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크래프트 서클”은 H. P. 러브크래프트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일군의 작가와 그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려는 시도입니다. 스미스의 걸작 상당수가 그러했듯이, 이 작품 역시 잡지들의 잇따른 거절로 오랫동안 발표 지면을 찾지 못했습니다. 탈고한 지 8년이 지나서야 단명한(4호를 넘기지 못한) 《스터링 사이언스 스토리즈》에 실렸는데요. 이후 하이퍼보리아 연작 중에서 각종 선집에 가장 빈번하게 출간되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백색 벌레의 출현」은 스미스 작품 중에서도 특히 문체가 치밀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작품으로 꼽힙니다. 구성 자체는 아베르와뉴 연작에 등장했던 가스파르 뒤 노르가 번역한 가상의 책 『에이본의 서』 제4장이라는 뼈대를 취하고 있는데요. 이로써 러브크래프트의 『네크로노미콘』, 로버트 E. 하워드의 『이름 없는 의식』 그리고 스미스의 『에이본의 서』라는 《위어드 테일스》의 3대 금서가 구체화된 셈입니다. 스미스의 원래 작풍을 고려해도 구성과 전개가 복잡한 편에 속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여러 잡지들로부터 거절당한 이유는 시적인 언어 때문이었다죠.
1944년 스미스는 오거스트 덜레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러브크래프트의 신들을 간헐적으로 언급하고, 종종 명칭을 약간씩 바꾸는데 (이를테면, ‘요그-소토스’를 ‘아이오그-소토트’로, ‘크툴루’를 ‘크툴루트’로) 대부분은 기괴한 유머를 사용함으로써 러브크래프트와는 퍽 다릅니다. 그러나 「백색벌레의 출현」 같은 작품은 크툴루 신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