맙소사, 이런 일이!
사람을 잘못 덮쳐
싸가지론 명불허전인 동정남을 가져버렸다.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았으니 책임지라고 달라붙는,
이 오만한 싸가지 찰거머리 왕자님을
제발 누가 좀 떼어줘!
“오빠도 알잖아요. 아무리 애를 쓰고 잊으려고 노력해도
오빠가 제 가슴에서 지워지지가 않아요. 오빠, 제발 부탁이에요.
오늘 하룻밤만. 저 딱 한 번만 안아주시면 안 돼요?”
애원하는 눈빛으로 내가 점점 다가가자 그는 한 걸음씩 뒷걸음질 쳤다.
‘물러설 수 없다’ 는 나의 절박한 기세에 눌렸는지 그는 벽 코너에 몰려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달콤한 열기를 터트리며 그동안 뜨겁게 갈망하고 훔치고 싶었던 그의 입술 위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달아오른 내 입술을 그의 붉은 입술에 문대 버렸다.
- 본문 중에서 -
[본문 첨부]
강남의 한 커피전문점.
답답하다 못해 속이 터져 문드러질 것 같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벌떡 일어나 앞에 앉아 있는 이 답답한 남자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치고 싶었다.
‘야, 이수빈. 너 조선시대에서 타임머신 타고 왔니?’
아니,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그 짓 한번 했다고 결혼하는지. 아마 그러면 대한민국의 성인 남녀 99.9%의 사람들이 이미 기혼일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도 뒷구멍으로는 계집들이랑 할 짓, 못할 짓 다했는데 겨우 하룻밤, 만리장성 쌓았다는 이유로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 눈앞의 남자 때문에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침대 위에서 알몸으로 겨우 한번 뒹굴었다고 내게 결혼을 요구하는 눈앞의 이 남자에게 차가운 현실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에구……. 이 말도 안 되는, 원흉의 시작이 나로부터 비롯되었으니 누굴 탓하겠는가. 다른 이들 앞에서는 속 시원히 할 말 다하고 당당하다 못해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로 정평이 나 있는 정하란이었지만, 지금 그 앞에서는 주눅 들어 깨갱거리는 강아지처럼 잔뜩 졸아 있었다.
“하란아, 다음 주에 너희 부모님 찾아뵐까 하는데 네 생각은 어때?”
그의 말에 내 눈이 번쩍 뜨였다. 기겁한 난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다. 필사적으로 그를 막기 위해 몸을 숙이며 그의 팔을 세게 붙잡았다.
“오빠, 안 돼요. 왜 이러세요. 오빠가 이렇게 나오면 제가 미안해지잖아요. 오빠는 저 사랑하지도 않는데……. 저 정말 책임지지 않아도 돼요. 이번 일로 폐 끼치고 싶지 않아요. 그저 짝사랑했던, 제 간절했던 그 마음을 알아주세요. 제발.”
애타는 나의 애원에 놀랍게도 그의 얼굴이 약간 붉어지더니 고귀하고 잘나신 눈을 내리까셨다. 난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의 잘생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수줍어하다니, 이건 정말 입만 열면 싸가지 열전 이수빈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에게 제발 그의 본모습으로 돌아오라고 사정하고 싶었다. 30분 내내 ‘책임질 필요 없다.’고 목이 쉴 정도로 사정하는데 이 웬수는 자꾸 딴말만 해댄다.
“오빠! 지영이 언니도 생각하셔야죠. 그 언니는 어떡해요. 오빠만 바라본 게 무려 8년이잖아요.”
“그럼, 너는?”
“전 정말 하룻밤으로 충분해요. 오빠가 제 마음을 알아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요.”
거짓말하는 내 자신이 뻔뻔하고 가증스러웠지만 스스로 욕하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찰거머리 같은 그를 떼어 놓으려면 이 방법밖엔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진실을 안다면…… ‘악! 안 돼.’ 아마 난 저 세상에 있으리라.
“오해하지 마. 지영과 내 사이는 단순한 친구 관계야. just a friend. she is like my sister(성관계 없는 단순한 친구 사이). 걔한테도 몇 번이나 확실히 말했어. 하란이 넌 전혀 걱정할 필요 없어.”
그가 달래듯 부드럽게 속삭였다. 사정하며 그의 팔을 꽉 붙잡은 내 손에 그의 손이 부드럽게 겹쳐지자 온몸에 소름이 쫙 올랐다. 차라리 진실을 다 토하고 이 자리를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실낱같은 이성이 나를 막았다. 도대체 싸가지 명불허전 이수빈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날카롭고 매서웠던 그의 눈빛이 버터라도 발랐는지 다정하게 빛나고, 내 손이 실크라도 되듯 살짝살짝 와 닿는 그의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그의 눈이 별처럼 반짝 빛나고 볼은 수줍게 물들었다. 살짝 미소를 머금고 날 뚫어지게 응시하는 그가 내 눈엔 미친놈, 아니 평상시에 그가 입만 열면 말하던 무뇌아에 얼빠진 놈 같았다.
‘너 왜 이래? 정신 차려, 싸가지 명불허전! 바보 바이러스가 옮는다고. 난 네가 옆에 오지도 못하게 했던, 100미터 떨어지라고 했던, 그렇게도 네가 싫어하던 무뇌아 정하란이라구.’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도를 닦듯 숨을 크게 내뱉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그에게 잡힌 손을 살짝 빼냈다. 맙소사! 손에 닭살이 쫙 올라 있었다.
“내가 네 옆으로 갈까?”
‘아…… 안 돼!’
그가 갑자기 일어나서 내 옆에 앉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가 가늘고 긴 예술적인 손가락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만지자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숨도 쉬기 불편해 온몸이 불안하게 들썩거렸다.
“오…… 오빠, 왜 이래요?”
죽을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그를 피해 몸을 그의 반대편으로 기울이는데, 놀랍게도 내 귓가에 그의 더운 숨결이 와 닿았다. 그가 말을 내뱉을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네 열정적인 사랑 고백에 나도 모르게 포로가 되어 버렸나봐. 어쩌지, 네가 아주 예뻐 보여.”
그의 눈이 열정의 불꽃처럼 타올랐다. 날 통째로 삼킬 것 같은 이글거리는 그 눈빛에 나는 혀를 깨물고 칵 죽어 버리고 싶었다. 하필이면 이런 범생을, 그것도 숫총각을 건드려선.
불타는 그의 눈빛을 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지금은 그 어떤 사탕발림으로도 그를 설득시킬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랑 결혼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내 인생 ‘종’ 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