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야기는 한국 자본주의의 진화 두번째 책으로, 1970년대-1980년대 한국 경제사에 관한 내용입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197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의 시기는 단순한 경제적 변화를 넘어 민족사의 근본적 전환점을 이루는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이 시기는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급격한 이행, 절대빈곤에서 중진국 수준으로의 경제적 도약, 그리고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의 경제성장과 민주화 열망 사이의 긴장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던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이 책은 이 시기의 17개년간 한국 경제사를 관통하는 15개의 핵심 사건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그 의미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각각의 사건은 단순한 경제적 현상을 넘어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오늘날 한국 사회의 토대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착공은 단순한 교통 인프라 건설을 넘어 한국 사회의 공간적 재편과 근대화에 대한 의지를 상징하는 대역사였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기술적 도전과 함께 사회적 갈등, 환경 파괴, 그리고 급속한 도시화라는 복합적 결과를 낳았습니다. 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모순은 이후 산업화 과정 전반의 성격을 예고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녔습니다.
새마을운동의 시작은 농촌 근대화를 표방하면서도 동시에 국가 주도 사회 개조 실험의 성격을 띠었습니다. 이 운동은 농촌 사회의 물질적 개선과 의식 변화를 동시에 추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전통적 공동체 문화의 변화와 국가 권력의 농촌 침투라는 양면적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새마을운동이 보여준 '위로부터의 근대화'는 한국 사회 발전 모델의 특수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사례였습니다.
1973년 수출 10억 달러 달성은 한국 경제가 내수 중심에서 수출 중심으로 전환하는 역사적 전환점을 의미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수치상의 성과를 넘어 한국 경제의 세계 시장 편입과 국제 분업 체계 내에서의 위치 확립을 상징했습니다. 수출 중심 경제로의 전환은 산업 구조의 변화, 노동력의 재편, 그리고 사회 전반의 경쟁 문화 확산이라는 광범위한 사회적 변화를 동반했습니다.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1976)은 중화학공업화 정책의 토대를 마련하며 한국 경제의 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이 계획은 경제 성장 목표와 함께 사회 안정과 국가 안보를 통합적으로 고려한 종합적 국가 전략의 성격을 띠었습니다. 계획 경제적 요소와 시장 경제적 요소의 결합은 한국형 개발 모델의 독특한 특징을 형성했습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중화학공업화 정책은 한국 경제의 산업 구조를 경공업 중심에서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전환시키는 대전환을 의미했습니다. 이 정책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자원 동원 능력을 바탕으로 추진되었지만, 동시에 시장 논리와 정부 개입 사이의 긴장, 대기업 집중과 중소기업 소외, 그리고 지역 간 불균형 심화라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포항제철 1기 준공(1973)은 중화학공업화 정책의 상징적 성과이자 한국 경제의 자립 기반 구축을 위한 핵심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사업은 기술 이전과 자주적 산업 발전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보여주며, 국가 주도 산업 정책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 동시에 환경 문제와 지역 사회 변화라는 그림자도 드리웠습니다.
제1차 석유파동(1973-1974)과 제2차 석유파동(1979-1980)은 한국 경제가 국제 경제 변동에 취약한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지만, 동시에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한국 사회의 적응력과 회복력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차례의 석유 파동은 에너지 효율성 개선, 산업 구조 조정, 그리고 수출 시장 다변화라는 구조적 변화를 촉진했습니다.
이 시기 근로자 해외파견과 중동 붐은 한국 경제의 외화 획득원 다변화와 함께 한국 사회의 국제화 경험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중동 지역에서의 건설 프로젝트 참여는 기술 축적과 자본 축적의 기회를 제공했지만, 동시에 가족 해체와 사회적 갈등이라는 인간적 비용도 수반했습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피살은 한국 현대사의 중대한 정치적 전환점이었지만, 경제 정책의 연속성과 단절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흥미로운 사례를 제공했습니다. 개발독재 체제의 종료와 함께 경제 정책의 민주적 정당성 확보라는 새로운 과제가 대두되었습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정치적 민주화 요구와 경제 발전 논리 사이의 긴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경제 성장이 반드시 정치적 자유와 사회적 정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 모순을 드러냈습니다.
1980년 컬러TV 방송 시작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한국 사회의 생활 문화와 소비 패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대중 매체의 발달과 함께 사회 통합과 문화적 동질성 형성에 기여했지만, 동시에 지역 간 정보 격차와 소비 중심 문화의 확산이라는 부작용도 가져왔습니다.
1980년대 중반 '3저 호황'은 한국 경제가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며 중진국 수준으로 도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유가, 저금리, 저달러라는 대외 경제 환경의 호조와 함께 한국 경제의 내재적 성장 역량이 결합되어 나타난 이 현상은 한국 경제의 국제 경쟁력 확보를 상징했습니다.
1986년 무역흑자 전환은 한국 경제가 만성적 무역 적자국에서 흑자국으로 전환하는 역사적 성과였습니다. 이는 수출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함께 한국 경제의 대외 의존도 심화라는 양면적 의미를 지녔습니다.
이번에 다루는 15개 사건들은 각각이 독립적 의미를 지니면서도 상호 연관된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구성합니다. 이들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한국 경제의 압축 성장이 단순한 경제적 현상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를 수반하는 총체적 사회 변동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의 한국 경제사는 성공과 실패, 성취와 모순이 공존하는 복합적 성격을 지닙니다. 이 시기의 경험은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 모델로서 국제적 주목을 받았지만, 동시에 환경 파괴, 사회적 불평등, 민주주의 후퇴라는 부정적 측면도 수반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한 저성장, 양극화, 혁신 성장의 과제들은 이 시기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성공 경험에 안주하지 않고 그 한계를 직시하며, 동시에 그 과정에서 축적된 사회적 역량을 새로운 발전 동력으로 전환하는 것이 현재 우리가 당면한 과제입니다.
각 장에서는 해당 사건의 배경, 전개 과정, 결과와 영향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되, 동시에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적 맥락을 생생하게 재현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우고자 합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의 한국 경제사는 한 사회가 어떻게 절망적 상황에서 희망을 찾고, 제한된 자원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창출하며, 국제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동감 넘치는 역사적 실험이었습니다. 이 시기의 경험은 성공과 실패, 성취와 좌절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인간적 드라마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시기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단순한 향수나 자기 위안이 아니라, 현재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와 영감을 찾기 위함입니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 이것이 역사 연구의 궁극적 목적이자 이번 이야기가 추구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