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커상 수상 작가의 독보적인 장편 데뷔작
도덕과 퇴폐가 공존하는 여름의 런던,
젊음과 특권과 사랑을 모두 누리던 그가
맞닥뜨려야 했던 어둡고 잔혹한 현실
★ 서머싯몸상, 스톤월 도서상, E.M.포스터상 수상작 ★
“역사적인 소설, 역사적인 데뷔.”
―『가디언』
2004년 부커상을 수상한 『아름다움의 선』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알려진 작가 앨런 홀링허스트의 “역사적인 데뷔작” 『수영장 도서관』이 ㈜창비에서 출간됐다. 에이즈의 유행과 맞물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극도로 악화되었던 대처 수상 집권 말기인 1988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영국에서 처음으로 남성 동성애자들의 적나라한 성애와 생활을 주류 문학계 안으로 끌어오며 일대 센세이션을 낳았고, 영국과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전까지 B급 하위문화의 한 장르로 취급받던 퀴어소설이 서머싯몸상, 스톤월 도서상, E.M.포스터상 등 굴지의 문학상을 휩쓴 이 작품의 성공에 힘입어 진지한 문학작품으로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뉴욕 타임스』에서는 앨런 홀링허스트를 가리켜 ‘소설의 게이 해방자’라고 표현했다. 2020년 부커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스튜어트는 『수영장 도서관』을 자신의 ‘인생 책’ 중 한권으로 꼽기도 했다.
이 소설에서 최상류층으로 아무 거리낄 것 없이 분방한 생활을 즐기던 젊은 귀족 윌리엄 벡위스가 우연한 만남을 통해 지난 시대 자기 사회의 민낯을 발견해가는 과정은 곧 더없이 탄탄하게 여겨온 자신의 발밑을 허무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편의 추리극처럼 뜻밖의 놀라움을 선사하며 펼쳐지는 중심 이야기를 축으로 격렬한 로맨스와 쓰라린 상실이 섬세하고 예리한 문장, 비틀린 유머와 함께 겹쳐지며 타올랐다 스러지는 청춘의 빛과 그늘을 그려낸다. 제국주의를 지나 신자유주의에 다다르기까지 영국이 나라 안팎으로 저질러온 야만적 폭거, 특권적 지위와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 주인공이 마침내 맞닥뜨리는 현실세계, 자신만의 다른 시간을 써가려 애쓰는 몸짓이 절실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모든 소수자에 대해 지금 우리 사회가 보이는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이 작품의 문제의식은 출간된 지 수십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뼈아프게 유효하다.
‘아름다운 시절’에 재앙처럼 닥친 진실
견고해 보였던 모든 것이 허물어지며 드러난 진짜 세계
1983년 여름, 대처의 보수당 정권이 압승을 거두건 말건, 게이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따갑건 말건 스물다섯살의 귀족인 나, 윌리엄 벡위스는 ‘아주 잘나가는’ 중이다. 전직 검찰총장 조부가 사준 런던의 아파트에서 넘치는 부를 누리며 특정 직업 없이 낮이면 수영과 각종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고 밤이면 클럽에서 새로운 연애 상대를 찾는 생활을 한다. 지금은 얼마 전 만난 열일곱살 흑인 청소년 아서와 사랑에 빠져 동거하며 한창 즐기고 있다. 그러나 이 완벽함의 가장자리로 불길한 기운이 어른거린다.
내가 아서에 대해 감상적인 것은 사실이었다. 몹시 감상적이고 살짝 잔인했다. 어루만지듯 주의를 기울여주다가도 배려심 없이 제멋대로 그를 성적으로 탐했다. 그 관계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우리가 결코 진짜로 함께할 수는 없다는 걸 둘 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17면)
아서는 뜻하지 않게 살인사건에 휘말려 도망자 신세가 되고, 나는 우연한 기회로 나이 든 귀족 찰스 낸트위치를 만나 독특한 우정을 나눈다. 전기를 써달라는 찰스의 청에 따라 그의 일기를 읽으며 나는 같은 학교 동문에 같은 귀족 게이로서 그의 삶에 공감하지만, 한편 찰스와 주변 인물들이 주동해 불우한 청년들을 모아 벌이는 엽기적인 행각을 접하고 혐오와 혼란에 빠진다.
찰스와, 그리고 스테인스도 실제로는 그곳의 종업원들을 다른 데로 유인해서, 본인들이 기름진 쇠고기와 잘 씻은 채소와 삶은 푸딩을 먹으며 교활한 눈짓을 교환하며 고안해낸 환상을 연기시킨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머리가 띵해지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기묘한 거래와 변신이 개입되어 있을 것인가. 이 모든 게 참가자들에게는 정상적이지만 외부인의 눈에는 악마적인 엽기성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324면)
새로운 연인 필과 보내는 다정하고 고요한 사랑의 시간에 스킨헤드족의 끔찍한 폭력과 둘도 없는 친구 제임스의 체포가 끼어들고, 나는 한번도 생각지 못한 낯선 폭력 앞에서 비로소 막강한 현실의 벽을 실감한다. 가장 특권적 지위에 있지만 가장 배척받는 처지라는 자각으로 휘청거리는 나 앞에 찰스가 건넨 새로운 기록물은 상상도 못 했던 충격적 비밀을 드러낸다. 새 연인으로부터, 가족의 과거로부터, 자기 자신으로부터 배신당한 윌, 그가 써내려가는 새로운 시간은 어떤 모습일까.
빛나는 풍자와 세련된 위트로 그려낸
사회와 인간 본래의 복잡성을 응시하는 겹겹의 시선
소설은 여러겹을 지닌 인물들을 여러겹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진행된다. 주인공 윌은 찰스의 과거와 현재를 본다. 독자는 윌이 보는 찰스를 보고, 그를 보는 윌을 본다. 성소수자로서 박해받은 선량한 자선가지만 제국의 식민지 관리였던 찰스는 그 나름의 맹점을 지녔다. 윌은 그런 면을 거부하지만, 스스로 편견에서 자유롭고 아무 거리낄 것 없는 듯한 그 역시 한계는 뚜렷하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낙인과 혐오만큼이나 흑인의 아름다움과 특성에 대한 찰스의 숭배 또한 편견이며, 불우한 10대를 연애 상대로 삼아 그들이 못 누린 것들을 베푸는 윌의 위선적 모습 역시 사회적 편견에 깊이 젖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겹겹의 시선은 사회와 인간 본래의 복잡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일기라는 가장 내밀한 기록 속에 드러나는 세계제국 영국 역사의 치부, 성이라는 가장 사적인 생활에 개입된 계급적 한계가 사회 최상류층이자 최약자로서 찰스와 윌을 통해 구현되면서 소설은 두터운 현실감을 얻는다.
작가 특유의 정교한 구성과 섬세하고 날렵한 문체에 읽는 재미를 더하는 것은 군데군데 숨은 풍자다. 영국 왕위계승 서열을 그대로 따른 주요 인물들의 이름, 저소득층을 상대로 자선을 베푸는 한편 그들을 꾀어 포르노 영화를 찍으며 감상하는 사진가의 이름에 오점, 얼룩(stain)의 뜻이 담긴 점, 아르헨띠나인과 영국의 포클랜드 침략에 관해 대화를 나누면서 윌이 거꾸로 희롱당하는 입장에 처하는 장면 등은 우스꽝스럽게 비틀어 그려낸 사회의 일그러진 면면이다. 『아름다움의 선』에서 “요새 새로 명성을 누리기 시작한 우익의 잘생긴 늙다리 파충류”(335면)로 묘사된 데니스 벡위스가 주인공 윌의 할아버지라는 연결점은 이미 『아름다움의 선』을 읽은 독자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줄 것이다.
제목 ‘수영장 도서관’은 사춘기 소년 윌이 최초로 성적 호기심을 만족시킨 장소를 이르던 은어이다. 학창 시절의 풋풋한 욕망을 상징하는 수영장 도서관은 이후 소설 속에서 윌이 거의 매일 드나드는 클럽 코리의 수영장으로, 찰스의 집 지하에 있는 로마 시대 목욕탕으로 변주되며 다양한 욕망의 장소로 드러난다. 『아름다움의 선』이 1983년 당대를 배경으로 한다면 『수영장 도서관』은 폭을 넓혀 제국주의 시대 영국과 1983년 현재를 교차하며 짜낸 사회적 풍경화다. 또한 무모한 젊음의 빛나는 허랑함이 현실에 부딪혀 스스로의 껍질을 부수고 “나 같은 사람들과의 연대의식”(382면)을 느끼는 지점으로 나아가는 한 개인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80대 찰스와 20대 윌을 통해 드러낸
20세기 영국 게이들의 잔혹사
주인공 윌과 찰스는 출신 학교와 성정체성, 사회적 지위 같은 많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차이로 인해 살아온 모습이 뚜렷이 다르다. 이는 곧 20세기 영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성소수자들이 당해온 부당한 폭력의 역사이기도 하다.
1900년생으로 “[20]세기와 같이 나이를 먹는”(383면) 인물인 찰스는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1901)이 죽기 한해 전, 곧 빅토리아 시대가 최고조에 달한 시기에 태어난 인물이다. 동성애에 대한 영국 사회의 태도라는 관점에서 보면, 영국 동성애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자 빅토리아 시대의 성격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1885년의 라부셰르 개정법 통과 이후이다. 그전까지는 광범위한 동성애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 처벌의 법적 근거가 분명하지 않았다면, 공적·사적인 모든 동성애 행위를 범죄로 간주한 이 법의 통과 이후 영국에서는 좀더 체계적이고 당당하게 소수자인 동성애자들을 박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법으로 인해 오스카 와일드를 비롯한 많은 동성애자가 무자비한 탄압의 희생자가 된 것은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법의 엄격한 적용으로 법 제정 이래 80여년 동안 동성애자들은 단지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나눈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필요에 따른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생애의 대부분을 식민지 관리로 보낸 귀족 찰스 역시, 그 신분과 지위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1950년대 초 이 법에 따라 재판을 받고 징역형을 살게 된다.
반면 1958년생인 윌리엄은 1950년대 함정수사에 의한 마녀사냥식의 법집행에 대한 반동으로 라부셰르법의 적용이 느슨해진 시기에 나서 자랐다. 1950년대 초반의 강력 단속 이후 대두한 여론 덕분에 1957년에 이 법의 완화를 권고하는 울펜든 보고서(Wolfenden Report)가 작성되었고, 1967년에는 21세 이상 성인 간의 사적인 동성애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 새로운 성범죄법이 제정된 것이다. 물론 이성 간 성행위의 법적 허용 연령에 비하면 이 법 역시 10대 후반 청년들과 관련한 성행위에 가혹한 법이었고, 어디까지가 사적 성행위인지에 대한 규정이 모호해서 동성애자 탄압은 정치권의 필요에 따라 지속되었다. 특히, 이 소설의 배경인 1983년 이후에도 빅토리아 시대를 방불케 하는 동성애자 마녀사냥이 부활한다. 1984년 무렵 시작해서 10여년 이상 계속된 에이즈 유행을 빌미로 대처의 보수당 정권이 집권 3기인 1988년에 공공기관에서 동성애 장려활동 금지를 규정한 법안 ‘섹션 28’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이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그 이면에 자리한 혐오와 차별의 뿌리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