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당신을 위로하지 않을 것이다.
영적 성장을 위한 10단계 같은 것도 없고, 명상으로 평화를 얻는 법 같은 친절한 안내도 없다. 오히려 당신이 그동안 쌓아온 영적 이미지를 산산조각 낼지도 모른다. 당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믿음을, 당신이 의지하던 수행을, 당신이 자랑스러워하던 깨달음을 정면으로 의심할 것이다.
오쇼 라즈니쉬.
그는 20세기 가장 논란이 많았던 영적 스승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깨달은 자라 불렀고, 동시에 사기꾼이라 욕했다. 그는 롤스로이스 93대를 소유했으며, 성에 대해 거침없이 말했고, 기존 종교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전통적인 수행자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했다. 깨달은 사람이 저렇게 살 수 있는가? 진정한 영성이 저런 모습일 수 있는가?
하지만 바로 그 혼란이 오쇼가 의도한 것이었다.
그는 우리가 만들어놓은 '영성'이라는 안전지대를 부수고 싶어 했다. 겸손한 척, 청빈한 척, 거룩한 척하는 가면들을 벗겨내고 싶어 했다. 그 가면 뒤에 숨은 자아를, 두려움을, 위선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도발했다. 일부러 기준을 벗어났다. 일부러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그런 오쇼의 가장 불편한 가르침들을 다룬다.
사랑, 성, 명상, 자아, 자유, 종교, 죽음. 우리가 신성하다고 여기는 것들, 아름답다고 믿는 것들, 올바르다고 배운 것들에 대해 오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의 말은 때로 잔인하고, 때로 냉소적이며, 때로 너무 솔직해서 듣기 거북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 진실이 있다.
이 책은 당신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당신이 사랑이라고 믿던 것이 집착이었다는 걸 알게 될 때, 당신이 헌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비겁함이었다는 걸 깨달을 때, 당신이 영적이라고 자부했던 것이 또 다른 자아 게임이었다는 걸 마주할 때, 당신은 화가 날 수도 있다. 책을 덮고 싶을 수도 있다. "이건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오쇼는 당신이 동의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는 당신이 깨어나기를 바랐다. 당신이 의심하기를, 질문하기를, 스스로 보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는 당신을 흔들려고 했다.
이 책은 하나의 큰 흔들림이다.
각 장은 독립적으로 읽을 수 있다. 순서대로 읽어도 되고, 끌리는 장부터 읽어도 된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든, 그곳에서 당신은 흔들릴 것이다.
이 책은 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확신을 흔든다. 당신의 믿음을 의심한다. 그것이 오쇼의 방식이었다. 그는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 아니라, 물음을 던지는 스승이었다. 그는 당신에게 따라야 할 길을 보여주는 대신, 당신이 걷고 있는 길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후, 당신은 어쩌면 더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혼란은 나쁜 것이 아니다. 확신에 차서 잘못된 길을 가는 것보다, 혼란스러워하면서 깨어 있는 것이 낫다.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잠들어 있는 것보다, 질문을 안고 깨어 있는 것이 낫다.
오쇼는 당신을 깨우려고 했다.
이 책도 그렇다.
당신이 이 책을 사랑하든 미워하든, 동의하든 반발하든, 중요한 것은 당신이 깨어 있는가이다. 당신이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의식적으로 보는가이다. 당신이 믿음 속에서 잠드는 대신 의심 속에서 깨어 있는가이다.
만약 이 책을 읽고 화가 난다면, 그 화를 들여다보라. 당신의 무엇이 이 책을 통해 건드려졌는가? 어떤 믿음이 이 책을 통해 위협받았는가? 어떤 자아가 당신을 방어하려 하는가?
만약 이 책을 읽고 불편하다면, 그 불편함을 피하지 마라. 그 불편함이 정확히 당신이 봐야 할 지점이다. 당신이 숨기고 싶은 곳, 외면하고 싶은 곳, 변명하고 싶은 곳이다.
만약 이 책을 읽고 동의한다면, 조심하라. 동의는 또 다른 잠일 수 있다. "맞아, 나도 이렇게 생각했어"라고 말하는 순간, 당신은 다시 확신 속으로 빠진다. 오쇼의 말에 동의하는 것은 오쇼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스스로 보는 것만이 이해다.
이 책은 오쇼에 대한 책이지만, 동시에 당신에 대한 책이다.
오쇼가 비판한 것은 저 멀리 있는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위선,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 우리 안에 있는 자아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신은 계속해서 거울을 보게 될 것이다. 불편하지만 정직한 거울을.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말하고 싶다.
이 책에 쓰인 오쇼의 가르침은 완벽하지 않다. 오쇼 자신도 완벽하지 않았다. 그는 모순적이었고, 논란적이었고,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 생명이 있다. 완벽하게 포장된 가르침은 죽은 가르침이다. 살아 있는 가르침은 언제나 거칠고, 모순적이고, 불편하다.
이 책을 신성한 경전처럼 읽지 마라. 이 책을 무조건 믿지도 마라. 이 책과 싸워도 좋다. 이 책을 던져버려도 좋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깨어 있는 것이다.
오쇼는 말했다. "나를 믿지 마라. 스스로 보라."
이것이 이 책의 유일한 메시지다.
이제 당신은 선택할 수 있다. 이 책을 계속 읽을 것인가, 여기서 멈출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것은 당신의 자유다. 하지만 만약 계속 읽기로 했다면, 준비하라. 당신이 소중히 여기던 것들이 흔들릴 것이다. 당신이 확신하던 것들이 의심될 것이다. 당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던 땅이 흔들릴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흔들림 속에서, 어쩌면 당신은 진짜로 깨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