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를 모른다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다. 왕자와 거지가 옷을 바꿔 입고 신분이 뒤바뀐다는 이야기 정도는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어린 시절 축약된 동화로 읽은 뼈대뿐이다. 원전은 4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인데, 이것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동 소설의 금자탑이라 불리는 이 작품이 성인 독자에게도 고전으로서 유효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그 이면에 담긴 문제의식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 작가 마크 트웨인과 집필 배경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은 본명이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Samuel Langhorne Clemens)인 미국의 국민 작가다. 그는 제도권 교육이 아닌 삶의 경험과 독서를 통해 스스로 창작을 익힌 천부적인 소설가로, 헤밍웨이가 말했듯이 모든 미국의 현대문학이 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주리주에서 태어나 미시시피 강변의 소도시 한니발에서 자란 그는 열한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인쇄공, 식자공, 증기선 수로 안내인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이러한 체험들이 그의 문학적 자산이 되었고, 생생한 인물 묘사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말투, 뛰어난 유머와 풍자로 미국 근대 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게 되었다.
『왕자와 거지』는 1881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트웨인의 첫 번째 역사 소설이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원래 희곡으로 구상되었으며, 처음에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을 배경으로 하려다가 16세기로 시대를 더 거슬러 올렸다. 트웨인은 두 번째 유럽 여행에서 돌아온 후 영국과 프랑스 역사에 관한 책을 탐독하며 이 작품을 구상했는데, 당시 이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집필 중이었다. 그는 자신의 자녀들인 수지와 클라라에게 이 책을 헌정하며 '모든 시대의 젊은이들을 위한 이야기'라는 부제를 붙였다.
# 줄거리의 핵심
16세기 영국 런던, 같은 날 두 아이가 태어난다. 한 아이는 온 나라가 환영하는 왕자 에드워드 튜더이고, 다른 한 아이는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거지의 아들 톰 캔티다. 왕자는 비단옷에 싸여 궁전에서 자라고, 톰은 누더기를 걸치고 오팔 거리의 빈민가에서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학대받으며 자란다. 그러나 톰은 동네에 사는 앤드루 신부에게 글과 라틴어를 배우며 왕자를 동경하는 꿈을 키워간다.
어느 날 톰은 웨스트민스터 궁전 근처를 배회하다가 에드워드 왕자를 만나게 된다. 경비병에게 쫓겨나려는 톰을 본 에드워드가 그를 궁전 안으로 데려오고, 두 소년은 서로의 삶에 대한 호기심에 옷을 바꿔 입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소년은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 옷을 다시 바꿔 입기도 전에 에드워드는 거지로 오해받아 궁전에서 쫓겨나고, 톰은 왕자 행세를 하게 된다.
이후 에드워드는 정신 나간 거지 취급을 받으며 거리를 떠돌고, 도둑들의 소굴에 붙잡히기도 하며 백성들의 처참한 삶을 직접 목격한다. 그 과정에서 몰락한 기사 마일스 헨든을 만나 보호를 받는다. 한편 궁전에서는 톰이 왕자의 기억을 잃었다고 생각하며, 헨리 8세가 죽자 톰은 새 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결국 대관식 날, 진짜 에드워드가 나타나 옥새의 위치를 밝힘으로써 자신의 정체를 증명하고, 두 소년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 역사 소설과 아동 소설의 새로운 지평
『왕자와 거지』는 전통적인 역사 소설과 아동 소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아동 소설은 도덕적 교훈에 지나치게 얽매여 문학적 가치가 낮고 정작 어린이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트웨인은 흥미진진한 모험 속에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자연스럽게 녹여냄으로써 재미와 교훈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의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는 이 작품을 "지금까지 어린이들을 위해 쓰인 책 가운데 가장 훌륭한 책"이라고 극찬했다.
역사 소설로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종래의 역사 소설들이 역사적 사실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었던 것과 달리, 트웨인은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으로 사실들을 자유롭게 변형했다. 실제로 1547년 에드워드 6세는 아홉 살이었지만 소설에서는 열서너 살로 설정했고,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 대관식도 하루로 압축했다. 영국 역사에서 인용했다는 구절 상당 부분도 트웨인이 직접 창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하나의 사실보다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보다 보편적인 삶의 진실에 접근하고자 했다.
# 유쾌한 웃음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풍자
표면적으로 보면 신분이 뒤바뀐 두 소년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이지만, 그 이면에는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시대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다. 트웨인은 왕자에게 거지의 누더기를 입히고 거지에게 왕자의 비단옷을 입힌 다음, 모두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규범이나 사회 현상을 낯선 눈으로 뒤집어 보게 함으로써 숨어 있는 불편한 진실을 재치 있게 폭로했다.
작품에서 왕자가 도둑 굴과 민가, 감옥을 전전하는 동안 무고한 백성들이 마녀나 도둑으로 몰려 가혹한 법에 따라 끔찍하게 처형되는 장면이 수차례 등장한다. 스타킹을 벗자 폭풍우가 왔다는 이유로 마녀로 몰려 화형당할 위기에 처한 모녀의 이야기, 배고픔이 죄가 되어 매질당하며 떠돌다 노예로 팔려간 농부 요컬의 기구한 사연 등은 당시 영국 사회의 잔혹한 법과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트웨인 자신도 이 작품의 의도에 대해 "당시 법의 가혹함을 왕 자신에게 직접 겪게 함으로써 독자들이 실감할 수 있게 하려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왕실의 낭비와 허식에 대한 풍자도 날카롭다. 선왕이 6개월간 2만 8000파운드를 탕진하는 동안 시종 1200명은 봉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대목에서, 거지 출신 톰이 왕실의 규모를 줄이자고 제안했다가 오히려 '바보 같은 말'을 했다며 얼굴을 붉히는 장면은 뼈 있는 웃음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