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 동화선집

저자 - 이지현
나는 1962년 경남 울주에서 태어났다. 내가 자란 마을은 행정구역상 도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닷새마다 한 번씩 장이 열렸다. 파장이 되고 난 뒤 장꾼들이 떨어뜨리고 간 동전을 주우러 갔던 기억이 난다.
우리 동네에는 차부도 있었다. 거기서는 언양, 울산, 경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는데 경남에 속한 언양이나 울산보다 경주로 가는 버스가 더 많았다(정확하지는 않지만 30분에 한 대꼴로 다녔던 것 같다. 비포장도로를 털털거리며 달리던 버스가 펑크 나, 머리 허연 운전수 아저씨가 타이어를 갈아 끼우던 기억이 난다. 겨울에는 또 왜 그렇게 과열이 많이 되었는지 급하게 차를 세워 놓고 연기 풀풀 나는 엔진을 식히기 위해 플라스틱 통을 들고 개울로 뛰어가던 아저씨의 뒷모습도 생각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간혹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경주라고 대답한다. 고등학교를 경주에서 나왔고(나는 경주여고를 나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우리 아버지는 쉰을 겨우 넘기고 세상을 떠나셨다) 홀로 되신 어머니가 경주 시내에 소재하는 아파트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신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만 그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심정적으로 가깝게 느꼈던 거리 때문에 그렇게 대답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인텔리였던 아버지(우리 아버지는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신 시인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 아버지는 울산, 울주 지역을 통틀어 중앙지를 통해 정식으로 등단한 첫 번째 시인이었다고 한다)와 존경받아 마땅한 어머니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는데, 안타깝게도 그분들의 기대를 번번이 저버리기만 하는 못된 딸이었다. 우리 남매는 모두 다섯인데 나를 제외한 넷은 모두 착실한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나는 매사에 의욕이 없고, 비관적이며, 반항적인 아이였다. 지금 와서 되짚어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는데 그런 사연까지 여기서 시시콜콜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고, 학력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고자 한다.
나는 대학에 진학할 마음이 없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공부라는 걸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성적도 거의 바닥이었다. 그런데도 교육열이 남달랐던 내 어머니는 나를 억지로 전문대학에 진학시켰다. 그래도 책 읽는 것은 좋아하니 도서관학과에 가라는 것이었다. 거기 나오면 사서가 될 수 있으니 책을 실컷 볼 수 있지 않겠냐는 말에 넘어가 나는 결국 원서를 쓰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희한해서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전문대 졸이라는 학력이 창피해졌다. 특히 명문대를 졸업한 동생들 보기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뒤늦게 방송통신대학에 편입을 하게 되었고, 등단을 한 후 단국대학교 대학원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나니 박사가 탐이 났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같이 공부를 하던 사람들 중에 박사 과정에 진학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고, 주변에서 이왕에 시작한 공부를 끝까지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부추기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작가에게 박사 학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회의가 들었다. 학문과 창작을 병행하기에 내 역량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러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기 시작했고, 결국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게 되었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아쉬운 마음이 전혀 없다. 학력에 대한 열등감은 석사 학위를 딴 것으로 해소가 되었으며, 학업에 쏟을 에너지를 창작에 쏟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1999년 MBC 창작동화 공모전의 장편 부문에서 대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그때 상을 받았던 작품은 ≪사과 꽃 피는 언덕≫인데 나중에 ≪할아버지의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이 되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첫 번째 쓴 동화로 등단을 하게 된 것이다. 솔직히 이 작품을 쓸 때까지만 해도 나는 동화가 무엇인지 몰랐다. 문학 수업을 따로 받은 적도 없었다. 그냥 이야기를 좋아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을 뿐이다. 서른일곱 살이 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 시를 쓰는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문학을 경외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생겨났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동화였는데 결국은 아이들을 위한 염원이 나를 동화작가로 만든 셈이다.
늦게 등단을 한 것치고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등단한 이후부터 한해도 빼지 않고 계속해서 책을 내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상 복도 있는 편이었다. 나는 한때 동시를 쓰기도 했는데 2000년도 여름에는 ‘아동문학 연구소’에서 동시 부문 신인상(＜겨울 숲＞ 외 3편)을 받기도 했으며, 2002년도에는 ‘아이세상’에서 공모하는 장편동화 부문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수상 작품은 ≪하모니카를 부는 할아버지≫였다.
현재 나는 경북 영양에 위치한 산골 오지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번잡하고 바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3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이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용감하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정체되어 있는 삶을 싫어하는 것 같다. 생활의 터전을 바꾸고 나니 삶의 방식이 확실히 달라지기는 했다. 요즘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봄이 되면 이것저것 씨앗을 뿌리고 가을이 되면 거두는데, 말이 없어도 자연은 내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현재 나는 놀며 쉬며 에너지를 채우고 있는 중이다. 십수 년 동안 집필 노동자로 바쁘게 돌아치며 살다 보니 내 안의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고 빈껍데기만 남은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는데, 몸을 움직이며 머리를 쉬는 동안 소진되었던 힘들이 다시 생기고, 그 안 이야기가 들어와 움을 틔워 주기를 바라고 있다. 작가다운 작가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지금 적극적으로 쉰다.

작품 연보

1999년 ≪사과 꽃 피는 언덕≫(금성출판사) 출간. 2006년 ≪할아버지의 선물≫(채우리)로 재출간.
2000년 ≪형이랑 나랑≫(유진출판사), ≪꿈을 꾸는 불씨 하나≫(디자인하우스), ≪파란 눈의 내 동생≫(문공사) 출간.
2001년 ≪보물찾기≫(채우리), ≪거꾸로 가는 기차≫(예림당), ≪시계 속으로 들어간 아이들≫(파랑새어린이) 출간.
2002년 ≪춤추는 새≫(계림출판사), ≪작은 낙타 아저씨≫(문공사), ≪하모니카를 부는 할아버지≫(아이세상) 출간.
2003년 ≪몽실이≫(중앙출판사), ≪섬과 개≫(문공사) 출간.
2004년 ≪사자를 찾아서≫(교학사) 출간.
2005년 ≪몰래한 기도≫(중앙출판사), ≪나는 청각도우미견 코코≫(대교출판) 출간.
2006년 ≪형이랑 나랑≫(청어람주니어) 재출간.
2007년 단편동화집 ≪꽃제비와 똥돼지≫(영림카디널) 출간.
2008년 ≪울보대장≫(국민서관), ≪새를 그리는 아이≫(을파소), ≪운영전≫(영림카디널) 출간.
2009년 ≪우리 엄마가 사라졌다≫(아이앤북), ≪개똥이 첫돌 잔치≫(중앙출판사), ≪똥싸개 오줌싸개≫(기댄돌) 출간.
2010년 ≪우리 선생님도 똥 쌌대≫(아이앤북), ≪못 찾겠다 꾀꼬리≫(대교출판) 출간.
2011년 ≪학교 가기 싫은 아이≫(형설아이), ≪예의≫(위즈덤하우스), ≪나 하나쯤 뭐 어때≫(키위북스) 출간.
2013년 ≪천 개의 눈≫(봄봄) 출간.

해설 - 박상재
1956년 2월 3일 전북 장수에서 출생했으며, 전주고등학교와 전주교육대학, 서울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성균관대 교육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단국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전북신문≫과 ≪서울신문≫, ≪경향신문≫ 등에 동화를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1981년 월간 ≪아동문예≫ 신인상에 동화 ＜하늘로 가는 꽃마차＞가 당선되었다. 또한 1983년에는 새벗문학상 공모에 장편동화 ＜원숭이 마카카＞가, 1984년에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꿈꾸는 대나무＞가 당선되었다.
전라북도와 서울의 초등학교에서 33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쳐 왔으며, 35년 넘게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여 50여 권의 창작집을 펴냈다. 아동문학의 학문적 연구와 학회 활동에도 심혈을 기울여 ‘제2차 세계아동문학대회’(서울, 2006) 때에는 집행위원장으로 대회를 이끌었고, ‘아시아아동문학대회’ 등의 대외 활동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현재는 한국글짓기지도회 회장과 한국아동문학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받은 문학상으로는 ‘한국아동문학상’(1993), ‘방정환문학상’(2002), ‘한정동아동문학상’(2008), ‘박경종아동문학상’(2012) 등이 있으며, ≪원숭이 마카카≫, ≪그림 속으로 들어간 아이≫, ≪어른들만 사는 나라≫, ≪개미가 된 아이≫, ≪춤추는 오리≫, ≪꿀벌 삼총사≫,≪통일을 기다리는 느티나무≫, ≪장수골 만세≫, ≪술 끊은 까마귀≫, ≪물새가 된 조약돌≫, ≪도깨비가 된 장승≫, ≪아바타 나영일≫,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고양이≫ 등 많은 동화책과 ≪한국 창작동화의 환상성 연구≫, ≪한국동화문학의 탐색과 조명≫, ≪동화 창작의 이론과 실제≫ 등의 연구서를 펴냈다. 현재는 서울의 초등학교 교감으로 있으며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아동문학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