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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균

    김성균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숭실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석사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2014.12.30.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소스타인 베블런 (Thorstein Bunde Veblen)
1857년 미국 위스콘신에서 태어났다. 노르웨이에서 이주한 농민의 아들로, 노르웨이와 루터파 교회 문화가 강하게 지배하는 전통적인 북유럽 농촌공동체의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미네소타의 칼턴 칼리지를 3년만에 졸업하고, 다시 존스홉킨스대학교와 예일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해 1884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교수직을 구할 수 없었던 그는 미네소타 주에 있는 아버지의 농장으로 돌아가 7년 동안 거의 독서만 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1888년 베블런은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가문의 엘런 롤프와 결혼했다. 계속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던 그는 1891년 코넬대학교 정치경제학 석사과정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로렌스 래플린의 신임을 얻어 1892년 래플린이 신설된 시카고대학교의 경제학과장으로 추대되었을 때 그의 배려로 경제학과의 펠로가 되었다. 베블런은 39세의 나이(1896년)에 전임강사직을 얻었으나 혼외정사의 추문으로 인한 불화로 학교를 떠나야만 했다. 그뒤 1906년 스탠퍼드대학교의 부교수로 임용되었지만, 3년 만에 또다시 사생활이 문제가 되어 결국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1911년 마침내 미주리대학교에서 낮은 보수로 강사 자리를 얻어 1918년까지 그곳에서 일했다. 1914년 그는 엘런 롤프와 이혼하고 몇 년 간 사귀어온 이혼녀 앤 페슨던 브래들리와 재혼했다. 두 딸을 데리고 있었던 그녀는 딸들을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에 나타나 있는 실용적 사고방식에 따라 키웠다.
베블런은 미주리대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많은 저작을 내놓았던 그는 1918년 2월 베블런은 워싱턴 D. C.의 식량국에 일자리를 얻었다. 그러나 경제문제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이 정부 행정관료들에게는 쓸모가 없어, 결국 5개월도 못 되어 다시 일을 그만두고 말았다. 1918년 가을 그는 뉴욕의 문예·정치 잡지인 『다이얼 The Dial』의 기고가가 되어 '현대적 사고와 새 질서'에 대한 논문을 연재했다. 이 글은 이후 『기득권익과 산업기술의 현황 The Vested Interests and the State of the Industrial Arts』(1919)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행되었고, 다시 『기득권익과 일반인:현대적 사고와 새 질서 The Vested Interests and the Common Man:The Modern Point of View and the New Order』로 재발행되었다.

<유한계급론> 저자 소개

김성균 작품 총 7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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