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전남 무안군 몽탄면 다산리 유학자 집안 출생. 1960년 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침술 펼치던 부친이 “침구사가 되어 가업을 이어라”고 권유하여 서울로 유학, 1961년 관인 대한침구학원을 수료했다.1962년 광주에서 부친을 도와 침술치료를 시작하면서 순창의 침구의원 최사문, 종조부 김예형으로부터 전통 침술을 체계적으로 전수받고, 인근 지방을 순회하며 침술을 했다.1968년에는 대한침구학원동창회 전남지부 총무부장을 맡아 침구인 조직화에 힘쓰며, 침구사 제도 시행 활동에 참여했다. 1968년 전남 고흥 출신의 이정엽 여사와 결혼했다.1969년에는 침구사 제도 시행이 지체되자 서울에서 사업을 하며, 침구학원동창회를 중심으로 하는 침구사 제도화 투쟁에 참여했다.1972년부터 침구학원동창회(1973년 한국침술연합회로 개칭) 전남지회장을 맡아 침구사 제도화를 위한 활동에 참여했다.1973년부터 지인과 한약방 공동경영을 하기도 했고, 1975년부터 광주에서 약사인 사촌 형제와 동생과 함께 10여년 간 약국을 경영하며. 부친의 침술원 일을 도왔다.깁갑기 본인과 부친과 모친는 1960년대 중반부터 ‘무면허 침술’이라는 이유로 여러 차례 고발을 당했다. 1997년에는 벌금 300만원에 보호관찰 3년의 고초를 겪기도 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침구사 제도화를 위한 활동을 하며, 선대로부터 이어온 조선 전통 침법의 맥을 잇는 일을 해나가려 하고 있다./1953년 생. 성균관대학교 법률학과 졸업.한국가톨릭 농민회,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등에서 책임자로 활동하며, 농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일해왔다.2010년대 후반부터는 (사)현대사기록연구원의 연구위원으로 사회 각계 인물들의 생애와 활동을 채록하는 일을 하고 있다.손중양 허임기념사업회 이사장과 대학 동문인이라는 인연으로 2000년대초반부터 '침뜸 살리기 운동에 참여하였고, 2007~2010년 허임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역임한 바 있다.현재는 봉사활동단체인 모듬살이연대 대표를 맡고 있다./1958년 생으로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다니던 중 81년 전두환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옥고를 겪었다.『월간 말』 편집차장을 지낸 바 있고, 1992년 경실련에서 시민단체 공동신문 ≪시민의신문≫을 창간, 편집국장으로 활동했다. 1999년 침구사 김남수 선생을 인터뷰 하여 ≪시민의신문≫에 보도하면서 침뜸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후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뜸사랑 사무국장과 정통침뜸연구소 상임이사를 맡아서 '침뜸 살리기 활동'을 전개해 왔다.2005년부터는 조선의 침의 허임의 생애에 관해 조사ㆍ연구하여 논문으로 발표하는 한편, 사단법인 허임기념사업회를 설립해 현재 대표이사로 활동하며 생명건강문화의 창달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문의 침술 : 재야 조선 침구사> 저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