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시작 동명성왕(주몽)부터 최대 영토로 전성기를 누렸던 광개토왕까지 부여에서 갈려 나온 고구려는 점차 세력을 키워, 나중에는 자신의 기원이었던 부여까지 흡수하며 팽창해나갔다. 이 과정에서 주변의 작은 세력은 물론, 대제국 한(漢)의 군현(郡縣)까지 흡수해버렸다. 고구려가 이렇게 팽창하면서 중원 제국과 갈등이 깊어졌다. 유교 원리주의를 실현하려던 왕망(王莽)의 신(新), 군현을 잃어버린 후한(後漢) 등 중국 역사 초기의 제국들은 고구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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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남방정책을 펴린 장수왕에서부터 최후의 왕 보장왕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역사에서 고구려의 영향은 비단 중원 쪽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남방의 백제·신라·가야·왜 등도 고구려의 동향에 크게 영향을 받아 움직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고구려에서 갈려 나간 백제가 많은 갈등을 일으켰다. 그 원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고구려가 팽창하며 주변의 세력들을 흡수해버리며 백제와의 완충 지대까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갈등은 백제뿐 아니라, 신라와 가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