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투르게네프(Ivan Turgenev, 1818~1883)의 『첫사랑(Первая любовь, First Love)』은 1860년 잡지 『독서문고』에 발표된 중편소설이다. 반자전적 성격을 가진 이 작품은 작가가 일생 동안 가장 아낀 소설로 전해지고 있다. 투르게네프는 이 작품에 대해 "『첫사랑』은 창작이 아니라 나의 과거"라고 직접 언급할 정도로 자신의 실제 경험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이 소설은 발표 당시 비평가들 사이에서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일부는 당대의 긴박한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다루지 않는 가벼운 소재를 비판했고, 다른 일부는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여자를 사랑하고 젊은 여성이 유부남의 정부가 된다는 부도덕한 내용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프랑스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투르게네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작품의 여주인공 지나이다를 극찬했으며,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직접 황후에게 이 소설을 읽어주며 기뻐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생애와 자전적 배경
투르게네프는 1818년 러시아 중부 오룔 시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방탕과 도박으로 타락한 인물이었고, 어머니는 수많은 농노를 거느린 전제 군주적 성격의 여성이었다. 이러한 가정환경은 그의 문학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첫사랑』의 자전적 배경을 이해하려면 투르게네프 집안의 특수한 사정을 알아야 한다. 투르게네프의 할아버지 니콜라이가 빚을 갚지 못해 채권자 감옥에 끌려갈 위기에 처하자, 아들 세르게이(투르게네프의 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잘생긴 외모를 이용해 부자 여성과 결혼해달라고 애원했다. 결국 세르게이는 자신보다 일곱 살 연상인 대지주 바르바라와 결혼했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이반이 태어났다. 당연히 부부관계가 좋을 리 없었고, 투르게네프의 아버지는 도박과 외도로 결혼생활을 보내다 일찍 세상을 떴다.
소설 속 이야기는 투르게네프 자신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이웃에 살던 젊은 여성 캐서린 샤호프스코이 공작녀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그는, 나중에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의 정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충격적인 경험이 수십 년 후 『첫사랑』이라는 걸작으로 승화된 것이다.
투르게네프의 사랑에 대한 철학은 그의 평생에 걸친 연애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1843년 프랑스 오페라 가수 폴린 비아르도의 공연을 보고 첫눈에 반해 평생 그녀 곁을 맴돌았다. 폴린은 이미 유부녀였지만, 투르게네프는 그녀의 남편과도 친하게 지내며 이상한 삼각관계를 유지했다. 투르게네프의 사랑은 마치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성스러운 숭배를 간직한 중세 기사들의 사랑과도 같았으며, 그것은 아름다움, 즉 예술에 대한 믿음이자 신앙이기도 했다. 모파상은 투르게네프와 폴린의 관계를 "19세기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고 평가했다.
줄거리
이 작품은 40대가 된 주인공 블라디미르가 16세에 겪었던 첫사랑을 회상하고 친구들에게 노트에 써서 남긴 수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야기는 세 명의 중년 남성이 모여 각자의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중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는 자신의 첫사랑이 평범하지 않아 글로 써서 읽어주겠다고 말한다.
블라디미르가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16살 때, 가난한 공작 부인이 별채에 이사를 온다. 공작 부인에게는 지나이다라는 이름의 21살 된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담 너머로 그녀의 모습을 본 블라디미르는 그녀에게 한눈에 반해 버린다. 그의 눈에 비친 지나이다는 도도한 아름다움과 거침없는 매력을 가진 처녀였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여러 청년들을 꼼짝 못하게 휘어잡는다. 블라디미르도 이 무리에 끼어들어 그녀의 환심을 사려 애쓰지만, 그녀는 블라디미르를 동생이나 친구처럼 대할 뿐이었다.
지나이다는 개성이 강하고 적극적인 처녀로 자신을 숭배하는 뭇 남성들을 휘어잡아 자신에게 복종하도록 한다. 블라디미르는 그녀 마음에 들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지나이다는 말괄량이 같은 모습이 아니라 진지하고 여성적인 모습을 띠기 시작한다.
블라디미르는 지나이다를 연모하는 무리 중 한 명에게서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가 따로 있다는 말을 듣는다. 질투에 휩싸인 그는 칼을 품고 정원에 숨어 연적이 나타나길 기다린다. 그런데 그가 발견한 그 '연적'이란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다. 뜻밖에도 그 연적이 자신의 아버지임을 발견하고 큰 충격에 휩싸인 블라디미르는, 자신의 미래가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나이다의 모습에서 사랑의 신비와 공포를 느끼고 비로소 첫사랑의 열병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블라디미르의 아버지는 결국 지나이다의 사랑을 뿌리친다. 그리고 어느 날 블라디미르는 아버지가 지나이다의 팔을 채찍으로 때리는 장면을 목격한다. 맹목적인 사랑에 빠져 도저히 헤어나지 못하는 그녀에게 채찍질로써 자신의 단호한 마음을 표현하고, 그녀 또한 포기하기를 요구한 것이다. 그때 블라디미르는 지나이다가 빨갛게 부어오른 자기 팔의 채찍 자국에 거듭 입 맞추는 모습을 본다. 그녀는 원망도 미움도 없이, 사랑하는 이가 자신에게 만들어 준 상처까지 사랑한 것이다.
그 후 아버지는 여자의 사랑을 두려워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블라디미르는 지나이다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나 그가 그녀를 찾아갔을 때, 지나이다는 이미 아이를 낳다가 죽은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