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 생활과 치과 의사 경력을 거쳐 서른 넘어 하이쿠에 입문한 까닭에 전통적인 하이쿠와는 다른 자유분방한 문법과 발상으로 주목받았으며, 이후 잡지에서 주로 활동하며 신흥 하이쿠 운동의 중심적인 존재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계절어를 사용하지 않는 작품으로 신흥 세력의 면모를 보였으나 전후에는 계절어를 도입하는 작풍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후 문예지 《천랑》, 《전광》, 《단애》 등에서 활동을 이어갔고 하이쿠 협회 설립에 이바지하던 중 위암이 악화하여 이듬해 자택에서 영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