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괴테의 불멸의 출세작, 유럽을 뒤흔들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25세였던 1774년에 발표한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출간과 동시에 유럽 전역에 이른바 ‘베르테르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청년들은 주인공 베르테르를 따라 푸른색 연미복과 노란색 조끼를 입고 다녔으며, 일부는 그의 비극적인 최후를 모방하기에 이르렀다. 이 소설은 단순히 한 남자의 실연 기록을 넘어, 봉건적인 구습과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에 반항하며 인간의 순수한 감정과 격정을 찬양했던 독문학사의 ‘질풍노도(Sturm und Drang)’ 운동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2. 제목과 이름에 담긴 번역의 쟁점
오랫동안 한국 독자들에게 익숙한 제목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사실 언어학적으로 정교한 검토가 필요한 제목이다.
· 성명 표기의 변천: 남주인공의 이름인 'Werther'는 독일어 원음으로 '베어터' 또는 '베르터'에 가깝다. '베르테르'라는 표기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시절, 로마자 철자를 그대로 음차하거나 일본식 번역의 영향을 받은 결과물이다.
·'슬픔'인가 '고통'인가: 독일어 원제에 쓰인 'Leiden'은 단순한 정서적 슬픔(Sorrow)을 넘어 육체적·정신적 고통과 고뇌, 즉 '수난(Passion)'에 가까운 무게를 지닌 단어다. 2000년대 이후 독일 문학 전공자들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젊은 베르터의 고통』 혹은 『고뇌』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을 내놓고 있다. 이는 '워더링 하이츠'와 '폭풍의 언덕'의 사례처럼, 관습적인 제목과 정확한 번역어가 공존하며 점진적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3. 현실과 허구의 경계: 실화가 낳은 비극
이 소설은 괴테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과 지인의 충격적인 실화라는 두 가지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괴테와 로테: 1772년 6월 9일, 괴테는 베츨라 외곽의 무도회에서 샬로테 부프(Charlotte Buff)* 만난다. 맑은 눈과 활달한 성품을 지닌 그녀는 곧바로 괴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미 공사관 서기관인 케스트너(Kestner)라는 약혼자가 있었고, 두 사람은 공공장소에서 친구처럼 행동했기에 괴테는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던 괴테는 결국 작별 인사도 없이 베츨라를 떠났다.
·예루살렘의 권총 자살: 괴테가 떠난 뒤, 친구인 예루살렘(Jerusalem)이 유부녀인 헤르트 부인을 연모하다 케스트너에게 빌린 권총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괴테는 케스트너로부터 이 비극적인 사건의 전말을 보고서 형식으로 전해 받았고, 이 기록의 상당 부분을 소설 속 베르테르의 최후에 반영하였다.
4. 서사 구조와 줄거리의 특징
본작은 친구 빌헬름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서간체로 이루어져 있어, 독자로 하여금 베르테르의 내면에 깊이 몰입하게 만든다.
· 제1부: 찬란한 기쁨과 조우
젊은 예술가 베르테르는 발하임이라는 평화로운 마을에서 운명적으로 로테를 만난다. 그녀는 어머니를 여의고 동생들을 돌보는 헌신적이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여인이었다. 두 사람은 문학과 예술에 대해 교감하며 깊은 우정을 쌓지만, 베르테르의 감정은 걷잡을 수 없는 사랑으로 번져나간다.
·제2부: 절망의 심연과 파멸
로테가 알베르트와 결혼한 뒤, 베르테르는 사회적 성공을 꿈꾸며 공사관 비서로 일하지만, 귀족 사회의 속물근성에 환멸을 느끼고 사직한다. 다시 돌아온 로테의 곁에는 확고한 가정을 꾸린 알베르트가 있었다. 이성적인 알베르트와 감성적인 베르테르는 결코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한다. 결국 로테마저 자신의 감정에 두려움을 느끼며 베르테르를 멀리하자, 그는 죽음만이 이 숭고한 사랑을 완성할 유일한 길이라 믿으며 알베르트의 권총으로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5. 죽음 이후의 비장미
베르테르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파멸이 아닌, 그를 아꼈던 주변인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긴다. 로테는 그의 자살 소식에 실신하고, 알베르트는 그녀의 충격을 염려해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못한다. 작가는 로테의 비탄을 직접 묘사하는 대신 침묵함으로써 오히려 극의 비장미를 극대화한다. 그를 가족처럼 따랐던 숙박집 주인의 아들이 그의 시신을 붙들고 오열하는 장면은 베르테르가 지녔던 인간적인 매력과 그의 부재가 가져온 슬픔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베르테르는 결국 자신의 유언대로, 두 그루의 보리수나무가 드리워진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땅에 영원히 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