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범학교에서 단가와 《만요슈》를 접하고 낭만주의 시인 시마자키 도손에게 매료되며 본격적인 시작 활동에 돌입했다. 여러 문예지와 신문에 투고하여 담백하고 감상적이면서도 소박한 전원적 어조의 시풍을 인정받으며 신체시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일상과 밀접하면서 사실적인 가풍을 지니며 근대인의 심층 심리를 지적·분석적으로 그려내는 아라라기파의 일원으로, 특히 이상향으로 삼은 자연과 인간의 일체를 적요한 분위기로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위암을 앓다 자택에서 향년 51세를 일기로 삶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