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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평의회 / 기사와 죽음 상세페이지

소설 기타 국가 소설

이집트 평의회 / 기사와 죽음

레오나르도 샤샤 소설 국내 초역

구매종이책 정가14,000
전자책 정가9,800(30%)
판매가9,800

책 소개

<이집트 평의회 / 기사와 죽음> 20세기 이탈리아의 양심
‘인간 존엄’과 ‘정의’를 위해 투쟁했던 작가
레오나르도 샤샤 국내 초역


‘진실은 우물 밑바닥에 있다. 우물을 들여다보면 해나 달이 있지만, 우물 속으로 뛰어든다면 더 이상 그곳에 해나 달은 없다. 진실만 있을 뿐.’
_ 레오나르도 샤샤

시대의 명쾌하고 냉정한 비평가, 전후 이탈리아 사회의 윤리와 사상을 이끌며 정신적 지도자로 불린 레오나르도 샤샤의 『이집트 평의회/기사와 죽음』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소설, 시, 수필, 희곡 등 다방면의 작품을 쓴 작가이자 기자, 편집자, 그리고 정치인, 시사평론가로서 일생 존재하는 모든 불의에 저항했던 샤샤의 소설 가운데 초기와 후기를 대표하는 가장 강력한 문제작 두 편을 한 권에 모았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샤샤의 두 소설―18세기 시칠리아 왕국 팔레르모를 뒤흔든 최악의 역사 왜곡 고문서 조작 스캔들 『이집트 평의회』, 살해당한 변호사와 유령 테러 집단의 배후에 도사린 여론 조작 음모 『기사와 죽음』을 통해 독자들은 작품을 넘어 지금의 우리의 현실도 읽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샤샤는 파시즘이 득세하던 시절의 마피아 본거지 시칠리아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이즈음 프랑스 계몽주의와 미국 문학, 반파시즘을 접한 후 범죄와 정의가 때때로 서로의 모습으로 위장하는 시칠리아의 어두운 삶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것도 바꾸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리는 부패한 권력 앞에서, 억압자의 동조자이기를 단호히 거부한 채 펜을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검이라 여기고 수많은 작품으로써 투쟁한다. 그는 소외된 약자들의 굶주림, 사적으로 자행되던 물리적 폭력, 이를 간과하는 사법 횡포라는 시칠리아의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며 궁극적으로는 사회 구성원이 억압적인 현실에서 벗어나 인간 권리를 획득하려는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다.
특히 샤샤는 추리소설, 역사소설, 정치 스릴러 장르를 넘나들며 ‘형이상학적 범죄소설’이라 명명된 독자적인 양식의 문학을 완성시켰다. ‘나는 내 소설에서 너무 많이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라고 이야기하는 그의 형이상학적 범죄소설에서는 범죄의 동기도 사건 발생도 독자가 추이를 쫒아갈 수 있도록 묘사되지 않고, 범인의 정체도 밝혀지지 않으며 혹 밝혀진다 해도 처벌받지 않고 유유히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런 플롯은 작품을 읽으면서 범인을 잡아내려고 애쓰던 독자들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현실에서도 진실 및 정의 탐구를 계속해 나갈 것을 독려하기 위한 메커니즘이다.
또한 빅토리아 시대 작가들이 즐겨 사용한 제사題詞를 통해 소설의 주제를 알레고리로 전하고 있고, 소설 제목 역시 주제와 관련된 의미를 담고 있다. 아울러 소설 속에 등장하는 실제 예술 작품이나 문학작품은 범죄소설의 범인 내지 사건 동기 혹은 사건 발생 상황 등을 은유적이고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이처럼 다양한 그림 및 소설과의 상호텍스트성을 통해 플롯을 이끌어 가는 그의 소설 읽기는 쉽지 않다. 고도의 지적 작업을 즐기는 독자라면 기꺼이 반길 것이다.


출판사 서평

● 거짓은 진실보다 훨씬 더 강하다. 삶보다도 더 강하다. 거짓은 존재의 뿌리에 박혀 있다. 거짓은 생명 너머에 있는 태초의 원시림에 숨어 있다.

18세기 시칠리아 왕국 팔레르모를 뒤흔든 최악의 역사 왜곡 고문서 조작 스캔들 『이집트 평의회』


+++
이 세상에서 진실과 이성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언어학적, 문학적, 사회적 독창성을 띤 사기를 둘러싼 소동을 18세기 말엽 시칠리아라는 거대한 초상으로 엮어 낸 샤샤의 초기 작품 『이집트 평의회Il Consiglio d’Egitto』(1963)는 실제 역사 기록물들을 다시 옮겨 쓴 역사소설이다. 여기서 샤샤는 진실이란 혼란스럽고 오히려 거짓이 진실처럼 여겨질 수 있으며, 오늘 허구였던 것이 내일 비열한 거짓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1782년 12월 시칠리아 왕국 팔레르모. 귀족과 성직자의 특권을 해체시키기 위해 봉건제도와 교회를 개혁하려는 총독 카라촐로는 사사건건 그들과 대립각을 세운다.
소설 『이집트 평의회』는 나폴리 왕국에 파견되었던 모로코 대사가 시칠리아 해안에 난파하면서 시작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대사를 위해 총독은 근방에서 유일하게 아랍어를 할 수 있다는 몰타 출신의 주세페 벨라를 불러 오는데, 그는 미사 집전 ‘신부’이자 꿈 해몽으로 복권 숫자를 알아맞히는 ‘숫자꾼’을 병행하는 인물이다. 변변찮은 처지의 벨라는 대사를 따라다니면서 항상 꿈꿔 온 안락하고 부유한 삶이 현실이 되는 기쁨을 누린다. 그리고 벨라를 이용하여, 시칠리아 역사에 지대한 열정을 가진 고위 성직자 몬시뇰 아이롤디는 수도원에 보존되어 있던 아랍 고서의 정체를 밝히고자 한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은 벨라, 이제 그는 이 아랍 고서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기를 획책한다.
시칠리아와 전혀 상관없는 예언자 마호메트의 삶에 대한 기록은 벨라의 손길이 스치며 대단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시칠리아 평의회』로 둔갑한다. 밑바닥 인생에서 역사를 복원하는 중요 인사로 신분 상승을 이룬 벨라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시칠리아의 과거를 창조해 내기에 이른다. 새로운 고서 『이집트 평의회』의 발견에 귀족들은 대대손손 누려 온 자신들의 특권을 공고히 하는 근거가 되리라 기대하지만, 벨라는 자신의 번역이 그들의 질서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이미 깨달았다. 현재 귀족들이 소유한 봉토와 지위가 과거 왕권 침해의 결과라는 소문이 돌고, 『이집트 평의회』의 번역이 완성되기 전에 귀족들은 마땅히 그러해야 할 가문의 역사를 위해 경쟁적으로 벨라의 환심을 사서 결과물을 조작하도록 애쓴다. 이 과정에서 벨라는 막대한 부를 쌓음과 동시에 수도원장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된다.

한편 소설 『이집트 평의회』의 또 다른 주인공인 변호사 프란체스코 파올로 디블라시는 10년 후 벨라의 몰락과 평행하여 비로소 부각되는데, 이성의 대표자이고 진취적인 자코뱅당의 추종자이며 평등사상의 열렬한 후원자이다. 성공한 프랑스 혁명에 고무된 그는 시칠리아 공화국을 꿈꾸면서 혁명을 일으키지만 실패하고 만다.

샤샤는 실제 사건이나 사회현상을 재해석하여 거의 그대로 작품 속에 옮기는 글쓰기를 했다. 그렇게 다시 쓰인 소설은 간과할 수 없는 위중한 현실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벨라의 사기죄와 디블라시의 국가내란죄―샤샤는 전혀 다른 성격의 두 범죄를 시대의 상징으로 보았고, 이 두 인물은 탐욕, 무지, 최대 권력에 대한 혁신의 대변자 역할을 한다.
우아한 문체로 진실과 거짓, 인간의 욕망에 대해 써 내려간 이 소설은 2002년에 실비오 오를란도와 톰마소 라뇨 주연으로, 에미디오 그레코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 강력한 거짓에 직면한 정직한 사람의 고통스러운 무능력과 반감을, 혼란스러운 죄가 드러나는 대신에 절망적인 무죄가 물러서는 것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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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에 보이고 이름 붙일 수 있고 열거할 수 있는 권력이 있고, 열거할 수 없고 이름도 없고 물밑에서 움직이는 또 다른 권력이 있지. 눈에 보이는 권력은 물밑의 권력과 겨룬다네.

살해당한 변호사와 유령 테러 집단의 배후에 도사린 여론 조작 음모 『기사와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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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안전은 시민들의 불안에 근거한다. 자신들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부패한 권력은 진실을 감추고 시민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샤샤는 후기 작품 『기사와 죽음Il cavaliere e la morte』(1988) 속 세 건의 살인을 통해 이처럼 부패한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의 추악한 단면을 고발했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Ritter, Tod und Teufel>로부터 제목을 따온 이 ‘형이상학적 범죄소설’에서 악마가 빠진 것은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악마의 유혹이 없어도 악을 너무나도 쉽게 자행하기 때문에 악마가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했음을 의미한다.

1989년 이탈리아 북부의 어느 경찰서. 한 남자가 뒤러의 <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를 보고 있다. 그는 뒤러가 그림 속의 기사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인물이 누구인지 떠올리려고 애쓴다.
남자는 이 경찰서의 부서장 비체로, 그날 아침 서장 카포와 함께 산도츠 변호사의 죽음을 수사하기 위해 연합산업 프레지던트 아우리스파를 방문한다. 죽어 있는 산도츠의 호주머니에서 만찬장에서 쓰이는 아우리스파의 지정석용 이름표가 발견되었고, 그 이름표 뒤에는 ‘나는 너를 죽일 거야’라고 아우리스파의 글씨체로 적혀 있었던 것. 이에 대해 아우리스파는 장난이었으며, 산도츠가 살해당하던 저녁에 ‘89년의 아들들’이라는 테러 집단의 협박 전화를 받았다고 증언한다. 이때 산도츠에게 전화가 걸려 온 것은 사실이지만, 통화 내용 자체의 진실 여부는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점을 비체는 간과하지 않는다.
경찰 조직 내에도 복종하는 세력을 가지고 있는 재계의 유력 인사―아우리스파가 비밀스럽게 털어놓았던 ‘89년의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가 어느 순간 언론들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이어 자신이 ‘89년의 아들들’이라며 산도츠를 살해했다고 밝히는 전화들이 걸려 온다. 거물급 인물이 혐의를 받는 상황을 피하려는 카포는 이러한 익명의 전화들을 증거로 보고 ‘89년의 아들들’에게 죄를 물어 수사를 진행하고, 반면에 비체는 ‘89년의 아들들’의 실체를 의심한다. 대외적으로는 친구 사이이나 실제로는 원수지간에 가까웠던 아우리스파와 산도츠에 대한 단서를 확보한 그는 ‘89년의 아들들’을 유령 테러 집단이라 간주하는 한편으로 유령 테러 집단의 존재를 경찰이 인정하면 결국 유령 테러 집단의 이름하에 또 다른 범죄가 벌어질 수 있음을 염려한다.
그리고 이제 경찰은 산도츠 변호사의 살인범이 아니라 테러 집단 ‘89년의 아들들’을 뒤쫓게 된다.

『기사와 죽음』에는 샤샤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일견 간단해 보이나 실제로는 복잡다단하며 수많은 암시로 가득한 그만의 패러디가 있다. 뒤러의 <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으로부터 그는 정의를 추구하다 순교하듯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을 기사로, 세상의 악을 만들어 내는 파괴적이고 부패한 권력은 악마, 곧 죽음으로 패러디 한다. 정형화된 기사와 죽음이라는 개념에 의해 확보된 가치를 문학성으로 재활용함으로써 샤샤 특유의 지성과 아이러니를 발휘하고 있다.
또한 그가 실제로 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며 써 내려간 이 소설에는 자신을 전혀 드러내지 않던 다른 작품에서와 달리 그의 두려움과 감정, 욕망이 숨김없이 묘사되고 있다. 실제로 죽음을 눈앞에 둔 인간적인 작가의 모습은 마찬가지로 폐암에 걸려 사망 선고를 받은 주인공 비체에게 고스란히 투영된다. 샤샤는 자신의 생이 스러져 가는 순간에조차 이탈리아 전체를 뒤덮고 있던 암과 같이 파괴적이고 부패한 권력을 고발하는 소설을 완성했다.

●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는, 89년의 아들들이 산도츠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는가 아니면 산도츠가 89년의 아들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살해되었는가입니다.

■ 추천사


작금의 이탈리아 소설가 중 최고는 아마도 레오나르도 샤샤일 것이다. 악에 대한 백열한 증오, 자유와 이성을 향한 애정은 고요하고 여백으로 가득한 그의 작품 내내 빛을 발한다.
_ 루이지 바르치니(이탈리아 언론인·작가·정치인)

위대한 양심, 이탈리아 시민의 목소리.
_ 조르조 나폴리타노(이탈리아 제11대 대통령)

샤샤는 기만적이고 쉽게만 가려는 조류潮流 속에서 우직하게 자신의 서사, 냉소적인 위트, 은유적인 저류底流를 고수한 최고의 이야기꾼이다.
_ 《타임스》

샤샤의 작품은 웅변적이고 깊이 생각하게 만들며 매섭지만, 섬세한 역설이 있다. 흡사 신탁처럼.
_ 《네이션》

레오나르도 샤샤는 이탈리아의 최상위 작가군群에 속하고 시칠리아 작가로는 단연 최고다. 그의 책들은 명쾌한 동시에 비밀스러우며, 복잡다단한 공공의 주제를 명료하고도 우아하게 다룬다. 또한 스릴러의 보폭으로 움직이면서 시의 울림을 가지고 있다.
_ 《스펙테이터》

샤샤의 산문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와 그의 주인공들 모두가 직면하는 무언의 공모와 자기기만에 그것이 해독제가 되기를 작가 자신이 바라고 있기 때문이리라. 아울러 범죄에 대해 쓸 때, 그는 마찬가지로 진실과 고독,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것에 대해 쓰고 있다.
_ 《옵서버》

■ 책 속으로

[…] “온통 사기요. 역사는 존재하지 않소. 어쩌면 가을이 깊어질수록 나무에서 떨어져 버리는 나뭇잎 세대나 존재하려나? 나무가 존재하고, 새잎이 존재할 뿐이오. 그다음에 그 나뭇잎도 떨어져 버리고,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나무도 사라져 버릴 거요, 불에 타서, 재로 말이오. 나뭇잎의 역사, 나무의 역사라고요. 헛소리! 만약에 나뭇잎 한 장 한 장이 자신의 역사를 쓴다면, 나무가 자신의 역사를 쓴다면 그렇다면 역사라고 말할 테지요…… 당신 조부께서는 자신의 역사를 쓰셨소? 그리고 당신 부친은? 그럼 내 아버지는? 또 내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는……? 그들은 더도 덜도 말고 나뭇잎처럼 땅속으로 떨어져 부패해 버렸소, 역사를 남기지 않고……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가 버릴 거요…… 나뭇잎이 떨어져 나간 뒤 남게 될 나무는, 만약에 남는다면, 가지마다 톱으로 잘려 나갈 수 있소. 가지인 왕, 총독, 교황, 대장, 한마디로 높은 사람들은…… 약간의 불을, 약간의 연기를 피웁시다, 민족, 국가, 살아 있는 인류를 속이기 위해…… 역사? 그럼 내 아버지는? 그리고 당신 아버지는? 그분들의 텅 빈 창자가 꼬르륵거리는 소리는? 그분들의 굶주림의 소리는? 역사에서 들릴 거라고 믿으시오? 그런 소리까지 듣는 귀를 가진 역사가가 있을까요?” […]
_「이집트 평의회」 제1부 8

[…] 강력한 거짓에 직면한 정직한 사람의 고통스러운 무능력과 반감을, 혼란스러운 죄가 드러나는 대신에 절망적인 무죄가 물러서는 것을 들었다. ‘거짓은 진실보다 훨씬 더 강하다. 삶보다도 더 강하다. 거짓은 존재의 뿌리에 박혀 있다. 거짓은 생명 너머에 있는 태초의 원시림에 숨어 있다.’ 어둡고 꺼칠꺼칠한 나무가 길게 늘어선 산마르티노의 길은 더욱 어두운 거짓의 잎을 뻗치고 있었다. ‘뿌리, 잎!’ 그는 종종 혐오스럽게 이미지를 떠올리며 깜짝 놀란다. ‘아이는 숨 쉬듯 거짓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을 믿는다. 그리고 결국, 예수회 신부들이 말하는 야생을 믿는다. 우리는 진실은 역사보다 우선한다고, 역사는 거짓이라고 믿는다. 반면에 거짓으로부터 사람을 사면시키는 역사는 개개인을, 사람들을 진실로 이끈다……’ […]
_「이집트 평의회」 제3부 7

“사실,” 디블라시 변호사가 말했다. “모든 사회가 사기 유형을 만들어 내죠, 말하자면 사회에 맞추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 자체가 사기죠, 법적 사기, 문학적 사기, 인간적…… 그래요 인간적이죠. 심지어 존재에 대한 거라고 말씀드리겠어요…… 우리 사회는 물론, 당연히 정반대되는 사기를 만들어 내진 않았지요……”
_「이집트 평의회」 제3부 9

그는 열이 났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갈증이 났다. 이따금씩 물통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꼼짝할 수 없었다. 판사가 그를 다시 부를 때까지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갈증이 거세질수록 그는 땅에 발을 대려고 안간힘을 썼다. 다른 사람들이 없을 때 그는 살아났다. 다른 사람들. 교도관들, 판사들, 사형집행인이 없을 때 말이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 역시 어느덧 다른 사람들 세상에 속했다. 그가 걷던 그 다른 세상에서는 고통 없이 발이 땅을 디뎠었다. 고문은 그를 절대적으로 고독하게 만들어 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어느덧 이런 면에서도 그와 달랐다, 그들은 걸을 수 있었다. 그에 대한 처벌 때문에 가슴 찢어지는 슬픔에 빠진 그의 어머니조차 그를 고문하는 저 사람들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침대에서 의자로,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그렇게 떠오른 어머니가 조용하고 어두운 집으로 사라졌다, 고독한 모습. ‘시칠리아 사람들은 스페인의 성당 안에 있는 피에타 성모는 괴로워하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스페인 사람들은 고독한 모습이라고 말한다. 스페인 사람들에게 고통과 슬픔은 고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어머니의 고독은 나의 고독이 아니다. 신체적 고통, 신체의 절단이나 손상은 절대적인 특성을 지닌 고독을 부여한다. 더욱 깊은 영혼의 고통으로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이어지던 가느다란 선이 끊어지고 만다…… 너는 영혼에 대해 말했다…… 고문이 너에게 너의 몸이 전부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는데도 정말로 여전히 영혼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가? 너의 몸은 버티었다. 그러나 네 영혼은 아니다. 너의 정신은 몸이다. 그리고 너의 몸은, 너의 정신은, 잠시 후에…… 너와 이 땅이 함께하며 연기와 가루, 그림자로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또 다른 시, 이 시는 네가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던 시다. 그런데 지금은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너는 더 이상 포도주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취한 술주정뱅이 같다. 이전에 그렇게 애착을 가져 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이전에 그랬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지금의 너는 삶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이제 너는 물, 눈, 레몬, 온갖 과일, 온갖 나뭇잎이 뭔지 안다. 마치 네가 그 안에 있는 것처럼, 마치 네가 그것들의 본질인 듯 말이다.’ […]
_「이집트 평의회」 제3부 14

[…] ‘상상하는 것만이 아름답다. 그리고 상상은 기억이기도 하다…… 몰타는 가난하고 씁쓸한 땅에 불과하다, 산파올로가 도착했을 때처럼 사람들은 야만적이다. 그저 바다에서 이슬람 세상의 우화와 그리스도교 세상의 우화를 상상으로 마주할 수 있을 뿐이다.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역사라고 말할 테지만, 나는 우화라고 말한다.’
_「이집트 평의회」 제3부 15

“그런데 그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89년의 아들들이 지금 생겨나고 있는 중이라는 거죠. 허언증 때문에, 지루함 때문에 아니면 적어도 음모를 꾸미고 범죄를 저지르려는 작자들 때문에요. 라디오, 텔레비전 및 신문에서 이 소식을 떠들어 대기 1분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산도츠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도록 시킨 사람의 계산으로 만들어졌어요.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결과를 정확하게 계산하면서 말이죠. 아니 어쩌면 어느 멍청이가 사실이 아닌 89년의 아들들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면서 맞장구칠 최대 효과도 계산했겠네요.”
_「기사와 죽음」

“그 왜는 오래된 예감과 덜 오래된 경고 때문일 걸세. 우리는 그걸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알고는 있지……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필수 불가결한 범죄와 관련된 권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지금보다 더 많이 들었지. 그 권력은 역설적으로 건전하고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지. 오늘날에 권력자들의 범죄는 항상 정신분열증과 비교해서 이해하게 되지. 특히 과시적이고 심미적으로 장식된 그들의 범죄는 자신의 것 이외에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나지…… 그러니 굳이 건강보다 정신분열증을 선호한다고 말할 필요도 없을 테지. 어떤가, 자네도 동의할 거라고 여겨지는데. 정신분열증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사건은 설명 불가능하거든. 가끔씩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만연한 어리석음, 그 어리석음 자체를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지…… 눈에 보이고 이름 붙일 수 있고 열거할 수 있는 권력이 있고, 열거할 수 없고 이름도 없고 물밑에서 움직이는 또 다른 권력이 있지. 눈에 보이는 권력은 물밑의 권력과 겨룬다네. 숨어 있다가 난폭하고 잔혹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에 싸우는 거지. 그런데 사실은 그럴 필요가 있다네…… 자네가 나의 이런 사소한 철학을 용서해 주었으면 싶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권력은 이게 다야.”
“그래서 첫머리의 기사로 나열되는 비밀스럽게 구성된 조직의 존재를 의심할 수 있다는 거로군. 권력의 안전은 시민들의 불안에 근거하니까.”
_「기사와 죽음」

“말씀 잘하셨네요, 사슬고리. 그런데 그 사슬고리는 서장님 말씀과 정반대로 멍청하고 고통스러운 사슬이죠…… 참으세요, 잠깐 제 말씀 좀 들어 보세요…… 이 젊은이는 오늘 아니 어쩌면 내일도, 일주일 동안 아니면 적어도 1년 동안 계속 부인할 겁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파괴적인 89년의 아들들 혁명 집단의 일원임을 인정하겠죠. 후회한다고, 아주 후회스럽다고 고백이라도 하면서 서너 명 정도 동료나 공범의 이름을 대겠지요…… 자신의 지인들 중에 더 호감이 가는 사람을, 아니면 더 싫어하는 사람을 고를지 모를 일이죠. 연구할 만한 심리학적 메커니즘이지요…… 아무튼 그렇게 되면 우리는 또 다른 사슬고리 몇 개를 더 확보하게 되겠죠…… 이 시점에서 어떻게 될지 추측하는 게 너무 쉽잖아요. 우리 요원들이 이 젊은이 주변의 선생, 수위, 커피 전문점 직원, 클럽 관리인, 빵집 주인에 대해 물어 댈 테죠. 기껏 몸서리쳐지는 새로운 소식이라야, 빵집 주인이랑 도서관 사서가 같이 구린내가 나는 것 같다는 정도겠지요. 신문하면서 그들 중에 이 젊은이가 습관적으로 함께 어울리던 이가 더 있는지 알 수 있겠지요…… 행여 그가 말하지 않기로, 이름을 대지 않기로 고집을 부리는 개탄스러운 상황일 때는 수사를 통해 밝혀낸 목록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추려 내겠지요, 그건 일도 아니잖아요……”
_「기사와 죽음」

[…] 아니 어쩌면 세상에서 모든 일이 인플레이션 현상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다. 삶의 통화가치는 매일 떨어졌다. 온전한 삶은 더 이상 그 어떤 구매력도 없는 일종의 공허한 행복감이라는 통화가치를 지녔다. 생각 및 감정의 대비는 쓸모없었다. 참된 것은 이미 도달할 수 없는, 심지어 알 수 없는 미지의 가격을 지녔다.
_「기사와 죽음」



저자 소개

■ 저자: 레오나르도 샤샤LEONARDO SCIASCIA (라칼무토 1921.1.8. ~ 팔레르모 1989.11.20.)
‘진실은 우물 밑바닥에 있다. 우물을 들여다보면 해나 달이 있지만, 우물 속으로 뛰어든다면 더 이상 그곳에 해나 달은 없다. 진실만 있을 뿐.’
시대의 명쾌하고 냉정한 비평가, 전후 이탈리아 사회의 윤리와 사상을 이끌며 정신적 지도자로 불린 작가 레오나르도 샤샤는 파시즘이 득세하던 시절의 마피아 본거지 시칠리아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이즈음 프랑스 계몽주의와 미국 문학, 반파시즘을 접한 후 범죄와 정의가 때때로 서로의 모습으로 위장하는 시칠리아의 어두운 삶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것도 바꾸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리는 부패한 권력 앞에서, 억압자의 동조자이기를 단호히 거부한 채 펜을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검이라 여기고 수많은 작품으로써 투쟁한다.
추리소설, 역사소설, 정치 스릴러 장르를 넘나들며 ‘형이상학적 범죄소설’이라 명명된 독자적인 양식의 문학을 완성시킨 그는 자신의 정치적 양심을 드러낸 연작 『시칠리아의 삼촌들』(1958), 이탈리아 문학사상 최초로 마피아를 고발한 『올빼미의 하루』(1961), 빛을 등지고 있는 역사의 진실을 다룬 『이집트 평의회』(1963), 진실에 대한 회의론을 담은 『남의 것을 탐내지 마라』(1966), 왜곡된 그리스도주의를 공격하면서 우파와 좌파 모두의 책임을 물은 『온갖 방법으로』(1974), 마피아화한 권력층의 위험성을 알린 『기사와 죽음』(1988) 등을 남겼다. 소외된 약자들의 굶주림, 사적으로 자행되던 물리적 폭력, 이를 간과하는 사법 횡포라는 시칠리아의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며 궁극적으로는 사회 구성원이 억압적인 현실에서 벗어나 인간 권리를 획득하려는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다. 아울러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이탈리아의 정의 회복을 위해, 불의에 무감각해지지 말고 진실을 탐구할 것을 촉구하며 끊임없이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도록 독자들을 독려했다.

■ 옮긴이: 주효숙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와 동 대학원 졸업. 이탈리아 페루자 국립언어대학교에서 이탈리아어 교사자격증을 취득했고, 한국외대에서 비교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대 이탈리아어통번역학과에서 강의하면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단테의 비밀서적』『고대 로마인의 24시간』『보스코네로가의 영원한 밤』 등이 있으며, 조반니노 과레스키의 「돈 까밀로 시리즈」 번역으로 이탈리아 외무부 번역상을 수상했다.

목차

이집트 평의회
기사와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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