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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식한

    배식한 프로필

  • 출생 1965년
  • 학력 서울대학교 철학과
  • 경력 성신여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2021.07.22.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1965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났다.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자식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부모의 일념으로 초등학교 2학년 때 이미 분가, 대구에서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는 학교에서 하는 시력 검사에서 자신이 색약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과학에 관심이 많았기에 당연히 이과 계열을 지망하려 했던 그의 계획은 무산된다. 누구는 ‘존재의 가벼움’이 참을 수 없다고 했지만, 반대로 ‘존재의 무거움’에 항상 허덕이던 그는 그 대안으로 철학을 선택한다.
1984년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지만 철학은 그의 삶의 무게를 조금도 가볍게 해주지 않았다. 삶은 삶대로 철학은 철학대로 미로였다. 4년을 그렇게 미로를 헤매고 그래도 오기가 남아 대학원 시험을 쳤지만 낙방의 고배를 마신다. 낙방 후 대구에서 보낸 방위 시절, 그는 중요한 깨달음을 하나 얻는다. 대학에서 만났던 사람들과는 전혀 부류가 다른 희망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그는 오히려 삶의 희망을 찾아낸다.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그는 대학원에 입학한다. 철학의 미로 속에서 언어철학, 과학철학, 현상학, 플라톤, 동양의 불교, 노자, 성리학 등을 전전하던 그는 후설의 현상학을 통해 마침내 개안의 빛을 얻는다. “아! 이것이 철학이구나!” 후설이 누누이 권하던 ‘개종’이 일어났다고나 할까?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거부할 수 없도록 선명해지는 순간을 맛보게 하는 개종의 체험은 삶에 의미를 주었지만 철학을 따분한 것으로 만들었다. 뭔가 구체적인 것이 필요했다. 박사 수료 후 강사 생활을 하던 중 때마침 LG전자에서 ‘커뮤니카토피아’란 재미있는 연구소를 만든다기에 그곳에 참가한다. 3년 반 동안의 연구소 생활은 새로운 정보와 경험, 그리고 삶의 활력을 주었다. 그는 다시 학교로 돌아와 박사 학위를 마치기 위해 콰인, 퍼트남, 데이비드슨을 연구했다. 석사 논문으로 〈과학적 설명의 논리적 구조와 분석으로서의 철학 방법론〉을 썼고, 하오 왕의 《괴델의 삶 : 불완전성 정리를 밝힌 천재 수학자》를 옮겼다. 그는 2002년 8월에 〈반실재론을 넘어서서—퍼트남과 데이비드슨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성신여대 윤리교육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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