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의 제임스 워드는 캘리포니아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거주지는 도심에서 떨어진 밀 밸리. 그런데 워드는 어렸을 때부터 독특한 상황에 놓여왔다. 부모와 의료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몽유병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 그의 내면엔 두 개의 자아 즉 원시의 야만인과 현대의 문명인이 공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워드는 낮과 밤에 따라 다른 자아로 살아가야 한다. 그는 보통 사람들처럼 일하고 사랑하는 평범한 삶을 꿈꾸지만 두 자아의 공존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점점 벅차다. 드디어 결혼을 결심하고 원시의 자아를 억제하려고 고군분투하던 어느 날, 순회중인 어느 서커스단에서 회색 곰이 탈출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책 속에서>
그는 잠시 담장 꼭대기에 앉아서 눅눅한 어둠이 숨기고 있을 위험을 탐지하려는, 아주 조용하고 침착한 남자였다. 그러나 그의 청각 가늠추는 보이지 않는 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의 신음과 흔들리는 가지에서 살랑이는 나뭇잎 소리만 포착했다. 짙은 안개가 바람에 흩날리며 쫓겨 갔다. 그는 이 안개를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 눅눅함이 그의 얼굴로, 그가 앉아있는 담장으로 불어왔다.
그는 소리 없이 바깥쪽에서 담장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리고 소리 없이 담장 안쪽 땅으로 내려갔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전기 야경봉을 꺼냈지만 그것을 사용하진 않았다. 길이 어두웠지만 그는 빛을 찾아 안달하지 않았다. 전기 야경봉을 손에 쥐고 그 버튼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어둠을 헤치고 나갔다. 발에 닿는 바닥은 오랜 세월 방해받지 않은 솔잎이며 풀잎이며 곰팡이로 뒤덮여서 부드럽고 탄력이 있었다. 나뭇가지와 잎이 그의 몸을 스쳐갔지만 너무 어두워서 피해갈 수가 없었다. 잠시 후부터는 손을 뻗어서 앞을 더듬거리면서 걸었다.
몇 번이나 손끝을 막아서는 거목의 단단한 줄기들이 있었다. 그가 아는 그 일대는 온통 그런 나무들이 있었다. 어디서나 나무들의 흐릿한 그림자들이 아른거렸다. 그를 짓뭉개려고 몸을 기울인 거대한 형체들 한복판에서 자신이 한없이 작은 미물이라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 너머에 있는 것은 그 집, 그곳으로 쉽게 갈 수 있는 오솔길이나 굽잇길이 나타나주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