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루스 베스트 로맨스 소설!
*2009년 전자책으로 출간되었던 [너를 원해 1.2권]의 개정판 작품입니다
촤악.
카를로가 한 움큼 쥐고 있던 모래알을 공중에 날리자, 태양 빛에 은색으로 반짝이던 모래알이 순식간에 화려한 오색 꽃가루로 변해 여름의 싱그러운 비처럼 쏟아졌다.
그를 보며 좁혀졌던 그녀의 미간이 서서히 펴지고 있었다.
그는 잠시 짧은 시간을 두며, 떨어진 꽃가루를 모으더니 다시 공중에 뿌렸다. 꽃가루가 금세 화사한 향기를 머금은 꽃잎이 되어 바람에 나풀거렸다.
수윤의 꼭 닫혔던 입술이 놀라움에 벌어졌다.
카를로가 꽃잎을 한 아름 모아 다시 하늘 위로 던졌다. 꽃잎이 탐스러운 꽃의 온전한 모양으로 사뿐히 은색 모래 위에 내려앉았다.
그녀는 신기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두 눈으로 직접 봤으면서도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모래 위에 떨어진 꽃을 한 송이 한 송이 줍기 시작했다.
홀린 듯 그녀의 눈동자가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더 바라나요?”
그녀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자, 어느새 그가 코앞에 와 서 있었다.
카를로의 행동을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으면서, 그가 제 앞으로 다가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피할 생각도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그가 다시 어떤 마술을 보일지 기대하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는 걸 깨닫자, 그녀의 귓불이 붉어졌다.
“아, 아니. 저…….”
“내 얼굴은 보기도 싫은 줄 알았는데.”
담담한 카를로의 말에 수윤은 적잖이 당황했다.
말대로 그가 싫다며 도망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빤히 숨어서 그가 부리는 재주를 구경하다 들켜버렸다. 귀부터 시작된 홍조가 얼굴전체로 번져갔다.
“당황해하지 말아요. 미안해요. 난 농담에는 소질이 없나 봅니다. 음, 아까 내가 부린 마술이 약간은 흥미롭지 않던가요?”
시원한 파도같이 가벼운 미소를 문 채 카를로가 그녀를 다정히 내려다봤다.
모래로 만들어낸 화려한 꽃다발을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울렸다.
“좀이 아니라, 많이 신기했어요.”
그녀가 감정이 묻어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한 채 솔직히 말하자 그가 빙그레 웃었다.
“관람료를 낸다면 더 재미난 걸 보여드리죠.”
“네?”
“표정을 보니 관람료를 내면서까지 보고 싶은 건 아닌가 보군요. 음……, 이 꽃을 작은 새로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겠어요?”
“네? 정말 그럴 수 있어요?”
미심쩍어 하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그의 눈에 웃음기가 스몄다.
“간단히 알아보는데 키스 한 번이면 족해요. 어때요?”
그가 꽃다발을 쥔 채 그녀를 내려다보며 제안하고 있었다.
“…….”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매지션이라는 건 잊지 않았다.
다만 마술은 감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하나의 기술일 뿐, 현란한 손재주를 부리는 눈속임이라 여기고 있던 그녀였다.
“한 번 테스트 해봐요.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 아니면 간단히 내기 할까요? 꽃으로 새를 만든다에 난 백 달러를 걸고, 당신은 못 한다에 키스를 거는 거예요. 아니면 반대로 걸어도 상관없어요.”
그가 가볍게 흥정을 하며 그녀의 호기심까지 자극하고 있었다.
“키스 한 번이면 궁금증이 풀어지는데, 싫어요? 별로 손해 가는 내기는 아니잖아요?”
“음, 새를 못 만든다에 걸죠.”
아무리 대단한 매지션이라도, 설마 살아 있는 새까지야 만들 수 있겠는가. 아무런 장치도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지금 이 상태에서.
“OK."
수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의 대답이 들려왔다.
“앗!”
그녀가 외마디 비명을 순간적으로 내질렀다.
그가 커다란 손에 들려 있던 아름다운 꽃다발을 공중에 날리며, 다른 손으로는 그녀를 휘감았다.
푸드득.
작은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눈이 믿지 못할 상황으로 커다랗게 뜨였다. 수십 송이의 꽃들이 작은 새로 변해 파닥거리며 그들 주위를 날아다녔다.
“어! 저, 정말 새가…….”
수윤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내심 그를 너무 얕잡아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재 마술사라는 명성을 거저 얻은 것이 아닐 것인데, 제 판단이 경솔했다.
“새가 나타났어요!”
“그러네요.”
그가 무덤하게 대꾸했다.
수윤은 사방에서 팔랑거리는 작은 새들을 바라보며 그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것도 잊었다. 그가 품 안에서 천천히 놓아준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작은 새 한 마리가 그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굉장히 예뻐요.”
새가 놀라 날아갈까 목소리를 낮추며 수윤이 연신 신기한 눈을 한 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어디에 숨겨놨던 거예요? 매지션에게 비밀은 생명이겠지만, 정말 어떻게 한 거죠?”
그녀의 얼굴이 호기심에 가득 차 발그스름하게 빛이 났다.
카를로의 표정이 그녀가 눈치 챌 수 없을 만큼 부드럽게 변했다. 그녀가 그의 어깨 쪽으로 가느다란 팔을 뻗어 조심스럽게 손끝으로 작은 새의 부리를 만졌다.
“와아! 정말 살아 있어요. 인형이 아니에요. 어떻게 이런 예쁜 새를 숨겨 놓을 수 있었던 거죠?”
“잠시만, 쉿.”
수윤이 쉴 새 없이 입을 쫑알거리자, 그가 입술 위로 집게손가락을 갖다 대며 그녀를 주의시켰다.
그녀가 눈썹 하나를 슬쩍 들어 올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수윤의 어깨 위로 하얀 새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한 마리 한 마리 그녀의 어깨와 머리 위에 앉기 시작하더니, 수윤의 몸이 둥지라도 되는 양 달라붙어 떠나지 않았다.
발등 위까지 내려앉은 새로 인해, 그녀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새들이…….”
“당신이 마음에 드나 봅니다.”
어정쩡하게 몸을 굳힌 채 불편하게 서 있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카를로가 입가를 끌어올렸다. 그의 얼굴이 그녀를 향했다.
“키스를 주기로 했었죠?”
“저…….”
“가져가죠.”
푸드득.
그녀 몸에 앉아 있던 새들이 일제히 날개를 펴며 하늘로 날아갔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잔뜩 긴장한 입술 위에 깃털처럼 스치듯 가볍게 닿았다 사라졌다.
“밀어내지만 말아요.”
그는 혼잣말처럼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신이 원한다고 말할 때까지 다가서지 않겠습니다.”
그녀의 입이 가늘게 떨렸다.
한순간 녹아들만큼 부드럽게 밀착된 그의 입술이 그녀의 붉고 도톰한 아랫입술을 머금었다고 여기는 순간 떠나갔다.
수윤이 제 몸을 두 팔로 감쌌다. 실제로 그의 손은 그녀에게 털끝만큼도 닿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뜨거운 품에 안긴 듯했다. 단단하고 청결한 체취가 입 끝에 남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