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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니프리드 홀트비 Winifred Holtby

    위니프리드 홀트비 프로필

2023.07.2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1898년 영국 요크셔주 이스트라이딩에서 농부인 아버지와 훗날 이스트라이딩 최초의 여성 의원으로 선출된 어머니 아래 태어났다. 가정교사에게 교육받다가 1917년에 옥스퍼드 서머빌 칼리지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으나, 이듬해 육군 여성 지원군에 자원해 프랑스에 파견되어 제1차 세계대전을 경험했다. 1919년 옥스퍼드로 돌아와 작가이자 페미니스트인 비라 브리튼을 만났고, 브리튼이 결혼한 뒤에도 함께 살며 서로의 창작 활동을 격려했다. 공공연히 스스로가 페미니스트임을 밝혔던 홀트비는 소설가 이전에 저널리스트로서 이름을 떨쳤다. 《타임 앤드 타이드》, 《맨체스터 가디언》 등에 글을 발표했고, 페미니스트 단체인 ‘식스 포인트 그룹’의 일원으로 여성 인권 운동을 펼쳤다. 또 국제연맹 활동 중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열악한 상황을 목격하고 흑인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자신의 유산과 책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 거주구인 소웨토에 남겼고, 이를 토대로 홀트비의 이름을 딴 기념 도서관이 개관했다. 《불쌍한 캐럴라인》(1931)은 개인적인 사랑보다는 사회적인 성공을 꿈꾸는 일흔두 살의 캐럴라인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소설로, 나이 많고 가난한 비혼 여성을 바라보는 편견 어린 시선을 오롯이 포착해낸다. 《불쌍한 캐럴라인》 출간 이듬해에 브라이트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홀트비는 주변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소설 《사우스 라이딩》의 집필에 몰두했다. 1935년 영국 런던에서 생을 마감했고, 1년 뒤 비라 브리튼의 편집으로 출간된 《사우스 라이딩》(1936)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영화와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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