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늑대가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화(禍)를 죽이며 결국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게 된다는 내용이다. 불교에서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의 욕심을 버리는 것을 무척 중시한다. “우리 집안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당신은 우리의 지도자고……. 가끔은 하나를 포기해야 해요. 지금까지 이런 일은 수도 없이 많았고, 당신은 항상 옳은 결정을 내렸어요. 설사 그게 아픈 거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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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다른 이를 아프게 하는 것을 무척 슬픈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이에게 말로든, 행동이든 고의적인 상처를 주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라고 하여 말과 행동에 조심한다. “그 아이가 날 때렸어요. 처음에는 참았는데……. 그다음에도 때렸어. 그런데 아무도 모르잖아. 참았단 말이야. 이제 말할 거라고. 날 때리지 말라고. 아픈 거 싫으니까 때리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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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업(業)으로 인해 주변을 볼 수 없었던 사람이 늙어서 소중한 것을 깨닫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난……. 이제 용서받고 싶다오. 그들에게……. 그리고 진심으로 말하고 싶다오. 사랑한다고…….” “당신의 마음을 알아요.” “돌아와 주어서 고마워요.” “아버지…….” “널 진심으로 사랑한단다.”
불교에서는 Karma(카르마, 업보)를 무척 중시한다. 고로 인과응보(因果應報)적 관념을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나에게 밥을 주지만 그걸 먹었을 대 내 온몸은 차가움으로 서서히 얼어가요. 그리고는 어느 순간 모든 움직임을 멈춰야 할 정도로 아니, 내 마음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무감각의 상태로 빠지죠. 하지만 아저씨가 주는 밥은 배는 고프지만, 여전히 내 심장을 내 마음을 뛰게 해요. 아주 건강하게.” “고맙다. 라디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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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지은 업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다. 그 과정은 모두 같은 것 같지만 남성과 여성이 다른 듯 하다. 불교에서는 자아(自我(娥: 여자의 자(字))를 강조한다. “나는 내 아이가 그리워요.” “엄마, 눈물이……. 눈물이 멈추었어요.”
상처를 가진 소년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는 내용이다. “꽃은 보는 거예요.” “언제든지 꽃이 보고 싶으면 오너라.” “네.”
불교에서는 자신을 찾아서, 스스로 부처와 같이 해탈을 통한 환생적 승화((還生的 昇華)을 의미하고 있다. “그 아이의 자신에 대한 믿음이 그 아이로 하여금 진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의 귀를 그 아이에게 선물한 거란다.” “나는 날고 싶은데……. 나는 무서웠어요.” “나도 무서웠단다. 하지만……. 난 정말로 날고 싶었단다.” “너에 대한 네 마음의 믿음을 잊지 말아라.” “다음에는 걸어서 오지 말고 날아서 오너라.”
불교에서는 자신을 찾아서, 스스로 부처와 같이 해탈을 통한 환생적 승화((還生的 昇華)을 의미하고 있다. “난 정말로 날고 싶어요. 왜 자꾸 엄마는……. 안 된다고 하는데요. 난 날고 싶은데…….” “대신 너에게 네가 잃은 입을 줄 것이다.”
불교에서 가지고 있는 최고의 혜택은 결국 마음을 통한 자기 스스로의 용서인 것 같다. 쉬운 것은 아니지만, 해탈을 통한 부처적 심아적 나(心兒的我)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환생을 통해 카르마적인 업을 극복할 수 있다. “오랜 시간을 아픔 속에 있으면서 알게 된 건……. 나에게 다가오는 작은 행복들에 감사하는 소중한 마음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