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의 「괴담」 마지막 네 번째 에피소드는 ‘찻잔 속’. 원작은 라프카디오 헌의 단편집 『교토』에 수록된 「찻잔 속 In a Cup of Tea」이다. 1683년 주군의 행차를 수행하는 한 사무라이. 수행단이 잠시 쉬어갈 겸 들른 찻집에서 이 사무라이는 기이한 일을 겪는다. 자신의 찻잔 속에 어떤 얼굴이 자꾸 비치는 것. 겁이 났지만 그걸 숨기려고 호탕하게 차와 거기에 비친 얼굴까지 단숨에 마셔버린다. 그런데 이 찻잔에 비쳤던 얼굴이 사무라이를 찾아와 자신을 해했다고 항의하는데…… 사무라이는 유령을 삼킨 셈인데 그 결과는 어떤 것일까? <책 속에서> 여러분은 옛 탑의 계단 그러니까 어둠을 뚫고 나선형으로 솟구치는 계단을 올라가본 적 있는가? 그리고 그 어둠 한복판에서 거미줄 쳐진 공허의 끝에 서 본 적은? 아니면 절벽 면을 깎아 만든 해안가 길을 따라 가다가 모퉁이를 돌았더니 위태롭게 끊어진 길 끝에 서게 된 적은? 이런 경험의 감정적 가치는, 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촉발된 감각의 힘이나 기억되는 생생함으로 입증된다.
이와 비슷한 감정을 자아내는 미완의 단편들이 신기할 정도로 일본의 옛날 이야기책 속에 보존되어 있다. 혹시 작가가 게을렀던 것일까. 혹은 출판사와 분쟁이 있었나. 혹은 조붓한 책상 앞에서 글을 쓰다가 갑자기 불려나갔다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했던 걸까. 혹은 죽음이 문장 중간에서 펜을 멈추게 하고 글을 중단시킨 걸까.
라프카디오 헌Lafcadio Hearn(1850~1904,〈유령 폭포의 전설〉)은 가장 일본적인 것에 천착한 그리스 출신의 괴담 소설 작가이다. 일본 괴담의 매력을 세계에 널리 알렸으며, ‘외국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일본 관찰자’로 칭송받다가 1904년, 심장마비로 54세의 나이에 생을 마쳤다. 지은 책으로는《괴담(怪譚)》,《동쪽 나라에서(東の国から)》,《일본잡기(日本雑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