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루스 베스트 로맨스소설!
29세의 버추얼 머천다이저, 라윤. 아직도 헤어진 옛 사랑을 잊지 못하고
추억 속을 헤매고 있다. 그런 그녀 앞에 우연히 헤어진 옛 사람이 다시 나타난다면?
- 제발 할 수만 있다면 못 본 척 비껴가 주세요!
29세의 스포츠 의류 광고대행업체 디렉터, 채경. 타고난 솔직함과 발랄함으로
온갖 남자들 위를 군림하던 당당한 그녀가 이상하게 한 남자 앞에서만은 페이스를 잃는다.
접근금지 팻말을 붙여놓은 듯한 차가운 남자가 그녀를 송두리째 흔든다면?
- 절대 눈 돌리지 말고 저 좀 봐주세요!
다른 성격, 다른 개성, 전혀 다른 사랑 방식을 가진 두 여인.
그러나 단단한 우정으로 똘똘 뭉쳐 더할 수 없이 서로에게 익숙해진 그녀들.
남자들의 우정만 우정이더냐? 여기 여자들의 끈끈하고도 가증스런 우정이 있다.
독신이라 부르짖는 그녀들, 진취적인 페미니스트라 자부하는 그녀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녀들을 노처녀라 부른다.
지금 두 여인의 거대한 러브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휴일이 되어주고 싶어요.
뭐, 정 안 된다면 주말 정도라도…….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그 자신 있던 태도가 대체 갑자기 어디로 간 겁니까?”
대치 상대의 기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러나 라윤은 이 상황을 반쯤 포기했다. 뭐라고 해도 좋으니 제발 고이 보내주었으면 좋겠다. 다만 한 가지 드는 생각은…… 하필이면 이렇게 다시 만날 것은 무얼까. 그 많은 시간 동안 우연이라도 좋으니 한 번만이라도 봤으면 했을 때는 죽어도 만나지지 않더니…….
백주 대낮에 남의 차를 들이받았을 때 그 선배가 변호사일 가능성은 몇 퍼센트일까. 또 그 변호사라는 남자가 하필 바로 그 상황에 전화를 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래서 나타난 선배라는 사람이 바로 헤어진 옛 애인일 확률은 과연 몇 퍼센트일까.
‘그 희박한 확률 중에서도…… 벌써 5년이나 전에 헤어진 남자를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는 가능성은 대체 몇 퍼센트일까.’
바람이 잔잔하게 불고 있었다. 복잡한 도로를 쓸고 지나간 바람이 등 뒤에 서 있을 그의 느낌을 실어 그녀에게 전해주었다. 너무 만나고 싶었던 만큼 만나고 싶지 않았던 남자, 얄밉게도 그의 존재는 여전히 헤어지던 그 순간 그대로였다는 것을…….
도저히 돌아볼 용기가 없어 멍하니 구두코만 바라보고 있는 라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가슴 한구석을 뻐근하게 하는 남자……. 라윤은 쓸데없이 감상적이기만 한 자신을 비웃으며 올라오려는 울음을 삼켰다.
“며, 명함을 놓고 갈게요. 다, 당신 차 위에. 견적이 얼마가 나오든 책임질 테니까 그, 그만 여기서 해, 해결 보죠. 그, 그럼 이만…….”
“이봐요! 갑자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내가 당신하고 그까짓 견적 때문에 지금껏 소모전을 한 줄 알아요?”
대치 상대는 라운드 걸이 지나간 후 한시라도 빨리 재 시합을 다그치는 복서와 같은 분위기로 우렁차게 소리치고 있었다. 이 남자, 정말 끈질길세.
“확실히 잘잘못을 짚고 넘어가자 이겁니다. 견적은 그 다음 문제.”
“라윤아…….”
이별을 고하던 날 너무나 사랑하던 그의 눈동자는 더 이상 그때까지의 빛이 아니었다. 엷은 갈색의 향기로운 커피의 빛깔을 닮은 눈동자에 더없이 서늘한 한기를 담은 채 그가 한 말이 비수가 되어 여전히 심장 한구석에 꽂혀 있는데…… 아직도 그때 기억이 사라지지 않아 피가 새어 나오고 있는데…….
“어머나!”
채경이 포크와 나이프를 쥔 채 잠시 놀란 척하다가 이내 배시시 웃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소스를 잔뜩 묻힌 고깃덩어리가 뒹굴고 있었다. 장소는 바로 남자의 주름 하나 없이 빳빳한 고급 정장 위였다. 마치 멋진 추상화 한 점처럼 갈색 빛의 소스가 그의 양복 위에 멋진 문양을 그리고 안착해 있었다.
“미안해서 어쩌죠? 튕겨갔네요. 나이프질이 서툴러서요. 작년 겨울에 얼굴 전체를 뜯어고쳤는데 한동안 부작용이 나서 고생 좀 했거든요. 그때부터 이놈의 칼이 저랑 안 맞는다는 사실을 인정했어야 했는데.”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시선이 그의 양복을 머물렀지만 포크는 남은 고기를 찍고 있었다.
“그래도 음식을 남기면 안 되잖아요. 그렇죠?”
채경은 남은 고깃덩어리를 홀랑 입 안에 넣고는 질겅질겅 씹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급기야 그가 벌게진 얼굴로 벌떡 일어나더니 냅킨으로 대충 옷을 문지르듯 닦고 서둘러 몸을 돌렸다.
‘알아서 사라져 줘라.’
잔뜩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나가는가 싶던 그가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나는지 몸을 획 돌렸다.
“이봐요, 난 도대체 왜 당신이 나한테 이런 취급을.”
더 말하려던 그의 눈동자가 둥그레지더니 입이 딱 닫혔다. 채경이 몸을 구부리고 방금 그의 양복을 구르다가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포크로 찍어 올리고 있었다.
“지,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우리 집 강아지 가져다주려고요. 아깝잖아요.”
채경은 활짝 웃었다. 입가에 소스를 묻힌 채로…… 물론 매력적으로 윙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이후 더 이상의 미련 없이 레스토랑을 나가버렸다. 그제야 겨우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곧 일부러 입가에 묻힌 소스를 닦아내기 위해 백에서 거울을 꺼냈다. 자신이 생각해도 놀라운 몰골이었다. 픽 웃고는 입가를 닦고 있는데 문득 거울 속 저쪽에 어떤 남자의 모습이 비춰졌다. 아무리 봐도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채경은 거울을 남자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였다.
‘중후하고 고급스러운…….’
그를 처음 본 순간 떠오른 이미지였다. 더할 것도 없고 덜할 것도 없이 딱 그 이미지 그대로인 남자가 그녀를 쳐다보며 서 있었다. 위치로 보아 맞선 상대와 접전을 벌인 바로 뒷자리였다. 게다가 저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보건대 다 들었거나 봤다거나 둘 중 하나인데…….
채경은 거울을 탁 소리 나게 닫고는 남자를 도전적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여유 있는 걸음걸이로 저만치 가버린 상태였다. 회색 톤의 정장이 더없이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앞모습이나 눈빛은 연륜이 있어 보였다. 절대 나이 어린 사람에게서 풍겨져 나올 수 없는 분위기였다.
서른다섯? 서른아홉? 설마, 마흔 이상? 에이, 그럴 리가 없지.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
- 본문 내용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