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디 접속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강제 새로 고침(Ctrl + F5)이나 브라우저 캐시 삭제를 진행해주세요.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리디 접속 테스트를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 방법을 안내드리겠습니다.
테스트 페이지로 이동하기

2차 세계대전의 민중사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역사

2차 세계대전의 민중사

민중의 전쟁 VS 제국의 전쟁
소장종이책 정가27,000
전자책 정가30%18,900
판매가18,900

2차 세계대전의 민중사작품 소개

<2차 세계대전의 민중사> 민중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2차 세계대전
야만, 압제, 독재, 파시즘, 제국주의와 맞서 싸웠던 사람들
2차 세계대전은 과연 ‘좋은 전쟁’이었나?

민중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2차 세계대전에 관한 책이 출간됐다. 그간 2차 세계대전은 영국, 미국, 소련 등 연합국과 독일, 일본 등 추축국의 시각으로 바라본 게 대부분이었다. 즉 선한 연합국이 악한 추축국을 물리친 전쟁, 정의가 불의에, 민주주의가 독재 정권에, 자유가 파시즘에 승리한 전쟁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 결과 지금도 2차 세계대전은 ‘좋은 전쟁’, ‘인류를 위해 승리한 전쟁’이었다는 신화에 갇혀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저자 도니 글룩스타인은 2차 세계대전은 연합국이 추축국과 벌인 단일한 전쟁이 아니라, 뚜렷이 구별되는 두 개의 전쟁이 있었다고 말한다(평행 전쟁). 즉 하나는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벌인 ‘제국주의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파시즘, 야만, 압제, 독재 정권에 맞서 민중이, 민중을 위해 수행한 ‘민중의 전쟁’이다. 저자는 열강의 지배자들이 자기들만의 제국의 이익을 냉소적으로 추구하는 동안, 그 주민들의 다수는 매우 다른 전쟁을 치렀음을 보여준다.

제국주의 전쟁 수행자들, 특히 지배계급들은 그들이 특권을 누리는 현재 상태를 내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싸웠고, 그에 반해 민중의 전쟁 수행자들은 모든 이를 아우르는 진정한 인간해방과 더 공정하고 민주적인 미래를 위해 분투했다. 제국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인명을 희생시켰지만(대표적으로 3만 5000명에서 7만 명 사이의 사람들이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드레스덴 폭격과 단기적으로 20만 명이 사망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공격을 들 수 있다), 빨치산과 게릴라들은 침략으로부터 현지 주민들을 보호하고 자신들의 행동이 민간인들에게 제기하는 위험에 대해 고뇌했다. 저자는 종래의 관점과는 전혀 다른 민중의 시각으로 2차 세계대전을 바라보면서 이 ‘민중의 전쟁’이 지닌 가치를 오롯이 드러낸다. 은폐된 또 하나의 전쟁(민중의 전쟁)을 망각의 늪에서 건져 올리고 제국주의 전쟁의 위선을 폭로하는 이러한 사례들은 2차 세계대전을 새롭게 이해하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출판사 서평

미국·영국·소련 등 연합국은 왜 ‘민중의 전쟁’을 탄압했나?
그들은 진정 파시즘으로부터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싸웠을까?
2차 세계대전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책

2차 세계대전을 민중의 시각으로 바라보려 한다는 점과 함께,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나라의 역사가 풍부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연합국과 추축국 진영 사이에 끼여 있던 국가들(그리스,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라트비아), 연합국 진영의 국가들(프랑스, 영국, 미국), 추축국 진영의 국가들(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그리고 아시아 국가들(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의 역사가 모두 14개 장에 소개되어 있다. 무엇보다 한국어 문헌 자체가 드문 국가들인 그리스, 유고슬라비아, 라트비아, 폴란드,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등의 역사가 소개되어 있어, 2차 세계대전을 한층 더 깊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나라들의 역사도 저자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곧 아래로부터의 관점이다. 나치 체제 붕괴 후 전국에 100개가 넘는 안티파(반파시트 위원회)가 생겨나 자치 권력을 행사했다는 독일의 역사는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부분이다. 인종주의적 시각으로 미국의 역사를 살피는 사례도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나치즘보다 공산주의가 더 큰 위협 요소라고 본 영국이 지속적으로 독일에 유화 정책을 폈던 점이나, 스탈린이 다른 국가의 공산주의자들을 도구적으로만 이용한 점, 노동계급을 진압하기 위해 오히려 히틀러에게 부역하는 것을 택한 프랑스 비시 정부의 사례는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대목이다. 아시아의 반식민지 운동을 유럽의 레지스탕스 운동과 동등하게 다루는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익숙하지 않은 나라들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책에 옮긴이 주와 많은 사진을 추가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전쟁을 했는가?
제국주의 전쟁의 위선을 폭로하다

“처칠은 부역자들을 반파시스트들보다 선호했고, 나치를 보조한 자들을 민중의 레지스탕스보다 선호했다!” “명백히, 파시즘과 맞서는 단호한 행동은 2차 세계대전 동안 처칠의 주된 동기가 아니었다.”
저자는 한마디로 연합국과 추축국은 ‘제국주의 전쟁’을 치렀으며, 그 전쟁의 의미는 자신들 제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즉 ‘제국주의 전쟁’은 누가 지배해야 하는가를 놓고 연합국과 추축국 사이에 벌어진 다툼이었다는 것이다. 일례로 처칠과 스탈린은 1944년 10월 모스크바에서 만나 이른바 ‘퍼센트 협정’을 체결하며, 그리스,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등의 지분을 나눈다. 새로운 시장을 누가 더 많이 점유하느냐는 협정이었다. 그리스,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등은 처칠과 스탈린의 눈에는 새로운 식민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들 국가 구성원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협정이었다. 미국 또한 ‘우리가 만들 평화는 석유의 평화, 황금의 평화, 해운의 평화’라며 전쟁을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이용했다.
저자는 연합국 제국주의 전쟁 수행자들이 파시즘을 물리치기 위해 전쟁을 수행한 건 아니라고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처칠만 하더라도 무솔리니를 만나고 난 뒤 그에게 매혹된 바 있었으며,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는 동안 민중의 전쟁을 대하는 태도도 내내 적대적이었다. 최소한의 군사적 효과를 위해 민간인들을 의도적으로 살육했을 뿐만 아니라, 소련이 혼자 힘으로 승리하고 서유럽 쪽으로 행군할 때까지 제2전선을 여는 것을 거부한 것은 처칠이 수행하고 있는 전쟁의 본질을 보여주는 오싹한 증거였다. 특히 그리스에서 그가 행한 태도는 가히 잔인하다고 할 만하다.
당시 그리스 레지스탕스 EAM/ELAS의 싸움은 나치에 맞선 것일 뿐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리스 레지스탕스는 자못 성공적이었다. 대중 행동주의를 촉발했고, 자치 기구를 구성했고, 자체 법정을 만들었고, 특히 여성의 권리 향상이 두드러지게 향상되었다.
하지만 스탈린과 맺은 퍼센트 협정에서 영국은 그리스를 90퍼센트 차지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때부터 영국은 그리스 레지스탕스를 탄압한다. 심지어 1944년 독일군이 철수를 하기 시작할 때, 그리스 레지스탕스를 공격하기 위해 독일과 합동 작전을 하는 방안까지 모색했다. 결국 아테네에서 그리스 레지스탕스를 진압하는 데 성공한 영국은 그리스 민중이 그토록 싫어하던 왕정을 복고시켰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을 제거해버리고 구체제를 부활시킨 것이다. 더군다나 나치 협력자들을 내세워 레지스탕스 세력을 파괴했고, EAM/ELAS 여성들은 고문-강간-죽음으로 내몰리기도 했다. 한 레지스탕스 여성은 이렇게 증언했다. “해방 후 …… 우리, 점령에 맞서 싸웠던 우리는 나쁜 놈들이 됐고, 나치와 협력했던 자들, 그들이 이제 좋은 사람이 됐다. 정부는 그들에게 보상하고 우리를 처벌했다.”

소련은 ‘민중의 전쟁’을 외면했다

1939년 8월 23일 독일과 소련은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는다. 이 조약의 비밀 의정서에는 폴란드를 분할 점령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9월 27일 나치와 소련은 폴란드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 승리를 자축하는 시가행진을 벌인다. 스탈린은 “폴란드 민중을 해방시키기 위해” 폴란드에 왔을 뿐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했다. 독일과 소련의 침공으로 폴란드인 21만 6000여 명이 사망했다.
저자는 소련 또한 제국주의 전쟁 세력으로 규정한다. 사실 소련은 나치를 패퇴시키는 가장 결정적인 전투를 펼쳤다. 하지만 여러 번 민중의 전쟁을 좌절시키기도 했다. 특히 소련이 채택한 인민전선주의는 민중의 전쟁 진영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인민전선주의는 파시스트를 자칭하지 않으면 우익이라 하더라도 연합해야 하며, 또한 소련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민중의 전쟁 진영에는 공산주의자들이 특히 많았는데, 그들은 다른 어떤 집단보다도 파시즘과 맞서 대중적 레지스탕스를 조직하고 이끌었으며, 더 좋은 세상에 대한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희망을 북돋웠다. 하지만 소련이 택한 인민전선주의 때문에 소련과 동맹을 맺은 제국주의 국가들을 공격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민중의 전쟁은 많은 제약을 받았다.
저자는 스탈린이 외국의 공산주의 세력을 단지 도구적으로 이용하기만 했지 그들이 펼치는 민중의 전쟁을 지원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스페인내전이 벌어졌을 때도 스탈린은 노동계급을 지원하지 않았고,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폴란드 민중의 전쟁 진영에 제때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 이로 인해 민중의 전쟁 진영은 패배하거나 큰 어려움을 겪었다.

2차 세계대전은 스페인에서 시작되었다

지은이는 독특하게 스페인내전을 2차 세계대전의 시작점으로 다룬다. 왜 그런가? 2차 세계대전이 진정 파시즘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면, 그것은 1939년 폴란드가 아니라 1936년 스페인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스페인의 노동계급을 지원하기 위해 세계 53개 국가 출신 약 3만 2000명의 국제여단 구성원이 스페인으로 왔으니 스페인내전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세계대전이었다. 그런데도 전통적으로 이 부분이 인정되지 않은 건 스페인내전 때 연합국 정부들이 무기를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코, 이탈리아 파시즘, 독일 나치즘은 이미 초기부터 연결되어 있었고, 스페인 국가주의자들이 보인 모습은 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 진영이 보인 잔인한 반인도적 행위를 예시하고 있었다. “국가주의자 지역에서 탄압은 냉혹하게, 목적의식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저항하지 않고 투항한 〔스페인 남부 항구〕 도시 말라가에서 한 주에 4000명이 총에 맞았다.”
미래의 연합국들의 태도 또한 비슷하게 이뤄졌다. 영국과 프랑스는 민중의 전쟁을 지원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프랑코 쪽을 지원했다. 소련 또한 민중의 전쟁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방관하거나 오히려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프랑코는 살아남아 1975년 사망할 때까지 스페인을 철권 통치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각 나라의 지배계급이 다시 권좌에 오르는 모습과 비슷하다.

민중의 전쟁, “중요한 것은 결코 굴복하지 않는 것”

“투쟁을 포기하지 마라. 내 상황이 당신을 제지하도록 놓아두지 마라. 만약 내가 살아남는다면 나는 생존하겠지만,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나는 내 운명을 이행하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결코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폴란드, 라트비아는 연합국과 추축국 진영 사이에 끼여 있던 나라들이다. 먼저 국토가 독일에 점령되었고, 연합국과 추축국의 싸움터가 되었다. 그 때문에 민중의 전쟁과 제국주의 전쟁 간 관계에 가장 다양한 종류의 사례를 제공했다.
유고슬라비아가 독일의 침략을 받자 티토의 빨치산과 미하일로비치의 체트니크가 결성됐다. 하지만 미하일로비치는 적보다 빨치산을 더 두려워했고 결국 독일과 협력했다. 이것은 추축국에 도전하는 유일한 세력으로서 티토의 빨치산을 원조하는 것 이외에는 영국인들과 러시아인들에게 선택지가 거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결국 민중의 전쟁과 제국주의 군대는 공조하게 됐고 티토는 승리했다.
그리스에서는 공산당의 영향을 받은 EAM/ELAS가 연합국으로부터 일부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퍼센트 협정’이 그리스를 영국 측에 배정한 이후 처칠은 아테네를 폭격하고, 미움을 받고 있는 군주제를 다시 부활시켰다. 영국은 그리스 민중의 전쟁 진영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폴란드에서는 스탈린의 냉담한 교묘함과 나치 폭력의 무차별성이 제국주의와 연계된 폴란드인 상층계급과 대다수 하층계급을 공동의 사업, 즉 레지스탕스와 적극적으로 연결되게 만들었다. 그 결과가 제국주의 전쟁과 민중의 전쟁을 모두 반영한 바르샤바 봉기였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스탈린은 바르샤바 봉기를 제때 지원해주지 않았고, 봉기 진압을 독일의 보복에 내맡겼다.
라트비아는 1939년부터 1941년까지, 그리고 1944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에 점령됐다. 이 때문인지 일부 역사가들은 소련에 반대한 사람들을 “저항자들”로 여기곤 했다. 라트비아는 경쟁하는 두 제국, 소련과 독일 사이에서 너무나 으스러졌다. 라트비아 사람들은 이 두 제국 가운데 어느 하나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을 택했다. 그래서 민중의 전쟁은 라트비아에서 결코 구체화되어 나타나지 않았다.
연합국 열강의 본국에서는 파시즘과 싸운 사람들과 제국을 유지시킨 사람들 간의 차이를 알아채는 것이 때때로 어려웠다. 미국의 경우 국내에서 폭동과 무장 충돌을 수반한 인종 경계선을 따라 균열이 발생했다. 영국에서는 주민들과 지배계급이 서로 구분되는 평행 전쟁을 수행했다는 것을 1945년 총선 결과가 확인해줬다. 격차가 가장 크게 나타난 곳은 프랑스였는데, 이곳에서는 지배계급이 드골과 페탱으로 나뉘었을 뿐 아니라 그 둘로부터 독립적으로 레지스탕스가 성장했다.
대개 추축국 진영 국가들의 상황은 평행 전쟁에 그리 유리하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국가의 제국주의적 이익이 위태로워지는 시점이 돼서야 비로소 지배계급 내 반대파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민중의 전쟁을 환영하지 않았다. 더욱이, 아래로부터 전개되는 대중 행동이 탄압에 너무나 속박됐고 그 결과 그것은 나치 체제가 외부로부터 산산조각 난 후에야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두 개의 전쟁이 연합국과 안티파 저항 세력 간의 충돌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갈라놓으려는 시도로 연합국이 파시즘과 협력이라는 타락한 전력이 있는 오스트리아 지배계급을 반나치 조직과 동일시하지 않았다면, 독일과 유사한 과정이 오스트리아에서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거기서 민중의 전쟁이 진전하기는 어려웠다.
이탈리아는 예외였는데, 연합국이 북부에 이르기 전에 무솔리니의 지배력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민중의 전쟁은 나치 점령군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협력하는 살로 공화국 부역자들에 대한 효과적인 도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치로 하여금 북부이탈리아민족해방위원회를 파괴하게 하는 상황을 연합군 사령관 알렉산더 장군이 거의 초래할 뻔하기는 했지만,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다급하게 해산되기는 했지만, 이탈리아 레지스탕스는 영속적인 정치적 유산을 남겼다.
아시아에서는 유럽 식민주의자들의 약화된 지배력, 그리고 자신들이 반제국주의적이라는 일본인들의 거짓된 주장이 제국주의 전쟁과 민중의 전쟁의 관계를 좌우했다. 인도에서는 레지스탕스가 솔직한 반식민주의 투쟁(‘인도를 떠나라’)이나 영국을 축출하기 위해 일본의 영향력을 이용하려는 시도(인도국민군)라는 형태를 취했다. 수카르노 쪽의 주저함이 있은 후, 인도네시아의 민중의 전쟁은 존재하는 모든 제국주의 세력, 일본인들, 영국인들, 네덜란드인들과 벌이는 무장 충돌을 수반했다. 베트남공산당은 연합국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이것을 얻는 데 실패한 후 강력한 반제국주의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대중의 압력과 관계를 맺었다.



저자 소개

저 : 도니 글룩스타인 (Donny Gluckstein)
토니 클리프의 아들로서, 사회주의노동자당(SWP)에서 활동하고 있다. 워릭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현재 에든버러의 스티븐슨 칼리지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외에도 파리코뮌, 1915~1920년의 서유럽 노동자 평의회 운동, 나치와 노동계급 등을 좌파의 시각으로 분석한 책을 썼다. 사회주의노동자당 SWP(트로츠키 계통 좌파 그룹)의 이론가이자 활동가였던 토니 클리프의 아들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SWP에서 활동했다.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조합 투쟁》(공저), 《마르크스주의에서 본 영국 노동당의 역사》(공저), 《서구의 소비에트: 1915~20년의 노동자평의회 대 의회》가 있다. 그 밖에 《The Paris Commune: A Revolutionary Democracy》(2006), 《The Nazis, Capitalism and the Working Class》(2012) 등 역사 속 노동자 민주주의와 저항에 관한 책을 썼다.

역 : 김덕련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에서 기자로 일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현재 인문 기획 집단 문사철에 터를 잡고 역사와 사회에 관한 책 작업을 하고 있다. 그동안 『김기춘과 그의 시대』를 쓰고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시리즈를 기획·공저했으며 『세계를 바꾸는 파업』, 『근현대사 신문』(전 2권), 『세계사와 함께 보는 타임라인 한국사』(전 5권)를 함께 쓰고 만들었다.

목차

머리말

들어가는 말
1. 스페인의 전주곡

1부 연합국과 추축국 사이에서: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폴란드, 라트비아
2. 유고슬라비아: 열강 사이에서 균형 잡기
3. 그리스: 레지스탕스와 교전하는 연합국
4. 폴란드 바르샤바 봉기
5. 라트비아: 역사를 전도시키기

2부 연합국 진영 내의 분열: 프랑스, 영국, 미국
6. 프랑스: 제국의 영광 대 레지스탕스 이데올로기
7. 영국: 통합의 신화
8. 미국: 민주주의 무기고의 인종주의

3부 추축국 진영의 민중의 전쟁: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9. 독일: 보수주의자들과 안티파Antifa
10. 오스트리아: 저항과 지배 계급의 굴복
11. 이탈리아: 노동계급과 두 개의 전쟁

4부 아시아의 민중의 전쟁: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다른 적들
12. 인도: 기근에서 독립까지
13. 인도네시아: 민중에 맞서 연합한 추축국과 연합국
14. 베트남: 반제국주의 돌파구

나가는 말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연표

찾아보기


리뷰

구매자 별점

0.0

점수비율
  • 5
  • 4
  • 3
  • 2
  • 1

0명이 평가함

리뷰 작성 영역

이 책을 평가해주세요!

내가 남긴 별점 0.0

별로예요

그저 그래요

보통이에요

좋아요

최고예요

별점 취소

구매자 표시 기준은 무엇인가요?

'구매자' 표시는 리디에서 유료도서 결제 후 다운로드 하시거나 리디셀렉트 도서를 다운로드하신 경우에만 표시됩니다.

무료 도서 (프로모션 등으로 무료로 전환된 도서 포함)
'구매자'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시리즈 도서 내 무료 도서
'구매자’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리즈의 유료 도서를 결제한 뒤 리뷰를 수정하거나 재등록하면 '구매자'로 표시됩니다.
영구 삭제
도서를 영구 삭제해도 ‘구매자’ 표시는 남아있습니다.
결제 취소
‘구매자’ 표시가 자동으로 사라집니다.

이 책과 함께 구매한 책


이 책과 함께 둘러본 책



본문 끝 최상단으로 돌아가기

spinner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