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리의 끝 (속편), 르 몽드가 선정한 세기의 도서 100권
세계문학시리즈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Sidonie-Gabrielle Colette, 1873-1954)의 소설 "셰리의 끝(La Fin de Chéri)"은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셰리(Chéri)"의 후속편으로, 젊고 아름다운 남성 셰리와 나이든 퇴물 코르티잔 레아 드 롱발의 파국적인 관계의 종말을 심도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전작에서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사랑을 이어가던 두 인물의 이야기는 "셰리의 끝"에서 더욱 깊은 심리적 갈등과 사회적 편견 속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콜레트는 특유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체를 통해 인물들의 내면 심리와 시대상을 생생하게 포착하며, 사랑과 욕망, 늙음과 젊음, 사회적 관습과 개인의 자유의 충돌을 날카롭게 탐구한다.
"셰리의 끝"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파리를 배경으로 한다. 전쟁에서 돌아온 셰리는 더 이상 젊고 매력적인 청년이 아니다. 전쟁의 상흔은 그의 내면과 외면에 깊숙이 새겨져 있으며, 그는 과거의 화려했던 삶과는 동떨어진 무력감과 권태감에 휩싸여 있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셰리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전 연인 레아 드 롱발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지만, 이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헛된 시도일 뿐이다.
레아 역시 늙음과 은퇴라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그녀는 젊은 시절 파리 사교계의 유명한 코르티잔으로서 부와 명예를 누렸지만, 이제는 쇠락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해야만 한다. 셰리와의 재회는 그녀에게도 과거의 찬란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변해버린 셰리의 모습은 그녀에게 깊은 실망감을 안겨준다.
두 사람은 과거의 환상과 현재의 냉혹한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셰리는 젊음과 활력을 잃은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레아에게 의존하려 하지만 그녀의 강인함과 독립심은 더 이상 그의 나약함을 받아주지 않는다. 레아는 셰리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느끼면서도, 그의 퇴행적인 모습에 지쳐간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가기로 결심하고, 셰리와의 관계를 정리하려 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셰리의 불안감과 집착은 더욱 심화된다. 그는 레아의 곁을 떠나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 하지만, 젊고 순수한 여성 에디와의 만남 역시 그의 공허함을 채워주지 못한다. 오히려 에디와의 관계는 셰리에게 자신의 늙음과 무능력함을 더욱 절실하게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된다. 결국 셰리는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절망 사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는 레아의 집으로 돌아와 그녀의 침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레아는 셰리의 죽음에 깊은 슬픔과 충격에 휩싸이지만, 그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맞이하게 된다. 그녀는 셰리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다시 꿋꿋하게 살아나갈 것을 다짐한다. "셰리의 끝"은 퇴락한 귀족 사회와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길을 잃은 한 남자의 비극적인 종말을 통해, 덧없는 젊음과 사랑, 그리고 삶의 불가피한 변화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시한다.
<주요 등장인물>
* 셰리(Chéri):
본명은 프레데리크 펠루(Frédéric Peloux)이다. 젊고 아름다운 외모로 상류 사회 여성들의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후 정신적, 육체적으로 큰 상처를 입고 무기력하고 퇴폐적인 삶을 살아간다.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며 레아에게 의존하려 하지만, 현실과의 괴리 속에서 깊은 고독과 절망감을 느낀다. 그의 불안정한 내면과 파국적인 선택은 몰락해가는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 레아 드 롱발(Léa de Lonval):
한때 파리 사교계에서 명성이 높았던 나이든 코르티잔이다. 젊고 아름다운 셰리를 오랜 기간 동안 후원하고 사랑했지만, 그의 변해버린 모습에 실망감을 느낀다. 강인하고 독립적인 성격으로, 늙음과 은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려 한다. 셰리의 죽음을 통해 과거와의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인물이다.
* 에디(Edmée):
셰리가 레아와 헤어진 후 결혼한 젊고 순수한 여성이다. 셰리는 에디와의 관계를 통해 젊음과 안정을 되찾으려 하지만, 그녀와의 소통 부재와 과거에 대한 미련으로 인해 갈등을 겪는다. 에디는 셰리의 내면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의 불안정한 행동에 혼란스러워한다. 그녀는 셰리의 비극적인 선택과는 거리를 둔 채, 새로운 삶을 살아갈 가능성을 암시하는 인물이다.
* 마리-로르(Marie-Laure):
레아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 코르티잔이다. 레아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그녀의 독립적인 삶을 지지한다. 마리-로르는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1장: 전쟁의 그림자 드리운 귀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셰리가 과거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돌아온 파리의 풍경을 묘사한다. 전쟁의 상흔과 권태감에 휩싸인 셰리의 내면을 드러내며, 그의 공허한 귀환을 암시한다.
2장: 엇갈린 재회의 기대와 실망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셰리와 레아의 불안정한 재회를 그린다. 과거의 애틋함과 현재의 어색함 사이에서 갈등하는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을 포착하며, 재회의 기대와는 다른 실망감을 예감하게 한다.
3장: 퇴색한 젊음과 붙잡을 수 없는 과거
젊음과 활력을 잃어버린 셰리가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레아에게 의존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레아는 변해버린 셰리의 모습에 냉담함을 느끼며, 붙잡을 수 없는 과거의 그림자를 드러낸다.
4장: 새로운 관계의 불안한 시작
레아와의 불안정한 관계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아 결혼한 셰리와 젊고 순수한 아내 에디와의 관계를 조명한다. 그러나 소통의 부재와 셰리의 내면적인 공허함은 새로운 관계 역시 불안하게 만들고 있음을 암시한다.
5장: 깊어지는 고독과 갈등의 심화
새로운 관계에서도 만족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는 셰리의 고독이 더욱 깊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에 대한 미련과 현재의 불만족 사이에서 갈등하는 셰리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며, 파국으로 치닫는 그의 내면을 드러낸다.
6장: 되돌아온 그림자와 절망의 그림자
결국 레아의 곁으로 다시 돌아온 셰리의 절망적인 상황을 그린다. 과거의 안식처를 찾으려 하지만, 이미 변해버린 현실 속에서 그는 더욱 깊은 절망감에 휩싸인다. 그의 비극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어두운 분위기가 감돈다.
"셰리의 끝"은 콜레트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녀는 인물들의 내면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하여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특히 셰리의 불안과 절망, 레아의 강인함과 슬픔 등 복잡한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하며, 독자들이 인물들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도록 이끈다.
이 작품은 단순한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 늙음과 젊음, 아름다움과 쇠락, 과거와 현재의 대립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다. 젊음의 덧없음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삶의 무상함을 보여준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전통적인 가치관이 흔들리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모습을 배경으로, 개인의 정체성 위기와 사회적 불안감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콜레트는 여성의 심리와 사회적 위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을 보여주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셰리의 끝"에서도 레아라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통해 당시 사회의 여성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레아는 나이와 과거의 직업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살아나가는 강인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반면, 셰리는 과거의 영광에 갇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파멸해가는 나약한 남성으로 대비되어, 전통적인 성 역할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작품의 비극적인 결말은 독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셰리의 자살은 그의 내면적 고통과 사회적 부적응의 극단적인 표현이며, 이는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길을 잃은 개인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레아의 담담한 태도는 슬픔을 내면화하고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성숙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희망과 성장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일부 비평가들은 "셰리의 끝"이 전작 "셰리"에 비해 플롯의 긴장감이 부족하고,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치중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콜레트 특유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체, 그리고 인간의 내면 심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은 이러한 비판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강력한 흡인력을 지닌다.
콜레트의 "셰리의 끝"은 한 남자의 비극적인 사랑과 죽음을 통해 삶의 덧없음, 변화하는 시대의 불안감, 그리고 여성의 주체적인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시하는 수작이다. 섬세한 문체와 심리 묘사, 그리고 시대를 초월하는 주제 의식은 이 작품을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선사하는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