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정치로 본 프랑스사

중세 말부터 프랑스 대혁명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교육과 정치’로 살펴본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
중세 말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에서 교육과 정치의 상호 영향력을 고찰한 책으로, 특히 프랑스의 정치적 변화 과정에서 교육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따라서 이 책은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나아가 유럽, 서양사, 역사학 전반에 관심을 지닌 여러 독자께 교육과 정치, 정치와 교육의 상관성을 고민해보는 계기를 제공하는 한편 교육과 정치의 길항관계를 파악하고 보다 바람직한 보편적 공교육체제를 만들어 나가길 염원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1부 중세 말과 구체제의 교육과 정치, 2부 혁명기와 19세기의 초등교육 개혁, 3부 제3공화국 교육체제에 대한 몇 가지 비판, 4부 현대 프랑스의 교육과 정치로 구성했다.

프랑스 대혁명, 교육을 바꾸다
중세 이래 프랑스의 교육은 오랫동안 학생을 특수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사고에 지배되었다. 따라서 교육의 기회는 소수에게만 주어졌으며, 대다수 농민은 교육받지 못한 채 문맹의 바다에 갇혀 지냈다. 프랑스에서 교육의 목적과 체계가 직업교육에서 보편교육으로 바뀌고, 교육의 대상이 전 프랑스인으로 확대된 것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늦게 가톨릭 개혁이 출발한 17세기부터다. 우선 보편교육 이념을 받아들인 교회가 소교구 학교를 세우고 민중을 교육의 대상으로 삼았고, 예수회를 위시한 다양한 수도회를 중심으로 콜레주 설립이 유행했다. 그와 더불어 신분 상승 욕망에 가득 찬 부르주아 계층에서 교육 열풍이 불고 왕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귀족도 뒤늦게나마 학교교육에 합류했다.
이후 앙시앵레짐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 건설에 착수한 프랑스 혁명가들이 가장 고심한 문제 중 하나가 교육이었다. 혁명이 절정에 달한 1792년 마침내 혁명가들이 종교교육을 종식하고 새로운 교육체제와 프로그램을 제시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보편교육과 공교육의 길을 열었다. 프랑스에서 교육이 ‘국민의 정체성 형성’이라는 기능적 차원에서나 제도적 차원에서 정치와 직접 결합하고 충돌하며 긴밀한 상호관계를 맺게 된 것도 바로 그때부터다. 혁명 당시 공교육을 자유와 평등의 필수 조건으로 간주한 혁명 세력은 1791년 ‘공교육원회’를 설치하고 최초로 만인을 대상으로 한 보편교육의 전체적인 밑그림과 구체적인 시행 계획안을 제시했다.

혁명 후 현재까지의 프랑스 교육과 정치
하지만 혁명기의 교육개혁 구상이 프랑스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약 9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혁명기의 입헌왕국, 제1공화국, 테르미도르 반동 이후의 보수적 공화국이라는 정치적 변화 못지않게 나폴레옹의 제1제국, 복고왕국, 1830년 7월 혁명으로 탄생한 자유주의적 입헌왕국, 1848년 2월 혁명으로 탄생한 제2공화국, 나폴레옹 3세의 제2제국,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으로 등장한 제3공화국으로 이어진 19세기의 정치체제변화 속에서 보편교육과 공교육의 길이 굳건히 다져지기는 힘들었다.
오늘날에도 교육과 정치는 여러 면에서 상호작용하고 있다. 약 600만 명에 달하는 무슬림 이민자가 존재하는 프랑스에서 아랍어 교육을 선택하는 중고등학생이 극히 적은 이유는 정부의 보편적 동화주의 이민자정책이 학생의 선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국가 지도자가 정권과 체제 유지에 유리한 방향으로 역사교육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례는 자주 나타났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프랑스의 역사와 프랑스인의 정체성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대규모 국책 사업으로 관제 ‘역사 만들기’를 기획했다. 이에 맞서 역사가와 교육단체들은 정치권력과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교육과 정치, 정치와 교육의 길항관계를 표출했다.

교육은 해방의 도구
교육과 정치는 상호보완 관계를 맺으며 발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교육이 정치의 하위 단계에 위치해왔으므로 정치의 역학 구도에 따라 교육의 향배가 달라져온 것이 사실이다. 국가 공동체의 존속과 발전을 뒷받침하는 공교육은 해당 정치체제의 지향과 부합하는 엘리트층을 충원하는 명시적이면서도 내밀한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자아 발전과 개인 해방의 통로인 교육이 때로는 권력 유지의 도구로 기능하기도 한다는 것을 역사는 잘 보여준다. 하지만 “교육은 인격의 완전한 발전과 인권 및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의 강화를 목표로 해야 한다”라는 1948년 유엔 세계인권선언의 한 구절과 “교육은 빵 다음으로 민중의 가장 우선적인 요구다”라는 프랑스 혁명기 당통의 외침은 교육이 해방의 도구여야 함을 여전히 일깨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