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프카디오 헌의 단편 「시체 올라타기」는 앞서 소개한 「화해」에 이어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의 영화 「괴담」 첫 번째 에피소드 ‘흑발’의 원작이다. 에피소드 ‘흑발’은 헌의 두 단편을 원작으로 하는데, 「화해」는 전체적인 서사, 「시체 올라타기」는 죽은 여인의 원한과 검은 머리칼의 공포를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보완적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시체 올라타기」에서도 이혼이 발단이 되는데, 이혼 후에 여자는 남편에 대한 원한과 복수를 품고 죽는다. 누구도 수습하지 않은 여자의 시신은 집에 그대로 방치되고, 뒤늦게 나타난 남편은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음양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방법을 찾지 않으면 시체한테 발기발기 찢겨죽게 될 상황. 음양사가 내린 단 하나의 비법, “시체에 올라타라.”
<책 속에서> 시신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심장이 멈춘 지 오래였다. 그런데 그 외 다른 죽음의 흔적은 없었다. 그 여자를 매장하자는 말조차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이혼을 한 슬픔과 분노로 죽었다. 그녀를 매장해봐야 소용이 없을 터다. 죽어가는 사람이 마지막 죽지 않는 소망으로 품은 복수욕은 어떤 무덤이고 둘로 쪼개고 가장 육중한 묘비도 산산이 부술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누워있던 그 집의 이웃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버리고 도망쳐버렸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 여자는 이혼한 남편이 돌아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다는 것을. 그녀의 임종 때 이혼한 남편은 여행길에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해 듣고 공포에 사로잡혔다.
라프카디오 헌Lafcadio Hearn(1850~1904,〈유령 폭포의 전설〉)은 가장 일본적인 것에 천착한 그리스 출신의 괴담 소설 작가이다. 일본 괴담의 매력을 세계에 널리 알렸으며, ‘외국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일본 관찰자’로 칭송받다가 1904년, 심장마비로 54세의 나이에 생을 마쳤다. 지은 책으로는《괴담(怪譚)》,《동쪽 나라에서(東の国から)》,《일본잡기(日本雑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