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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예수 : 나는 왜 예수를 말하는가? 상세페이지

에세이/시 에세이

톨스토이의 예수 : 나는 왜 예수를 말하는가?

소장종이책 정가15,000
전자책 정가30%10,500
판매가10,500
톨스토이의 예수 : 나는 왜 예수를 말하는가? 표지 이미지

톨스토이의 예수 : 나는 왜 예수를 말하는가?작품 소개

<톨스토이의 예수 : 나는 왜 예수를 말하는가?>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가 말하는, 나는 누구이며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는 예수가 세상에 남긴 말씀에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달았다. 이 가르침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출판사 서평

톨스토이는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누구이며,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예수의 삶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예수가 어떤 가르침을 남겼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톨스토이의 예수』(원제 The gospel in brief)는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가 예수의 가르침을 이야기체로 엮은 책이다.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얻고 있던 톨스토이는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누구이며,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라는 존재는 원자들의 우연한 결합에 불과할까? 그렇다면 나는 아무 의미 없이, 나고 죽는 존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톨스토이에게 길을 열어준 것은 예수였다. 톨스토이는 해답을 성경 안에서 찾았다. 4대 복음서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거듭 읽으며 예수님의 가르침이 지닌 진정한 의미와 소중함을 깨달았다.

“이 책이 복음서를 성령이 보내신 신성한 책으로 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을 단순히 종교 문학의 역사적 기념물로만 여기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복음서의 신학적,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나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다만 그것들과 다른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이 시대의 학식 있는 사람들이 흔히 갖는 신학적, 역사적 견해나 그 외에 그가 전혀 동조하지 않는 견해들에 의해 오도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기독교 정신을 순수한 계시로 보거나 단순한 역사의 한 대목으로 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기독교의 교리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가르침이다.”

삶의 깨달음을 얻는 사람은
그 믿음을 통해 빛과 같아지는
기회를 얻는다

이 책은 톨스토이의 정신적인 방황과 함께 사회적 배경과도 맞물려 있다. 톨스토이는 위선에 찬 러시아 귀족사회와 기성 종교에 회의를 느껴 초기 기독교 사상에 몰두했다. 그 안에서 발견한 것은 물질에 집착하는 삶이나 율법에 얽매이는 종교가 아니라 예수가 그토록 강조한 ‘사랑’이었다. 이것은 4대 복음서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이기도 하다. 사랑만이 모든 것을 한데 포용할 수 있으며,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를 허울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이런 깨달음은 톨스토이의 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나 정신적 방황에 시달리던 톨스토이는 성경을 읽으며 예수가 세상에 남긴 가르침을 되새겼고, 이 깨달음은 이후 『부활』과 『이반 일리치의 죽음』 등의 작품에 녹아 있다. 특히 『부활』에서 당대 러시아의 불합리한 사회 구조에 비판하면서도 악이나 죄에서 우리를 끌어올려 주는 것은 ‘부활’ 같은 사랑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높은 행복 역시 사랑이라고 보았다.

이처럼 톨스토이는 이러한 개인적 깨달음을 세계적인 소설로 승화했으며, 예수가 이 세상에 남긴 가르침의 의미를 누구보다 고민하고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가 찾은 예수의 가르침은 지금 우리가 잊고 있던 진정한 삶의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톨스토이의 예수』는 단지 예수의 가르침에 그치지 않고,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우리 자신에게 묻는다.


저자 프로필


저자 소개

레프 톨스토이 저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문학지 [동시대인]에 처녀작인 자전소설 중편 「유년 시절」를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뽈랴나에 농민 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 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크로이체르 소나타』『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사십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를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을 내놓았고, 정치, 사회, 종교, 사상적 문제들에 관해 계속해서 저술하고 활동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크로이처 소나타』(1889)를 통해 깊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으며,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와 『부활』(1899)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 『바보 이반과 그의 두 형제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 땅이 많이 필요한가?』, 『세 가지 질문』 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으로 인한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현재 톨스토이 역이 되어 있는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임종 때 아내를 보기를 거부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민지현 역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뉴욕에 살면서,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의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어메이징 브루클린』, 『너와 마주할 수 있다면』, 『동물농장』, 『카피캣』, 『갤럭시』, 『할아버지의 위대한 탈출』, 『불법자들: 한 난민 소년의 희망 대장정』, 『메이슨 버틀이 말하는 진실』, 『애자일 마인드』, 『홉킨스의 잘 팔리는 비밀』, 『사랑의 완성 결혼을 다시 생각하다』, 『공감』, 『감정의 역사』, 『선을 긋는 연습』 등 다수가 있다.?

목차

프롤로그

1장__하나님의 아들
2장__영혼 안에 사는 삶
3장__생명의 원천
4장__하나님의 나라
5장__참 생명
6장__거짓 생명
7장__나와 하나님은 하나다
8장__생명은 한때의 것이 아니다
9장__유혹
10장__유혹과의 전쟁
11장__작별의 말씀
12장__육신을 넘어선 영혼의 승리

에필로그

나는 왜 예수를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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