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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도

    안기도 프로필

2025.09.10.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안기도(晏幾道, 1038∼1110)
자는 숙원(叔原)이고 호는 소산(小山)으로 북송(北宋) 무주(撫州) 임천[臨川, 지금의 장시성(江西省) 난창시(南昌市)] 사람이다. 당시 소령의 명가였던 안수의 일곱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그를 ‘소안(小晏)’으로 부른다. 안기도는 평생 관운이 없어 하찮은 몇몇 말단 관직을 거쳤을 뿐이다. 영창부 허전진감(潁昌府許田鎭監)·건녕군 통판(乾寧軍通判)·개봉부 판관(開封府判官) 등을 역임했다. 신종(神宗) 희녕(熙寧) 7년인 1074년에 정협(鄭俠)이 신법 폐지를 외치며 올린 상소 사건에 연루되면서 투옥되기도 했다. 영창부 허전진감을 수행하던 도중에 사표를 내고 퇴직한 후 경성에서 살았다. 부친 안수의 특기인 사 문학 영역에 동참하며 가업을 계승함으로써 사작(詞作)에 출중했고, 사체(詞體)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특히 그 풍격은 안수와 유사하지만 그 조예는 부친을 능가한다. 또한 사작을 통해 그 애정을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그가 쓴 소령은 언어가 청려하고 감정이 진지해 당시에 명성이 자자했다. 모든 작품에서 감정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표현했고 대부분이 애정을 노래하고 있어 북송 완약사(婉約詞)의 주요 작가다. 그의 사작은 《소산사(小山詞)》에 전한다.
안기도는 태생적으로 출신이 양호해, 초반에는 가문의 비호를 받으며 부귀한 생활을 영위했다. 그러나 중년 이후에는 안수의 사망과 함께 집안이 도중에 몰락하면서 빈궁한 처지로 추락했고, 이러한 삶의 변화는 그의 사작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특히 성격이 도도해 빈곤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연분이라도 이용해 현실을 극복하려 하지 않았는데, 황정견(黃庭堅)은 《소산사》 서문에서 이러한 그의 태도에 대해 어리석다고 언급했다. 또한 안기도는 심원한 감정을 소유하고 있어, 타인이 자신을 배신해도 원망하지 않았고 그 누군가를 한번 신뢰하게 되면 그 신뢰에 대해 절대 의심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그의 심성은 연정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표현되고 있다. 이 때문에 안기도의 사작에는 연정에 대한 심정(深情)과 치정(癡情)이 농후하게 드러난다. 특히 안기도 사작의 핵심은 그가 여성의 심정을 터득한 데 있다. 결국 간절하고 진실한 안기도의 애정 의식이 그 사작의 성공적인 안착을 견인한 것이다. 안기도 사에 용해된 성실한 애정 의식 외에도, 그의 사에 활용된 비애 장치는 안기도 사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안기도의 일생은 ‘소년 다복·중년 불우·만년 빈곤’의 순으로 차츰 쇠잔해진다. 안기도가 유독 그의 삶을 부친 안수가 건립했던 소령의 최고봉을 한 단계 더 향상하는 것에 전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곧, 그의 성정과 정서가 사라는 감정 문학에 확실하게 부합할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일그러진 처지를 사작 속에 일정한 유형으로 제시하면서, 독특한 개성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강했던 안기도는 초년의 여유로운 삶에서 익숙해진 사작 활동을 가세가 기운 중년과 말년의 삶까지 가업으로 고수했다. 그리고 그의 성정은 소령의 특징과 정확히 부합했다. 이것이 안기도가 힘든 여건 속에서도 그것을 고수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서 사작의 고수가 단순한 고수가 아닌, 그 삶의 굴곡과 변형으로 전대에는 보이지 않았던 신선하고 개성 있는 풍격과 내용으로 채워져 가작을 생산하며 소령의 또 다른 가능성을 타진한 것이다.

윤혜지
국립 타이완사범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한국외국어대학교와 고려대학교의 외래교수를 거쳐, 현재는 동국대학교 중어중문학과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Chinese Character Culture Education Using Kunming Daguanlou Changlian : As Provided to Korean Students Majoring in the Chinese Language〉(2025), 〈명·청 시기 안휘 동성의 방씨 여성시 고찰〉(2024), 〈중국 고대 여성 작가의 서호시사〉(2023), 〈중국 산동 지역 여성 작가 시 고찰〉(2022), 〈청대 여시인 서소화의 《서도강시》 제재 고찰〉(2021), 〈원대 문언 필기 소설 《춘몽록》 속 창화시사 시탐〉(2020)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고전 시가이며, 최근에는 중국 고대 여성 문학에 중점을 두고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홍병혜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배화여자대학교의 겸임교수와 단국대학교 외래교수를 거쳐, 현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통번역학과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북송말기 소령사의 추락과 착지〉(2025), 〈허난설헌의 내방가사에 드러난 중국적 감성지식의 수용 방식〉(2024), 〈안수가 노래한 염정과 한정, 북송의 아사파를 선도하다〉(2023), 〈당송사 유파 형성의 알고리즘〉(2022), 〈화간사인들의 절대감성〉(2021), 〈《화간집》의 제3인자인 이순 사의 고찰〉(2020)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중국 당·송대의 사 문학 속에 내재한 사인들의 감성에 주목해, 사 문학의 감성을 조명하는 데에 관심을 가지며 이와 관련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소산사>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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