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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로 본 조선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역사

놀이로 본 조선

규장각 교양총서 12 | 신명과 애환으로 꿰뚫는 조선 오백년

구매종이책 정가19,000
전자책 정가14,300(25%)
판매가14,300

책 소개

<놀이로 본 조선> “그들은 놀 때 가장 빛이 났다”
엄숙한 궁중에서도, 식민지의 빼앗긴 들판에서도
피어난 웃음 문화
삶이자 일탈이었던 조선 놀이의 500년사를 꿰뚫어 정리하다


과연 “노동은 인간의 덕목”이요 “게으름은 신의 특권”인가? 그렇지 않다.
인간은 극단적인 노고 속에서도 흐벅진 유희를 벌였고, 꽃이 피면 술잔을 들고 완상의 모임을 나갔다. 하루 수십 권씩 소설을 읽어가며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꾀했고,
그 놀이의 순간순간을 삶의 아름다움으로 가꾸어나갔다.

조선 사람들은 호모 루덴스였다
현대인에게 놀이란 무엇일까? 멀고도 가까운 과거 조선 사람들에게 놀이는 또 무엇이었을까? 규장각 교양총서 열두 번째 권은 ‘놀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돌아왔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조선’ 하면 떠올리는 것은 ‘유교 국가’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놀이’라는 유희적 성격을 지닌 단어와 조선의 조합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본디 노는 존재, 즉 ‘호모 루덴스’라는 요한 하위징아의 말은 조선인들에게도 해당된다. 조선 사람들은 서로 계급이 달랐지만 놀이를 즐기는 마음만큼은 같았다.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덕으로 여겼던 선비도, 허리 한번 펼 틈 없이 1년 내내 농사를 지어야 했던 농민도 모두 각자의 놀이가 있었고 그것을 즐겼다. 놀이는 삶을 영위하는 하나의 방식이었고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해방구였으며,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이기도 했다.
《놀이로 본 조선》에서는 조선시대의 독특한 놀이, 즉 연잎과 연밥에 술을 담아 빨아 마시는 벽통음, 과거 급제 뒤 정식 관리로 인정받기 전에 거쳤던 면신례, 춤을 추며 궁중에서 즐겼던 공놀이 포구락抛球樂, 질펀하게 놀았던 서민들의 놀이판 등을 다루는 한편 그 놀이가 지니는 사회적 함의를 풀어낸다.
물론 계급 간 놀이 형태의 탐구가 이 책의 전부는 아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고려 말기부터 조선시대, 개화기와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지는 시간축을 통해, 조선과 현대의 놀이가 어떻게 맞닿아 있으며 그 의미는 어떤 것인지 인문학적 고찰을 한다. 더불어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어떤 놀이 문화가 있었으며 또 그 놀이 정세는 우리와 어떻게 같고 달랐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현대사회는 모든 부문에서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무엇이든 쉽게 휘발되는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한 의미의 놀이는 어쩌면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옛사람들의 놀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 또한 어떻게 ‘잘’ 놀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본격적인 농사 전에 몸풀기로 놀아볼까
누구나 알고 있듯이 조선의 농민들은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렸다. 그들에게 놀이는 삶의 해방구였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삶이었던 농사일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었다.
농민들의 놀이는 농한기인 보통 겨울에 집중되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줄다리기나 지신밟기, 석전 등의 놀이가 있었지만 여기서는 근대 시기 머슴과 관련된 농촌의 놀이를 예로 들어본다. 근대에 이르러 머슴들이 농촌 노동력의 중심이 되자 음력 2월 1일에 ‘머슴날’이라는 풍습이 생겼다. 농사를 짓는 집에서 부리게 될 머슴을 미리 대접하는 행사다. 이때 ‘2월 초하루에는 머슴들이 담장을 잡고 운다’거나, ‘2월 영등밥을 먹으면 머슴이 울타리를 붙잡고 운다’ ‘머슴은 삽자루 끝을 잡고, 하녀는 물레를 잡고 운다’와 같은 속담이 생겨났다. 이런 점에서 농민들의 놀이는 휴식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본격적인 노동에 앞서 몸을 푸는 것과 비슷했다. 고된 노동에 들어가기 전 공동체의 집단의식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다.
여름철 명절로는 음력 7월 15일에 찾아오는 백중날이 있었다. 이때 백중장이라는 큰 장이 열렸는데, 머슴 주인들은 머슴에게 장에 나가 놀라며 용돈을 주었다. 그런 까닭에 백중날은 ‘머슴날’ 혹은 ‘머슴생일날’이라 불리기도 했다. 앞서 말한 2월 초하루의 머슴날이 노동 전 몸풀기였다면 백중날은 그야말로 휴일이었다. 백중장에는 ‘난장’이라 하여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큰 장이 벌어졌고, 이때를 틈타 도망치는 머슴들도 종종 있었다.
백중장의 규모가 컸기 때문에 떠돌이 상인과 놀이패들은 백중장을 따라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들은 외부에서부터 들어와 내부를 한 바퀴 돌고 빠져나갔다. 반대로 내부의 농민들은 장을 통해서 외부로 뻗어나갔다. 이 두 가지 흐름이 합쳐지면서, 백중장을 중심으로 지역사회가 형성되었고 체계가 잡혔다. 농민들의 명절이 품고 있는 인문학적·사회학적 면모다.
농민의 명절과 그때 치러지는 놀이는 유희적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모든 놀이의 목적이 유희는 아니다. 농민들의 놀이에는 사회적인 의미가 숨겨져 있다. 이 책은 이런 분석을 통해 명절과 놀이가 함축하는 또 다른 의미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들만의 감성을 꽃피우다-선비들의 꽃놀이
봄이 오면 현대인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꽃놀이를 가자고 약속한다. 꽃놀이는 과연 현대에 생겨난 문화일까?
사실 꽃놀이의 역사는 고려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기의 문신 이승휴는 여름철 장미가 피면 열리는 장미연이라는 연회에 참석한 뒤 이에 대한 시구를 남겼다. 조선이 건국되기 전부터 꽃놀이는 존재했던 것이다. 조선 선비들은 계절에 따라서 각자 다른 꽃놀이를 즐겼다. 봄에는 상화회, 여름에는 피서음, 가을에는 황국음, 겨울에는 난로회가 있었다. 연회 이름이 전부 다른 것처럼 감상하는 꽃의 종류와 노는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그중에서도 여름의 피서음과 가을의 황국음은 독특한 형태를 띤다. 피서음에서는 벽통음이라 하여, 연잎에 술을 담은 다음 연밥과 연잎 사이에 구멍을 내어 술이 통하도록 한 뒤 그 끝을 구부려서 마시는 것이 크게 유행했다. 가을 황국음에는 국화 그림자놀이라는 것이 있었다. 해가 진 뒤 어두워지면, 선비들은 방 안의 물건을 전부 치운 뒤 등불을 켜고 흰 벽에 비춰지는 국화 그림자를 감상했다. 젊은 시절의 정약용은 이에 대해 「국화 그림자 놀이」라는 제목의 글을 짓기도 했다.
이외에도 선비들은 운치 있는 꽃놀이를 위한 규약을 정해두었다. 꽃놀이를 나갈 때 날씨를 개의치 않기로 하고, 옷과 신발을 아까워해 가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벌칙을 내렸다. 이동할 때는 모두 보조를 맞췄으며 그러지 않는 사람에게도 벌칙을 주었다. 꽃구경을 할 때 꽃을 꺾는 사람에게도 벌칙이 있었다. 또 술을 마실 때의 규약도 정해져 있었다. 전원이 술을 마시되 술을 마실 수 없는 사람은 꽃 아래에 술을 붓고 “삼가 꽃의 신이시여 주량을 살피소서. 주량이 정말 적으니, 이 때문에 술을 땅에 붓습니다”라고 사죄해야 했다. 그러나 술을 남겨둔 채 마시지 않는 사람은 벌칙을 받았다. 이런 꽃놀이 문화에는 선비들만이 즐길 수 있는 우아미가 깃들어 있다.

우리는 누구를 위하여 노는 것인가-면신례
유교에서는 효의 한 덕목으로 입신양명을 꼽았다. 조선사회에서 양반계급이 출세하려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놀이 문화로 면신례가 있었다.
면신례는 과거에 급제한 신참 관리인 신래들을 대상으로 행한 놀이다. 이 의례를 치르기 전에는 관리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그동안 신래들은 없는 존재라는 뜻의 ‘귀신’으로 칭해졌다. 그 과정에는 선배들의 희롱과 신체 가혹행위도 뒤따랐다. 시궁창의 오물을 얼굴에 바르고 춤추거나 음담패설을 늘어놓거나 옷을 벗고 땅바닥에서 기어다니는 등 신래들은 선배들로부터 온갖 괴롭힘을 당했다. 엄격한 유교 국가의 예상치 못한 모습이다.
이런 면신례는 엘리트 집단일수록 혹독하게 치러졌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보면, 면신례 역시 집단의식을 공고히 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놀이다. 새로운 사회 구성원들에게 지독한 통과의례를 거치게 하는 한편 함께 겪는 이들에게 동지의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런 의례를 치른 새로운 멤버는 성취감과 소속감을 갖게 된다. 동시에 자기들보다 먼저 사회를 구성하고 있던 선배들을 향한 일종의 존경심이 생겨난다. 한편 기존 사회 구성원들에게 있어 면신례는 그것을 겪었을 당시의 자신의 마음가짐을 돌아보게 만든다. 느슨해져 있던 동지의식이 한층 단단해져, 같은 과정을 겪었으니 우리 모두 하나라는 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조선 전기에 성행했던 면신례는 후기로 가면서 점차 형식화된다. 관료 내부의 계급 분화가 생겨난 것이다. 이제 신래들은 가문의 급에 따라 어울렸다. 변변치 못한 가문의 선배는 후배에게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양상으로 변해갔다. 문과에 급제했다고 다 같은 관료로 칭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조정이 규제하려 해도 규제할 수 없었던 면신례는 선후배 간 위계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조선시대에 발현된 스포츠 뮤지컬의 씨앗
궁궐의 놀이 문화로는 궁중예술인 포구락을 들 수 있다. 수많은 궁중정재가 있지만 놀이와 관련해 주목할 춤은 단연 포구락이다. 여기에는 춤과 공놀이가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 정재와 달리 포구락은 스포츠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포구락은 본디 송나라의 궁중무용이었으나 중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현재로서는 우리나라의 포구락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궁중무용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포구락을 스포츠 뮤지컬의 씨앗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보통 궁중무용은 태평성대를 기원하거나 왕의 무병장수를 노래하는 등 장엄한 내용을 다룬다. 춤사위도 그에 맞춰 우아하고 절제된 몸놀림을 보인다. 그러나 포구락은 다르다. 2인1조로 이루어진 기녀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포구락이 시작된다. 박자에 맞춰 춤을 추다가, 채구라 불리는 작은 공을 무대 한가운데에 세워진 포구문이라는 구멍에 던져넣는 방식이다. 반드시 악사가 박을 쳐야만 공을 던질 수 있었다. 공을 넣으면 상으로 꽃이나 옷감을 받고, 공을 넣지 못하면 벌로 얼굴에 까만 먹점이 찍혔다.
포구락을 보는 관중도 팀을 갈라 응원했다. 두 편으로 나뉘어 경기를 진행하는 것, 응원하는 관중도 팀을 가르는 것, 득점 여부에 따른 상벌 제도가 있는 것, 그리고 무승부로 끝났을 경우 기녀들을 교체하여 다시 공연하는 것, 이것은 현대 스포츠가 마련해 놓은 규칙들과 많이 닮아 있다. 이런 포구락은 궁중무용은 물론이고 민간 무용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형태를 지니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형식을 갖춘 스포츠 뮤지컬은 찾아보기 힘들다. 포구락의 종합예술적 성격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나라는 빼앗겼지만 웃음 문화까지 내주진 않았다
우리 역사에서 일제강점기는 가장 암울한 시기였다. 그렇다면 그 시대의 모든 이가 늘 우울하고 어두운 얼굴로 지냈을까?
놀랍게도 일제강점기 망국의 슬픔 속에서도 재담과 만담의 웃음꽃은 피었다. 1905년 제2차 한일협약 이후 외교권이 박탈당하자 조선에서는 애국심 고취를 위한 계몽서적이 쏟아져 나왔다. 이는 일제의 출판권 탄압으로 인해 곧 고비를 맞았다. 그래서 탄압을 피하고 이윤을 남기기 위해 고소설류가 각광을 받게 되었는데, 이와 함께 재담집도 딱지본 형태로 시장에 유통되기 시작했다.
출판된 재담집은 개화기를 거치며 논설 재담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냈다. 논설 재담은 보통 신문의 논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식과 전후가 서로 다른 양식을 띠고 있는 서사적 논설 재담이라는 두 종류가 있었다. 재담의 주요 주제로는 보통 신문물과 구문물의 충돌에서 느끼는 서민들의 괴리감이나 ‘인텔리’ 등으로 대표되는 신식 교육인들에 대한 비판 등이 있었다.
이 시기에 등장한 소리꾼들이 박춘재와 신불출이다. 박춘재 재담의 가장 큰 특징은 구문물과 신문물의 결합이었다. 박춘재는 자신의 재담에 전통 소리의 가창 방식과 무가의식의 형식을 더하고 이를 익살스럽게 변형시켜 그만의 독특한 재담 구연을 만들어냈다.
신불출의 만담은 일본과 조선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풍자가 담겨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 당시 이러한 재담과 만담이 공전의 히트를 쳤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두운 시대에도 사람들은 결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그 시절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결국 웃음 문화를 지배하는 이들이 승리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재담과 민담은 유희적 성격과 더불어 도피적 성격 또한 강하다. 그와 함께 현실 비판적 성격도 갖고 있다. 현대인들이 바쁜 현실 속에서도 끊임없이 웃긴 글과 그림을 찾아나서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집단이 뭉쳐 외세에 대항해야 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개개인이 각자의 현실에게 대항해야 한다. 앞으로 놀이를 통한 웃음 문화는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 어떤 성격을 띠게 될 것인가? 일제강점기의 웃음 문화를 반추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 프로필


저자 소개

편자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규장각은 조선의 22대왕 정조가 즉위한 해(1776)에 처음으로 도서관이자 왕립학술기관으로 만들어져 135년간 기록문화와 지식의 보고寶庫로서 그 역할을 다해왔다. 그러나 1910년 왕조의 멸망으로 폐지된 이후 그저 고문헌 도서관으로서만 수십여 년을 지탱해왔다. 이후 1990년대부터 서울대학교 부속기관인 규장각으로서 자료 정리와 연구 사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고, 창설 230년이 되는 지난 2006년에 규장각은 한국문화연구소와의 통합을 통해 학술 연구기관으로서의 기능을 되살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규장각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국보 지정 고서적, 의궤와 같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문화 유산, 그 외에도 고문서·고지도 등 다양한 기록물을 보유하고 있어서 아카이브 전체가 하나의 국가문화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문헌에 담긴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토대로 그동안 한국학 전문가들이 모여 최고 수준의 학술연구에 매진해왔다. 최근에는 지역학으로서의 한계를 넘어서 한국학의 세계화, 그리고 전문 연구자에 국한되지 않는 시민과 함께하는 한국학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학술지 『한국문화』『규장각』『Seoul Journal of Korean Studies』 등을 펴내고 있으며 <한국학 자료총서>(총3권) <한국학 연구총서>(총18권) <한국학 모노그래프>(총40권) 등을 펴냈다.

기획 - 박현순

목차

규장각 교양총서를 발간하며
머리글|놀이의 힘을 찾아서

1장 꽃이 사람을 보고 웃어 온 마음으로 가까이하다
_조선 선비의 사계절 꽃놀이 | 이종묵·서울대 국문과 교수

2장 극단적인 노고 속에서 한 판 벌이는 유희
_농민의 일과 삶 그리고 놀이 | 안승택·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

3장 "한글소설이 세상을 현혹한다"
_조선시대의 소설 향유 | 정병설·서울대 국문과 교수

4장 예를 내세운 희롱, 굴욕으로 얼룩진 놀이
_벼슬아치들의 면신례 | 박현순·규장각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5장 질펀한 놀이판, 성속의 존재가 풀어내는 총체적 인간사
_무당굿놀이 | 박종성·한국방송통신대 국문과 교수

6장 포구락, 천 년을 이어온 스포츠 뮤지컬
_스포츠로 본 조선의 놀이 문화 | 심승구·한국체육대 한국사 교수

7장 계절에 맞춰 놀이하는 뜻
_문헌에 나타난 조선의 세시풍속과 놀이 | 박현순·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8장 일본의 놀이, 그 화려한 도안들이 펼쳐내는 세계
_근대 한국에 들어온 놀이 문화 | 김시덕·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9장 빼앗긴 들에도 웃음꽃은 피었다
_식민지 조선의 재담집, 재담 소리, 만담 | 이홍우·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10장 노는 데 진정 도가 튼 아이들
_아시아의 공기, 연, 뱀주사위 놀이 | 편해문·놀이터 디자이너, 놀이운동가

11장 레코드 음반은 문학을 어떻게 바꿨나
_노래로 들어보는 한국문학사 | 이동순·영남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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