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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 국적 미국
  • 출생 1942년
  • 학력 델라웨어대학교 역사학/정치학 학사
    시러큐스로스쿨
  • 경력 델라웨어주 뉴캐슬 카운티 의회 의원
    델라웨어주 연방 상원의원
    미국 백악관 제47대 부통령
    바이든 재단 설립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펜 바이든 외교 글로벌 참여 센터 설립
    델라웨어 대학교 바이든 국내정책연구소 설립

2020.10.21.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1942년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서 출생, 1961년 델라웨어 대학교에 입학해 역사학과 정치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시러큐스 로스쿨에 진학했고, 1969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델라웨어주 뉴캐슬 카운티 의회 의원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1972년 델라웨어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현역의원이자 공화당의 거물로 당선이 확실시된 케일럽 보그스에게 과감히 도전장을 내고 출마했다. 모두가 승산 없는 대결이라고 말했던 선거에서 초반 30퍼센트에 가까운 열세를 딛고 득표율 1퍼센트 차로 승리하는 대이변을 이루어냈다. 미국 역사상 6번째 최연소(30세) 상원의원이었다. 그러나 극적인 승리를 거둔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부인 닐리아와 딸 나오미를 교통사고로 잃고 두 아들도 중상을 당한다. 충격 속에서 두 아들의 병간호를 위해 상원의원을 포기하려 했으나, 민주당 지도부의 만류 끝에 1973년 아이들의 병실에서 상원의원 취임 선서를 하고 임기를 시작했다.

1973년부터 2009년까지 36년간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으로 재임했으며, 1987년부터 1995년까지 상원 법사위원장을 지냈다. 또, 두 차례에 걸쳐 상원 외교위원장을 총 4년 역임했다. 1988년 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연설 표절 시비에 휘말리면서 중도 사퇴하는 정치적 좌절을 겪는다. 동시에 뇌동맥류로 쓰러지면서 인생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위험한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재활을 거쳐 1년 만에 정치 일선에 복귀했다. 이후 여성폭력방지법이 통과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대외적으로는 코소보 내전 해결을 주도하는 등 정력적으로 활동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2008년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버락 오바마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지명되어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제47대 부통령을 지냈다. 참신함에 비해 노련함이 부족했던 오바마 대통령을 외교 및 안보 분야의 전문가적 역량으로 8년 동안 보좌하면서 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미국 부통령으로 역대 세 번째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다.

백악관을 떠난 이후 바이든 재단,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펜 바이든 외교 글로벌 참여 센터, 델라웨어 대학교 바이든 국내정책연구소 등을 설립해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202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정치 인생 마지막 도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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