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 무대에서 젠더와 계급의 불공평을 탁월하게 드러낸 언어의 조율사, 둔감하게 체험하기보다는 생생하게 상상한 작가, 이디스 워튼이다. 자칫 과잉될 수 있는 초자연성을 신중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활용했다. 그 목적과 성취는 공포의 효율성. 그 공포의 대상은 유령이나 괴물, 보이지 않는 세계가 아니다. 가부장적 규범이 지배하는 현실의 잔인하고 엄혹한 지배구조다. 약자(대체로 여성)에겐 아이러니하게도 아늑하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전통적 보금자리 집과 가정이다. 이디스 워튼의 고딕 단편 1차분 3편을 수록한다. 「시녀를 부르는 벨소리 The Lady's Maid's Bell」(1902)는 워튼의 대표적인 고딕 단편 중에 하나.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여성과 억압을 세련되고 신중하게 풀어낸다. 별다른 자극점 없이 긴장과 공포를 증폭해가는 방식도 흥미롭다. 워튼의 고딕뿐 아니라 다른 소설 상당수에서 주된 공간은 집이다. 이 공간은 고딕 특유의 고색이 짙은데다 음울하고 폐쇄된 성이 아니다. 쾌적한 상류층 저택이다. 건강이 좋지 않지만 생계를 위해 하녀 일을 수소문하는 하틀리. 간신히 지인의 소개로 안주인의 개인 비서격인 시녀로 가게 된 저택, 브림프턴 부부가 살고 있다. 브림프턴 부인은 매우 병약해서 거동이 불편할 정도다. 옆에서 일일이 챙겨줄 시녀가 꼭 필요한 셈인데 바로 직전의 시녀는 죽었다는 것. 그런데 집안의 하인들은 그 죽은 시녀 엠마 색슨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다. 게다가 바깥주인인 브림프턴 씨에 대한 하인들의 묘한 경계심도 하틀리만 모르는 비밀이 있음을 일깨운다. 그렇게 서서히 하틀리와 저택 내부를 조여 오는 어둠의 그림자. 집, 가정이라는 가장 아늑한 공간은 가장 폭력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워튼은 이런 양가성을 통해 젠더 문제를 매끄러우면서도 명료하게 드러낸다. 다만 집안의 비극과 문제를 잘 알고 있지만 침묵하는 이들(하인들)은 작가에 의해 방치된 느낌을 준다. 즉 워튼은 젠더 문제에 집중하다보니 의도했든 아니든 계급문제를 키워놓고 오히려 등한시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눈 The Eyes」은 고딕의 가장 강렬한 테마 중에 하나인 인간 내면의 어둠을 초자연보다는 사실주의 방식으로 접근한 작품이다. 여전히 특징적인 고딕 요소는 억압이다. 이 작품에선 억압된 동성애가 흥미로운 돋을새김이다. 1910년 작. 고전 작품에서 흔한 액자 소설의 형식을 취한다. 이 형식은 의외로 세련되고 효과적이다. 공간을 ‘고딕풍의 서재’로 한정하고, 유령이 두 개라며 흥미를 유발하는 도입부에서 등장인물의 죽음을 암시하는 결말까지 흔한 액자 형식을 드물게 잘 활용한 느낌이다. 이 작품엔 여러 작가들의 흔적이 녹아있다. 워튼이 좋아하고 존경했던 헨리 제임스는 물론 작품에 직접 인용한 워싱턴 어빙과 테오필 고티에가 대표적. 그러나 앞선 작가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경과 고딕 전통에의 안주와는 거리가 있다. 이는 워튼의 고딕이 어디서 왔는지, 그 근원으로 대변되는 구질서를 파괴하려는 이중적 태도 또는 이중적 전략으로 읽힌다. 평론가 중에는 「눈」을 이디스 워튼의 최고 걸작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다면 「시녀를 부르는 벨소리」에 더 끌릴 것이다.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도 워튼의 장점 중 하나. 「케르폴」(1916)은 가정 폭력 그 공포에 관한 기록이다. 집은 가장 안락한 공간이자 가장 잔인한 폭력의 공간이다. 가장 익숙하지만 가장 낯선 공간이다. 「케르폴」은 비슷한 주제를 다룬 「시녀를 부르는 벨소리」와 여러모로 흥미로운 비교점을 가진다. 「시녀를 부르는 벨소리」가 영국의 대저택을 배경으로 한다면, 「케르폴」은 프랑스의 고색창연한 고성이 배경이다. 미국인 화자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은 같다. 유령이 등장하는 것도 같지만 「케르폴」의 유령은 사람이 아니라 개다. 이 두 작품을 통해 작가 워튼이 사실주의자로서 유령을 활용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요컨대 ‘유령을 믿진 않지만 무서워한’ 작가에게 유령은 폭력과 억압을 거칠지 않게 드러내는 완충제다.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미국인 일인칭화자는 프랑스인 친구, 랑리뱅의 권유로 브르타뉴의 한 고성(대저택)을 사려고 한다. 일단 혼자서 집을 보러 간 화자. 긴 가로수 진입로, 해자, 도개교, 성벽 순찰로에 이르기까지 옛 성의 자취를 물씬 풍기는 웅장한 건물이다. 이름 하여 케르폴. 고색창연하다 못해 일부는 폐허의 조짐을 보이는 이 케르폴에 좀처럼 인적이 없다. 화자는 관리인을 기다려보지만 그 대신 나타난 것은 한 무리의 개들이다. 전혀 짖지 않고 화자를 감시하듯 따라다니는 침묵의 애견들. 화자가 이 케르폴에서 겪은 기묘함과 호기심은 이곳에서 17세기에 벌어진 살인 사건과 그 재판 기록으로 연결된다. 폐쇄된 공간, 과거의 범죄, 폭력, 감금, 초자연적 복수 등등 「케르폴」은 워튼의 작품 중에서도 고딕 요소들이 짙고 풍부하다. 워튼은 공간 다시 말해 집에 등장인물(특히 여성)의 활동반경을 제한하는데 공을 들인다. 겨울, 춥거나 궂은 날씨가 한몫한다. 권력자가 누군가를(반려견 정도의 동물은 말할 것도 없고) 내키면 마음대로 찔리면 교활하게 감금하고 죽여도 되는 시대면 더 확실하다. 「케로폴」에서처럼, 어쩌면 지금 21세기에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