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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건국대학교 대학원 박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석사
  • 경력 세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객원교수
    한국번역학회 회장
    호손과미국소셜학회 회장

2014.12.23.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너새니얼 호손
1804년 7월 4일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의 유서 깊은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선장이었던 아버지 너새니얼 1세가 호손이 네 살 때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의 친정에 들어가 살았는데 폐쇄적인 집안 분위기 탓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고독하고 몽상적인 성향은 아홉 살 때 발을 다쳐서 1년 이상 다리를 절면서 한층 강화되었고 자연스럽게 독서광이 되었다. 1825년에 메인 주에 있는 보든 대학을 졸업한 후 어머니의 집에서 칩거하며 독서와 습작으로 12년을 보냈다. 당시 뉴잉글랜드의 역사, 특히 청교도와 독립혁명 시대에 대해 광범위한 독서를 하면서 자신의 조상들이 세일럼의 식민지 개척과 1690년대 마녀재판에 참여한 것을 알게 된다. 그때 호손은 무고한 사람들을 마녀로 몰아세워 처형하거나 고문한 사람들과 결별한다는 제스처로써 자기 성(姓)의 철자를 Hathorne에서 Hawthorne으로 바꾸었다. 칩거 생활 중이었던 1828년에 첫 단편집 『팬쇼』를 자비로 출간했으나 만족스럽지 못했던지 익명으로 발표했고, 그가 죽은 뒤에야 비로소 작가명이 밝혀졌다. 1837년, 『진부한 이야기들』이 비평적 관심을 끌면서 작가로서의 위상을 어느 정도 가지게 되지만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렸고 1846년부터는 생계유지를 위해 세관에서 근무하게 된다. 3년간 정치적인 격류 속에서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1849년 여름, 직업도 잃고 어머니마저 잃는 비극을 맞이한다. 그 엄청난 충격 때문에 호손은 얼마 동안 심하게 앓았고, 다시 일어난 뒤에 『주홍 글자』(1850)를 써냈다. 이 작품으로 그는 미국 최고의 작가로 인정을 받았고 이듬해엔 『일곱 박공의 집』을, 1852년에는『블라이스데일 로맨스』를 잇따라 내놓으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후 영국의 리버풀 주재 미국 영사로 근무하기도 하고, 이탈리아를 여행한 후에 『대리석 목신』을 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나 건강이 쇠약해져, 다량의 작품 초안이 있었음에도 영국 생활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 한 권 외에는 책으로 내놓지 못하고 결국 1864년 플리머스에서 사망하였다.

역자 - 김지원
연세대학교와 건국대학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각각 받았다. 호손과미국소설학회 회장과 한국번역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듀크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 객원 교수를 지냈고, 현재 세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서로 『전쟁과 인간』, 『블라이스데일 로맨스』(공역) 등이 있고, 연구 논문으로는「미국소설의 아버지로서 호손의 위상」외 다수가 있다.

역자 - 한혜경
연세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건국대학교에서 호손의 서사기법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듀크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 객원 교수를 지냈고,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서로는『블라이스데일 로맨스』(공역), 연구 논문으로「호손의 감추기 미학」외 다수가 있다.

<주홍 글자>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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