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섭(金麟燮, 1827∼1903)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자는 성부(聖夫), 호는 단계(端磎), 본관은 상산(商山)이다.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주로 산청 단성에서 거주하며 남명 조식의 학문적 전통을 강하게 계승했다. 정재 류치명과 성재 허전에게 수학하며 학문의 깊이를 다졌다.
1846년, 가문에서 250여 년 만에 20세의 젊은 나이로 문과에 급제해 영남 남인들의 촉망을 받았다. 그러나 세도 정치의 혼란스러운 현실과 자기 수양을 중시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지향 사이에서 깊이 고뇌했다. 결국 한양 소도원에서의 궁핍한 객지 생활을 끝으로 1858년 관직 생활을 미련 없이 청산하고 귀향했다.
그러나 고향에서의 삶도 평탄치 않았다. 1862년 지방관의 탐학과 삼정의 문란에 맞서 부친 김령과 함께 단성 농민 항쟁을 주도했다. 고통받는 백성의 편에 섰으나, 이 사건으로 부친은 유배되고 자신은 태형을 겪는 옥고를 치렀다. 1867년에는 암행어사에게 무단 토호로 억울하게 지목되어 강원도 고성과 통천 등지로 유배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유배지에서도 결코 학자로서의 절개를 잃지 않고 수많은 시를 남기며 지역민과 깊이 교유했다.
1868년 해배된 후에는 고향에 대암 정사(大嵒精舍) 등을 세우고 후학 양성과 저술 활동에 평생을 바쳤다. 특히 남명 조식의 사상을 온전히 보전하기 위해 《남명집》의 임의적인 개간(改刊)을 강력히 반대했으며, 성리학의 본질을 묻는 여러 저술을 통해 유학의 정통성을 수호하려 애썼다.
평생 세속적인 영달보다 학자의 꼿꼿한 양심과 실천을 중시했던 그는, 청춘의 고뇌가 담긴 《학언》을 비롯해 1000여 수가 넘는 시와 방대한 글이 수록된 《단계집(端磎集)》을 남겼다. 19세기 격동의 시대, 영남 유학계를 대표하는 실천적 지식인이자 뛰어난 문장가로서 오늘날까지 깊은 족적을 전하고 있다.
구경아
안동대학교 국학부에서 한문학을 전공했고, 동 대학교에서 〈학봉 김성일의 한시 연구 : 장편고시와 이체시를 중심으로〉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경상대학교에서 〈단계 김인섭의 학문성향과 시세계〉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안동 인근 지역의 유교 문화 콘텐츠에 대해 집필했으며, 동 기관에서 국학 기초 자료 사업 문집 해제 해제 위원으로 10여 년간 활동했다.
경상대학교에서 동학들과 함께 《남명 조식의 문인들》, 《19세기 경상우도 학자들》 상·중·하,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 6, 《조선의 문인, 고양이를 담다》를 번역했다. 한국고전번역원 권역별 거점 연구소 협동 번역 사업에 참여해 《간송집》 1·2, 《겸재집》 2, 《송사집》을 번역했다. 또한 한국국학진흥원 영남 선현 문집 국역 총서인 《도곡집》을 번역했으며, 단역으로는 《봉강집》이 있다.
특히 19∼20세기 한문학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연구 논문으로는 〈단계 김인섭의 유배 배경과 유배시 연구〉, 〈노산 이중인의 삶에 관한 일고찰〉, 〈묵재 김돈의 남명학 계승 양상〉, 〈경와 김휴의 《조문록》 일고찰〉, 〈청향당 이원에 대한 일고찰〉, 〈경와 김휴의 시세계 일고찰〉, 〈면우 곽종석의 기문 연구〉, 〈근대전환기 강우문인의 강좌 기행과 시대 인식〉, 〈단계 김인섭의 《학언(學言)》 연구〉 등 경북 안동권과 경남 진주권의 유림에 대한 인물 연구 등이 있다.
현재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국학 자료 목록집을 만들고 있다. 전국의 문중에서 기탁한 고서와 고문서 등 다양한 고문헌 자료에 대해 해제하고, 문중의 특성을 파악하는 활동을 통해 현실감 넘치는 역사 자료에 매료되어 있다.
<학언> 저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