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기(鄭在虁, 1857∼1919)
본관은 서원(西原), 자는 성로(成老), 호는 성재(省齋)다. 경상북도 성주군 지촌(갖말)에서 문목공(文穆公)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13대손으로 태어났다. 한강을 불천위로 모시는 종가 마을에서 자라며 깊은 가학(家學)을 이어받아 투철한 도학자(道學者)로 성장했다. 어려서부터 총명해 아버지와 외삼촌, 족조(族祖) 고헌 정내석 등에게 사서오경을 두루 수학했다. 특히 《서경》에 정통했으며, 선조 한강이 지은 《심경발휘(心經發揮)》를 평생 손에서 놓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는 수양의 지침으로 삼았다.
그의 삶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실천의 연속이었다. 방문 위에 ‘낡은 습관을 긁어낸다’는 뜻의 ‘괄구습(刮舊習)’ 편액을 걸어 두고 매일 성인(聖人)의 도를 기약했다. 평생 지병으로 고통받으면서도 학문을 향한 열정을 꺾지 않았으며, 한려시비(寒旅是非) 등 가문학을 수호하고 선조를 현창하는 일에 앞장섰다. 또한 숙야재와 회연 서당 등 유풍(儒風)이 깃든 공간에서 강회를 열며 옛 선비들의 길을 따르고자 했다.
성재가 살았던 시대는 서세동점과 일제의 침탈이 이어지던 뼈아픈 망국의 시기였다. 그는 서구 문물의 무분별한 수용을 비판하며, 정학(正學)을 수호하는 위정척사(衛正斥邪)의 길을 굳건히 걸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영남 유림 300여 명과 함께 늑약 파기와 적신 처단을 요구하는 연명 상소에 참여했다. 나아가 1919년, 한국의 독립을 세계에 호소하는 유림의 ‘파리 장서(巴里長書)’ 운동에 서명하며 민족의 대의를 밝혔다.
이 일로 일제의 거센 탄압이 시작되자, 그는 치욕을 견디는 대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정순국(自靖殉國)의 길을 택했다. 파리 장서 운동과 관련된 최초의 순국이었다. 학문적 깨달음을 나라를 향한 충절로 승화시키며 마지막까지 선비의 꼿꼿한 지조를 지켜 낸 그는 남겨진 《성재집(省齋集)》을 통해 난세를 정면으로 돌파한 실천적 지식인의 숭고한 정신을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성재 시문선집> 저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