아일보〉 기자로 자리를 옮긴 후 본격적인 문필활동과 함께 1922년 민중극단을 창단했다. 1919년 동아일보사에 입사, 《수호지(水滸誌)》를 번역·연재했고, 한국 최초의 대중소설 《대도전(大盜傳)》을 발표했다. 이어서 월간지 《야담(野談)》을 발간했다. 1922년 예술협회 소속 극단 예술좌(藝術座)에 참여한 데 이어 민중극단을 조직, 신극운동을 전개하였다. 1934년 만주에 건너가 1945년 귀국 때까지 역사소설을 썼다. 6·25전쟁 때는 해군 중령으로 복무, 1953년 서라벌예술대학 학장, 1954년 초대 한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작품으로 《항우(項羽)》 《난아일대기(蘭兒一代記)》 《봉화(烽火)》 《흑두건(黑頭巾)》 《해조곡(海鳥曲)》 《백련유전기(白蓮流轉記)》 《미수(眉愁)》 《낙조(落照)의 노래》 《야화(野花)》 《조선형정사(朝鮮刑政史)》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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