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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야

    김자야 프로필

  • 출생-사망 1916년 - 1999년
  • 학력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2019.10.28.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본명 김영한, 기명 김진향. 자야는 연인이었던 시인 백석이 지어준 아호이다. 1916년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나 일찍 부친을 여의고 할머니와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금광을 한다는 친척에게 속아 가정이 파산하자, 1932년 조선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다. 한국 정악계의 대부였던 금하 하규일 선생의 지도를 받아 여창 가곡, 궁중무 등 가무의 명인으로 성장했다.
1935년 조선어학회 회원이던 해관 신윤국 선생의 후원으로 일본에 가서 공부하던 중, 해관 선생이 투옥되자 면회차 귀국하여 함흥에 일시 머물렀다. 1936년 함흥에서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와 있던 청년 시인 백석과 사랑에 빠졌다. 1938년 백석이 함께 만주로 떠나자고 제의했으나 혼자 서울로 돌아왔다. 같은 해에 기자로 다시 서울로 뒤따라온 백석과 재회하고, 청진동에서 살림을 차렸다. 1939년 백석이 만주의 신경으로 떠나면서 이별했다.
1953년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만학으로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스승 하규일의 일대기와 가곡 악보를 채록한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이 있다.
스승 하규일 명인과 연인 백석을 추모하는 사업에 평생 매진했다. 『무소유』를 읽은 뒤 법정 스님에게 시가 천억 대의 서울 성북동 길상사 부지를 시주했고, ‘길상화’라는 법명을 얻었다. 길상사가 문을 연 지 2년 만인 1999년 향년 84세로 별세했다.
숨을 거두기 열흘 전, “천억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느냐”는 이생진 시인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내 사랑 백석>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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