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지 1시간 정도 지났고, 오른쪽 장딴지에 심하게 쥐가 난데다 춥고 지쳐서 이제 끝이구나 생각했다. 거센 물살에 맞서 부질없이 버둥대는 동안, 미친 행렬처럼 스쳐가는 부두의 불빛을 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물살 헤치는 것을 포기하고서 끝나가는 내 헛된 삶을 씁쓸히 떠올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아이의 본성을 이해하고 양육하는데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에 부모님의 은행잔고가 부족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내가 훌륭한 영국 혈통을 타고 난 건 행운이었다. 내가 입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을 때, 집안이 얼마나 축제분위기였는지 나로선 잘 모른다. 학식이 아주 깊은, 저명한 골동품연구가였던 아버지는 늘 연구라는 추상적인 일에 빠져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반면, 뛰어난 교양보다 뛰어난 외모로 주목받았던 어머니는 언제나 탐닉했던 사교계의 아첨에 안주했다.
나는 여느 영국 부르주아 집안의 자제들처럼 정규 교육 과정을 거쳐 대학을 졸업했고, 나날이 체력과 열망이 강해졌다. 부모님은 어느 날 문득 내가 불멸의 영혼을 지닌 것을 깨달았고, 그것을 억누르려고 부단히도 애썼다. 그러나 때늦은 일이었다. 나는 더없이 난폭하고 무모한 우행을 저지름으로써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분노해왔던 사회뿐 아니라 우리 집안에서까지 배척당했다. 아버지가 다시는 나를 보지 않을 것이고 더 이상의 어떤 지원도 없을 것임을 선언하면서 내게 천 파운드를 주었고, 나는 그 돈을 가지고 오스트레일리아로 가는 일등석 배표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