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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

    조진 프로필

2026.01.20.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조선 유학을 대표하는 학자이다.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퇴도(退陶)·도수(陶叟)이고, 본관은 진성(眞城)이다. 지금의 안동 온혜리인 경상도 예안현 온계리에서 여덟 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어릴 때부터 학문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공부에 매진하다가 1523년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1534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하였으나, 을사사화로 넷째 형 이해(李瀣)와 아끼는 동료들을 잃자, 1546년 관직을 사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관직을 받았으나 금방 사임하거나 거절하였다.1560년 도산서당을 짓고 독서와 수양을 하면서,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저술하고 제자를 가르쳤다. 고봉 기대승과 편지로 사단칠정(四端七情)에 관해 토론하고, 율곡 이이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1568년 갓 즉위한 선조가 성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학십도(聖學十圖)』를 만들어 올린 것도 이곳에서였다.퇴계의 학문과 사상은 조목, 김성일, 류성룡 등 260여 명의 제자들은 물론, 지역과 학파를 넘어 조선 유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의리(義理)를 중심으로 한 퇴계의 예학 사상은 정구와 김장생 등에 의해 계승되면서 조선 예학의 큰 줄기를 형성하였다. 그의 학문과 사상은 일찍부터 중국과 일본 등에 널리 소개되었으며, 현재도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1570년 퇴계가 세상을 떠난 이후 제자들이 도산서당 뒤에 서원을 지은 것이 도산서원(陶山書院)이다. 시호는 문순(文純)이며, 문묘에 종사되었다. 저서로는 『퇴계집』, 『주자서절요』, 『송계원명이학통록』, 『심경부주석의』 등이 있다./자는 기백(起伯), 호는 농은(聾隱), 본관은 양주(楊州)이다. 이덕홍 등과 도산서당에 머물면서 퇴계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왕자 시절의 광해군을 도운 공으로 공조판서, 판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1610년 공산목사로 있을 때 퇴계의 문집에서 상제례에 관한 논의가 담긴 글들을 모아 『퇴계선생상제례답문』을 편찬하고 간행하였다./1971년 서울 출생. 서당(書堂)에서 15년 동안 한학(漢學)을 수학한 뒤,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재)한국고등교육재단의 한학연수장학생(21기)과 동양학연구장학생(16기)으로 선발되었다. 고려대학교 강사와 겸임교수(2012년~2020년), 연세대학교 연구교수(2012년~2022년)를 역임했으며, 성공회대학교(2008년~현재)와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설 청계서당에 출강하고 있다. 2023년부터는 강남서당 뇌화재(雷花齋)에서 다양한 동양고전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퇴계선생상제례답문>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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