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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세계사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역사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세계사

소장종이책 정가17,000
전자책 정가30%11,900
판매가11,900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세계사 표지 이미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세계사작품 소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세계사>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세계사』는 신화, 종교, 정치, 전쟁, 이슬람, 일본, 이상주의자, 여성 지도자, 대도시 등 9개 테마로 세계사의 이면을 살펴본다. 그래서 이 책은 다원적 가치의 충돌을 해결하고 공존하는 세상을 위해 상대적 가치관에 입각해 쓰였다. 일방적 목소리가 아니라 당사자의 주장을 존중하고 서로에 대한 상호 존중을 목적으로 현대의 우열과 상관없이 각 민족과 나라의 영광과 오욕을 모두 다루고 있다.


출판사 서평

잠 못 드는 밤에 읽는
넓고 얕은 세계사
“다원화 시대에서 세계사 읽기”

우리는 다문화를 의식주의 다양성 정도로 생각하지만, 다문화는 가치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의 절차적 민주주의는 대부분 단일민족주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세기 유럽에서 민족국가를 건설하며 형성된 절차의 틀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민족을 배려하고 그들에게 동등한 시민권을 부여할지 몰라도 정치권력을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민족 간 갈등과 충돌이 일상화될 수밖에 없는, 즉 민주주의로 인해 민족 분쟁이 심화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다원화 시대에 민주주의의 모델을 역사에서 찾아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오스만튀르크의 밀레트 제도다. 다양한 민족과 신앙의 공존을 위해 시행한 ‘민족과 신앙 자치 공동체 제도’는 오스만튀르크가 16세기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다. 밀레트는 권력을 잡은 민족이나 다수의 신앙도 절대적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 다양한 민족과 신앙을 보듬은 공존의 제도였고 성공한 제도였다.

현대 민주주의는 민족국가에 기반하고 있으며, 21세기 다원화 시대 명백한 한계에 봉착했다. 스웨덴의 이민 규제, 프랑스의 이슬람 차별, 미국의 흑백 문제는 우리가 새로운 민주주의, 절차와 다수결을 넘어선 민주주의를 모색할 당위를 부여하고 있다. 21세기 세계를 이끌어갈 나라는 다원화에 기반한 민주주의에 대해 대안을 만들어낸 나라일 것이다. 1인 1표가 아니라 1족(族) 1표, 중앙집권적 단일정부가 아니라 지방분권적 자치 공동체, 다양한 공동체의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고 어우러지는 사회, 궁극적으로 문화의 다원성이 아니라 정치의 다원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드는 나라가 21세기 지구의 새로운 주도 국가가 될 것이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세계사』는 신화, 종교, 정치, 전쟁, 이슬람, 일본, 이상주의자, 여성 지도자, 대도시 등 9개 테마로 세계사의 이면을 살펴본다. 그래서 이 책은 다원적 가치의 충돌을 해결하고 공존하는 세상을 위해 상대적 가치관에 입각해 쓰였다. 일방적 목소리가 아니라 당사자의 주장을 존중하고 서로에 대한 상호 존중을 목적으로 현대의 우열과 상관없이 각 민족과 나라의 영광과 오욕을 모두 다루고 있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세계사』에서 다루고 있는 9개 테마는 다음과 같다. 신화(제1장)는 민족 형성기의 역사를 반영하면서도 현대 문화 콘텐츠의 기본 구조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종교(제2장)는 정치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왔고, 새로운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선동의 정치(제3장)는 무지몽매한 민중을 역사적으로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 힘이었지만, 금단의 흑마술처럼 정반대의 결과를 낳기도 했다. 전쟁(제4장)은 그 파괴적 재앙 속에서도 인류에게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전쟁만큼 인간의 모순된 얼굴이 또 있을까? 이슬람(제5장)은 중세 시대 가장 발달된 남녀 관계를 자랑했다. 그런데 왜 이슬람 세계는 이토록 남녀차별적 사회가 되었을까?

일본(제6장) 우익 세력은 천황을 보호하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 패배 후 ‘무기력한 천황’론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20세기 마르크스주의라는 실패한 이상주의(제7장)와 대면해야 했지만, 역사 속에서 이상주의의 실패는 보기 드문 일은 아니었다. 여성사를 빼놓고 페미니즘의 시대를 이야기할 수 없다. 여성 정치의 시대, 여성 정치인(제8장)을 양성하기 위한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대도시들(제9장)의 당대 모습을 재현하면서 그 도시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생각해본다.

피와 학살의 군주, 아소카

마우리아 왕조의 3대 왕 아소카는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의 인도를 만들어낸 왕이다. 그러나 그는 피와 학살의 군주였다. 수십 명의 이복형제와 위협 세력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그는 시작부터 피로 물들어 있었다. 왕조 사회에서 왕과 정치인들은 혈육을 죽이면서 권력을 강화한다. 여기에는 자식에 대한 사랑, 부모에 대한 효도, 형제와의 우애, 친구에 대한 우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소카는 자신의 죄업을 닦기 위해 불교에 귀의했지만, 자비와 불살생은 이상이고 전쟁과 정복은 현실이었다. 아소카는 자신을 전륜성왕(轉輪聖王)이라 자처하며 불교에 귀의하고 살생을 금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국가 차원에서 불경을 정리하고 교리를 발전시켰으며, 자신은 불교 성지를 순례하고 외국에 대규모 포교단을 파견했다. 포교단은 가까이는 스리랑카와 미얀마에서 멀리는 이집트와 알렉산드로스의 고향인 마케도니아까지 불교를 전래했다.

그러나 아소카는 잔인했다. 그 잔인함은 칼링가 전쟁에서 절정에 달했다. 마우리아 왕조에 대한 복종을 거부하는 칼링가 왕국을 아소카는 60만의 보병, 3만의 기병, 9,000마리의 코끼리로 짓밟았다. 10만 이하의 보병과 1만 이하의 기병을 보유한 칼링가 왕국이 승리할 가능성은 없었다. 아소카의 보복은 철저했는데, 격렬하게 저항한 데 대한 보복으로 칼링가 왕국을 방치해버렸다. 정부와 관료가 없는 폐허가 된 칼링가 왕국에 기근과 역병이 몰아닥쳤고 수십만 명이 죽었다. 전쟁이 아니라 보복으로 더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이다. 마우리아 왕조는 불살생을 주장했지만, 수많은 정복 전쟁을 통해 인도를 통일했다. 결국 프쉬야미트라가 왕을 시해하고 숭가 왕조를 개창하면서 마우리아 왕조는 멸망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거짓 선동

17세기 절대왕정 시대는 왕위 계승 전쟁의 시대였다. 유럽의 왕위 계승권은 사위나 외손자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 왕실 전체가 합스부르크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유럽의 왕과 왕자가 유럽 국가의 왕위 계승권을 갖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치열하게 대립한 나라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였다. 각각 서유럽과 중부 유럽을 대표하는 두 강대국은 왕위 계승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개입해 유럽의 패권을 차지하려 싸웠다.

오스트리아의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는 15세의 나이에 프랑스 황태자와 결혼했다. 앙투아네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수많은 시종과 귀족들에게 둘러싸인 채 천방지축으로 생활했다. 그녀의 생활은 더욱 사치와 방종에 빠졌다. 그녀는 나라의 재정으로 각종 보석과 옷으로 치장하고 가장 무도회나 오페라 극장 등을 돌며 오락과 유흥에 빠져 세월을 보냈다. 앙투아네트가 얼마나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지는 그녀의 초상화만 봐도 충분했다. 마침내 운명의 날인 1789년 7월 14일이 밝았다. 혁명가들은 상상력을 발휘해 오스트리아 출신 왕비의 난잡한 밤 생활을 소재로 한 소설을 창작해 파리 시내에 뿌렸다. 더구나 왕비가 오스트리아의 군대를 불러와 시민들을 학살할 것이라며 선동했다. 시민들이 거짓 선동을 해서 그녀를 재판에 회부하자 귀족들도 그녀에게 등을 돌렸다.

그렇게 루이 16세가 처형당했고, 다음 차례는 앙투아네트였다. 그녀는 재판에 회부되었는데 죄목은 모두 파리에서 유행한 소문의 내용들이었다. 프랑스혁명은 거짓 선동으로 얼룩졌고 특히 그녀에 대해서 심각했다. 그녀는 강력하게 부인했고, 사실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죽어야 했다. 그녀는 불통의 왕비이자 반국민적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거짓 선동과 음모의 희생자였을까? 프랑스혁명은 거짓과 음모로 점철된 사건으로, 이후 황제정의 부활은 필연이었을까?

십자군전쟁과 부르주아의 탄생

십자군 원정은 무려 200여 년 가까이 끌었지만, 서유럽은 이 전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먼저 이슬람의 선진 기술이 유입되었다. 고대 그리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비잔티움 제국을 거쳐 이슬람에서 유행하고 있었는데, 이 천동설이 십자군전쟁 때 다시 유럽으로 들어가 천문학 발전을 자극했다. 그로 인해 이슬람의 다양한 천문학 지식이 수용되면서 지구 구체설(球體說)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지구 구체설은 많은 유럽인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콜럼버스였다. 그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던 동력은 십자군전쟁에서 기원했다.

중세 유럽은 십자군이 이동하면서 생긴 교통로를 따라 거대한 동서 연결망을 갖게 되었고, 이것이 그대로 무역로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후기 십자군은 열린 무역로를 지키기 위한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십자군이 이동하는 교통로 곳곳에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숙박 시설과 각종 상점이 생겼고, 십자군의 여행 경비를 노리는 약탈자에게서 보호받기 위해 예금제도가 생겨나면서 국제적 금융망도 생겨났다. 이슬람 지역에 가까운 이탈리아 반도가 동서 무역과 금융 발달의 최대 수혜자였다. 이탈리아의 신흥 부자들은 이슬람에서 수입한 그리스 고전 문화를 자기 것으로 하면서 마침내 ‘르네상스’를 일으킨다.

신흥 부자들은 봉건 영주의 억압을 피해 자신들만의 터전을 만들었다. 이들은 영주들의 군사적 공격을 막기 위해 성벽(bourg)을 쌓았는데, 여기서 부르주아(bourgeois, 성 안에 사는 사람들)라는 말이 나왔다. 17세기 이후 법학이 중요해졌는데, 상인이 귀족과의 분쟁에서 승리하려면 법리적 해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부르주아의 가장 중요한 동지가 되었고, 이 두 세력의 전문가 집단을 합쳐 시민이라고 불렀다. 시민계급의 탄생과 시민혁명의 동력이 생겨난 것이다. 십자군전쟁은 결국 중세 유럽의 자기 부정이었고 그 결과는 근대 유럽으로 가는 계기가 되었다.

힐러리는 왜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까?

미국 뉴욕 하원의원 출신인 셜리 치점은 1972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최초로 여성 후보로 출마했다. 그녀는 차별받는 여성과 흑인을 대변하기 위해 출마했다. 1924년 뉴욕의 평범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뉴욕 브루클린대학을 나온 뒤 아동센터 원장과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면서 교육과 인권에 전문성을 키웠다. 1964년 뉴욕 주 의회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1968년 하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미국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 기세를 몰아 1972년 최초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가한 것이다.

그러나 흑인들의 지지는 받기 어려웠다. 흑인 남성들은 전략적 사고를 선호했다. 그들은 당선 가능성이 없는 그녀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백인 남성 후보를 밀어주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또 많은 민주당 지지자는 본선에서 닉슨에 맞설 경쟁력 있는 후보를 원했다. 그녀의 정당한 주장은 남성과 선거 공학적 사고에 가로막혔고, 결국 그녀는 실패하고 말았다. 치점은 “나는 대통령에 도전한 최초의 흑인 여성으로 기억되기 원치 않는다. 나는 20세기 변화를 위해 싸운 여성으로 기억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무려 36년이 흐른 2008년 민주당에서 두 번째 여성 대통령 후보가 나왔다. 바로 힐러리 클린턴이다. 미국 여성계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가 나오기를 바랐다. 그러나 상대가 흑인 남성 버락 오바마였다. 흑인 대 백인, 개혁 대 보수의 구도가 만들어졌고, 그녀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아니라 보수적 백인 정치인으로 몰렸다. 결국 그녀는 오바마에게 대통령 후보를 양보하고 말았다.

2016년 미국 대선을 위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시작되었다. 오바마와 민주당 주류는 오바마 정권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를 대통령 후보로 점찍었다. 사실상 그녀는 민주당 경선에 단독 출마하는 셈이었다. 마침내 힐러리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그러나 힐러리는 또다시 기성 정치 대 새로운 정치라는 구도에 말려들고 말았다. 여론조사에서 계속 우세했고 실제 득표에서도 근소하게 승리했지만 정작 선거인단 득표에서 트럼프가 승리했다. 힐러리의 실패는 대통령제하에서 여성 정치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여성 대통령이 나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여성의 정치적 진출과 그를 뒷받침하는 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저자 프로필

표학렬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69년
  • 학력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역사교육과 석사
    연세대학교 사학과 학사
  • 경력 한양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교사

2018.04.02.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 : 표학렬
1989년 연세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했고, 같은 대학 교육 대학원 역사교육과를 졸업했다. 1998년부터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수능에서 한국사가 선택이던 시절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들의 관심을 끌어보고자 재미있고 감동적인 강의 개발에 몰두했고, 그 결과물로 『에피소드 한국사』(전3권), 『에피소드 세계사』(상·하), 『에피소드 독립운동사』, 『에피소드로 보는 유신의 추억』, 『한 컷 한국 현대사』, 『하룻밤에 읽는 조선사』, 『종합전형 31문 31답』 등의 저서를 출간했다. 2019년부터 KBS-1 라디오 .라디오 매거진 위크앤드.에서 ‘에피소드 한국사’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역사, 함께 생각하고 풀어가는 역사를 지향하면서, 오늘도 역사책을 끼고 언제나 진정한 역사가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살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 5

제1장 신화 이야기

그리스 신화 · 15
중국 신화 · 21
북유럽 신화 · 28
티베트 신화 · 35
아메리카 신화 · 42

제2장 종교와 정치

신탁과 살라미스 해전 · 51
불교와 아소카 · 58
기독교와 콘스탄티누스 · 64
종교개혁과 영국의 무적함대 · 72
과학이라는 신과 근대 정치 · 79

제3장 선동의 정치

황건적과 삼국시대 · 89
마리 앙투아네트와 혁명 · 96
보스턴 차 사건과 인디언 · 104
신해혁명과 한족 민족주의 · 111
히틀러와 괴벨스 · 118

제4장 세계를 바꾼 전쟁

알렉산드로스 원정 · 127
십자군전쟁 · 133
몽골의 정복 전쟁 · 140
제1차 세계대전 · 146
국공 내전과 베트남전쟁 · 153

제5장 이슬람의 역사

이슬람의 창시 · 163
수니파와 시아파 · 169
칼리프의 시대 · 176
술탄의 시대 · 182
근대의 격랑 속에서 · 188

제6장 일본의 정체성

일본의 시작 · 199
막부 시대와 혼란 · 205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 211
근대화와 민주주의의 발전 · 218
전후 경제성장과 역사 청산 · 225

제7장 실패한 이상주의자

페이시스트라토스 · 235
왕안석 · 241
알렉산드르 2세 · 247
우드로 윌슨 · 254
체 게바라 · 260

제8장 여성 지도자

테오도라 · 269
예카테리나 2세 · 277
락슈미바이 · 283
셜리 치점과 힐러리 클린턴 · 290
탈코 운동 · 297

제9장 대도시

콘스탄티노플 · 305
장안 · 312
앙코르톰 · 318
테노치티틀란 · 324
게르마니아 · 329

에필로그 · 335
참고문헌 · 340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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