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현상에 대한 호기심은 인류가 과학적 발전을 이룩하는 원동력이었다. 자연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에 자연현상은 경외의 대상이었고, 갑작스러운 천둥, 번개, 일식, 폭풍우, 가뭄, 지진은 신의 분노로 여겨졌다. 그러나 17세기 과학 혁명을 거치면서 인류는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자연현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뉴턴이 지상의 운동과 천상의 운동을 똑같은 자연법칙으로 설명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자연현상은 더 이상 신의 영역이 아니게 되었다. 또한 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역학, 열역학, 통계역학, 전자기학 법칙, 진화론, 화학반응 이론 등을 확립하며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다양한 체계를 갖추었다. 20세기에는 미시세계를 묘사하는 양자역학의 발견으로 원자들이 가지는 성질과 원자들이 모여서 형성된 물질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물질과 시공간의 관계를 묘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우주의 구조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사물의 본성을 이해하려는 인류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현대과학의 근간에는 환원주의적 사고가 자리하고 있다. 돌멩이를 깨트려 파편을 만들고, 그것을 점점 더 작게 쪼개 보자. 그러면 우리는 돌멩이가 원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물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원자도 마찬가지이다. 원자를 작게 쪼갬으로써 인류는 원자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 핵자와 전자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양성자와 중성자는 각각 세 개의 퀴크가 결합한 구조라는 사실도 알아내었다. 이러한 환원주의적 접근으로 인류는 물질세계를 지배하는 다양한 과학 법칙을 발견하였다.
한편 우리 주변에서 보는 사물은 원자, 분자, 고분자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 인류는 물질의 구성단위들이 결합하여 나타나는 거시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20세기 중반부터 사회, 경제, 생태학, 물리, 생물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복잡계(complex systems)’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복잡계는 ‘행위자 자체는 단순하지만, 행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복잡한 다체계’이며, 시스템을 구성하는 행위자 하나에는 없는 ‘창발 현상’을 일으킨다. 인간 사회 시스템, 생태계 시스템, 경제 시스템, 무리 지음 현상 등이 대표적인 복잡계이다.
필자는 1987년 KAIST에서 혼돈 현상, 프랙털, 비선형 동력학, 스미기 모형, 강자성 상전이 현상을 연구하면서 복잡계 연구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때는 마침 미국에 산타페 연구소가 설립되어 복잡계 연구가 막 전 세계로 확산하였을 시기였다.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에는 아직 복잡계 연구자가 별로 없었고, 필자는 거의 독학으로 연구를 해야 했다. 1990년대부터는 통계물리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 등이 자신의 분야에서 복잡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1998년에 왓츠와 스트로가츠가 좁은 세상망을 재발견하고, 1999년에 바라바시, 알버트, 정하웅이 축척 없는 네트워크 발견하면서 복잡계 네트워크에 대한 연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통계물리학은 다체 시스템을 연구하는 분야이기에 복잡계 연구가 막 시작되었을 때부터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으며, 경제물리학은 1991년에 맨테그나가 밀란 주식시장의 수익률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관심이 증폭되었다. 필자도 1990년대부터 경제물리학 연구를 시작했으며, 다양한 논문을 발표해왔다. 행위자 기반 모형과 시스템 다이내믹스의 발전에 따라 사회 시스템에서 행위자 기반 모형을 적용하는 사회 물리학 연구자들이 속속 출현하였고, 덕분에 이제는 경제물리학, 사회 물리학 같은 용어를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2000년대 초에는 복잡계 과학을 연구하는 통계물리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 등이 삼성경제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연구모임을 시작하였고, 이 모임은 2012년 ‘한국 복잡계학회’로 발전하였다. 한국 복잡계학회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협력하는 학제적 연구 학회로, ‘복잡계 여름학교’를 운영하며 대중과 전문가들에게 복잡계를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외국에는 복잡계를 다룬 다양한 책들이 출판되었고, 그중 몇 권은 국내에도 번역되어 들어왔다. 하지만 국내 저자가 집필한 복잡계 교양서는 매우 드문 실정이다. 필자 역시 학생이나 지인에게 마땅히 추천할 만한 책이 없어 몹시 아쉬워하던 차였는데 마침 기회가 되어 자유아카데미에서 <복잡계 과학 이야기>를 출간하게 되었다. 책 내용 중 일부는 저자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이재우의 복잡계 이야기(https://contents.premium.naver.com/complexsystems/knowledge)’에 연재한 내용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는 모바일(https://naver.me/xjLN9I0b)로도 접속할 수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는 참고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