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그레이의 작품들은 호흡이 느린 고딕 소설 중에서도 더디고 완만한 특징을 지닌 단편들이다. 작가가 28년간 학장으로 있었던 케임브리지 지저스 칼리지를 배경으로 자신의 절친이기도 했던 고딕 소설의 대가 M. R. 제임스의 고딕 유령을 온건하고 우아하게 도입했다. 고교 괴담이 아닌 대학 괴담이라고 할까. 스토리를 전개하는 압축적이고 묵직한 필치에 비해 곳곳에 산재한 유머와 풍자는 공포를 희석하여 독자로 하여금 호불호의 갈림길에 서게 한다. 이 단편 「불멸자 클럽」이 수록된 작가의 유일한 소설이자 단편집이 『그랜타 강과 마술에 관한 따분하고도 짧은 이야기』인데, 작가는 이 제목에 진심이었던 것 같다. 분량이 짧은 단편들인데 서사에 친절하지도 않고 직설적이지도 않아서 작가는 스스로 따분하다고 경고한 모양이다. 아서 그레이의 고딕 호러는 슬래셔나 고어뿐 아니라 화끈한 공포를 원하는 독자들에겐 적합하지 않다. 작품 전반에 뿌려진 오컬트의 색감도 공포보다는 향수 다시말해 연금술이 정통과학이자 대학의 정식 학과목으로 인정받던 시절을 향한 푸념이고 그리움에 가깝다. 「불멸자 클럽」도 케임브리지 지저스 칼리지를 배경으로 한다. 18세기 런던과 아일랜드에서 실제 유행했던 방탕한 상류층 클럽이 모티프다. 이런 악명높은 클럽 중에 하나인 "불멸자 클럽"은 초기 회원 7인으로만 운영되는데 죽어서도 회원에서 탈퇴할 수 없다는 회칙 때문에 괴이한 문제를 일으킨다. <책 속에서> 지저스 칼리지에 방 하나가 있는데, 현재의 재학생들 중에 이곳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인데다 이곳에 들어가 본 것은 고사하고 내부를 일견해본 사람은 더욱더 드물다. 이 방은 대식당의 옆 회랑 쪽으로 가파른 계단 맨 꼭대기 층계참에서 오른쪽에 있다. 이곳은 지금은 잊힌 이야기와 관련되어 관례상 “카우 레인”으로 불린다. 이 방의 육중한 오크 문에 채워진 맹꽁이자물쇠가 열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방은 텅 비고 가재도구도 없기 때문이다. 한때 쓰지 않는 주방 용품들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됐으나 이런 치욕적인 용도마저 사라진 지금은 고즈넉함과 어둠이 방해받지 않고 있다. 지금 이 방은 높은 벽 때문에 외부의 햇빛과 단 하나뿐인 창문의 빛마저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고 해야겠다. 18세기에 이 방문을 열게 만든 드문 일이 있어서 출입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이 방에 닿은 적이 몇 번 있기는 했다. 그런데 그리 오래 전이 아닌 시절, 이 방에 사람이 거주한 적이 있다. 어둠으로 물들기 전에 이곳은 조지 2세 시대의 대학교에서 일반적인 편의성의 기준으로 볼 때 안락하게 꾸며져 있었다. 널찍한 벽난로가 있어서 그 앞에 다리를 뻗고서 가발과 바로케이드(금색과 은색, 색실로 아름다운 무늬를 두드러지게 짠 비단―옮긴이) 시대의 와인과 가십을 주고받곤 했다. 방이 큰 편이어서 동쪽의 벌판과 공원을 향해 난 창문으로 빛이 비출 때면 사교적인 신사에겐 쾌적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영국의 학자이자 작가. 케임브리지 역사와 셰익스피어 연구에 관해 많은 저작을 남겼다. 블랙히스 사립학교를 거쳐 케임브리지 지저스 칼리지에 입학한 이후 대학 평의원과 교수를 거쳐 죽기 전까지 칼리지의 학장을 지냈다. 절친이기도 했던 M. R. 제임스의 고딕 전통을 잘 반영한 단편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1912년 학장이 됐을 때, 지저스 칼리지 400년 역사상 서품을 받지 않은 최초의 학장이었다고 한다. 소설은 잉걸푸스(Ingulphus)라는 필명으로 《케임브리지 리뷰》에 발표한 단편들이 유일하다. 초자연적인 특징과 유령을 다룬 단편 「앤서니 프라이어의 내력」, 「네크로맨서」 등의 대표작은 단편집 『그랜타 강과 마술에 관한 따분하고도 짧은 이야기』에 수록되어 있다. 그밖에 『셰익스피어의 사위』, 『셰익스피어 젊은 시절의 한 장』, 『케임브리지와 그 역사』등의 대표 저서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