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수녀들 : 선리 대저택, 수녀원의 악마, 심연으로부터, 시스터 막달레나, 발리 그랜지의 망자, 어느 수녀의 비극|오컬트 연대기(단편선)
작품 정보
이 단편집은 고딕 작가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문학의 층위와 해석의 다양화에 기여한 수녀들의 이야기다. 초기 고딕 소설과 비교해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수녀들은 조금 다르다. 종교의 틀에서 조금 멀어지는 대신 그로테스크와 멜랑콜리에 가까이 가 있다고 할까...... 우선 작품 전반에 수녀원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은 「심연으로부터」, 「수녀원의 악마 」 정도다. 나머지는 옛날 수도원이나 수녀원이었다가 폐허가 되거나 대저택이 된 공간이다. 공간적으로 종교의 틀에서 멀어졌을 뿐 아니라 이 단편집의 고딕 수녀들은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즉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선리 대저택」에서처럼 수녀 유령이 나타나면 말을 걸어주라는 조언을 따르면 효과가 있다. 물론 등장인물은 기어코 공포를 맛보고 선사해야하기 때문에 이 조언을 따르지 않는다. 때로는 수녀가 먼저 말을 걸기도 한다.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불가사의하고 아름다운 수녀가 홀연히 나타나 이렇게 말하기도 하는데(「시스터 막달레나」), 이 말을 곡해하면 에로틱 판타지로 폭주하는 급행열차에 오르게 된다. 다행히(?) 이 작품의 화자는 건축가의 시선으로 수녀가 잠을 잘 수 없는 이유를 정확히 밝혀낸다. “보이면 죽는다” 식의 공포와 저주를 발산하는 살벌한 수녀도 있고(「발리 그랜지의 망자」), 음습한 균류와 촉수가 난무하는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비추는 수녀도 있다.(「어느 수녀의 비극」) 이들 단편 전반에 초자연적인 사건, 악마, 악령 등의 오컬트 요소가 녹아 있다. 앞서 말했듯이 고딕 수녀를 읽는 여러 가지 관점이 있다. 이 단편집의 수녀들은 여러 해석 방식의 중간쯤에 있는 것 같다. 수녀원이었지만 수녀원이 아닌 공간, 소리가 있지만 자기 것이 아닌 듯한 목소리. 중간적이고 모호한 이 수녀들의 목소리는 유령이나 다른 공포화 된 분신을 통해서 나온다. 중심적이든 부수적이든 수녀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이렇게 이 단편집은 딱히 의도하지 않은 그래서 거창해진 고딕 수녀들의 목소리를 찾는 여정이 된 셈이다. <옮긴이 글> 중에서
영국의 작가, 여행가, 저널리스트였다. 1869년 헤이스팅스에서 태어나 포레스트 스쿨을 거쳐 옥스퍼드 허트포드 칼리지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1680년대 런던에 도착한 프랑스 위그노 교도의 후손으로서 평생 동안 문장학(紋章學: 가문의 문장과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여행가의 기질도 분명해서 21세 이후로 거의 쉬지 않고 세계 여행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일리 메일Daily Mail》과 《타임스The Times》의 특파원으로 세계를 누비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영국의 티베트 라싸 원정에 동행했고 그 결과는 그의 대표적인 논픽션 여행기 『티베트의 시작The Opening of Tibet』(1905) 출간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