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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

    에곤 실레 프로필

2026.06.01. 업데이트

(Franz Kafka, 1883-1924)1883년 7월 3일 프라하 구시가지에서 태어났다. 한 살 무렵 어느 밤, 물을 달라고 칭얼대던 어린 카프카를 아버지는 잠옷 차림으로 안마당 발코니에 내놓고 문을 잠갔다. 30년 뒤 카프카는 그 발코니의 기억을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에 정확히 적었다. 그 발코니에 선 아이가 『변신』의 그레고르가 되고, 『심판』의 요제프 K가 되고, 『성』의 K가 된다.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보헤미아 왕국 노동자재해보험공단에 입사해 14년간 일했다. 오후 2시 퇴근. 이 한 가지 조건이 카프카에게 글 쓰는 시간을 돌려주었다. 낮에는 부러진 손가락의 보상금을 계산했고, 밤에는 벌레로 변한 외판원에 대해 썼다. 펠리체 바우어와 두 번 약혼하고 두 번 파혼했다. 1917년 폐결핵을 진단받은 뒤 펠리체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결핵을 ‘하나의 무기(eine Waffe)’라 불렀다. ‘내가 살아 있는 한 그 절대적 필요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둘 다 살아남을 수는 없습니다.’1924년 6월 3일, 빈 근교 키얼링 요양원에서 굶어가듯 숨졌다. 만 40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있었다.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모든 원고를 태워 달라고 부탁했다. 브로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Egon Schiele, 1890-1918)1890년 6월 12일 오스트리아 툴른의 기차역 관사 2층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매독으로 정신착란에 빠진 어느 밤, 가족의 전 재산이었던 철도 채권을 거실 난로에 던져 모두 태웠다. 열두 살 실레는 어머니의 절규 속에서 그 광경을 똑똑히 지켜보았다.열일곱 살에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해 주임교수 그리펜케를에게서 ‘악마가 내 교실에 똥을 싸 놓았네’라는 말을 들었다. 같은 해 당대 빈 화단의 황제 구스타프 클림트를 직접 찾아가 물었다. ‘선생님, 제게 재능이 있습니까?’ 클림트의 대답은 한 마디였다. ‘물론, 너무 많네!’1912년 4월, 노이렝바흐의 한 법정에서 판사는 실레의 압수된 누드 드로잉 한 점을 법정 안 촛불에 태웠다. 채권을 태운 밤의 재현이었다. 실레는 24일을 감옥에서 보냈다. 1915년 발리 노이질을 떠나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했다. 결혼 4일 만에 입대했다. 1918년 10월 28일 임신 6개월의 에디트가 스페인 독감으로 숨졌고, 사흘 뒤 실레도 같은 병으로 그 뒤를 따랐다. 만 28세였다.28년의 짧은 생애 동안 자기 자신을 그린 그림이 100점이 넘는다.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예쁘게 그린 적이 없었다./소설가이자 문화 기획자. 연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졸업. 장편소설 『너는, 어느 계절에 죽고 싶어』(2023)를 비롯한 작품들로 누적 12만 명의 독자를 만났다. 저서로 『최소불행사회』, 『실패의 실력』, 『어쩌면 가능한 만남들』 등이 있으며, 한국 문화 공유 플랫폼 애스크컬쳐(AskCulture)를 창업했다.2024년 강원도 원주 박경리 토지문화재단 창작실에서 '세계문화전집' 시리즈를 구상해 10권까지 초고를 완성했고, 현재 탈고 중이다. 1권 『안부를 전하며: 헤르만 헤세×빈센트 반 고흐』의 핵심 내용은 독일 국제 헤르만 헤세 학회 『헤세 탄생 150주년 기념 학술지』에 한국인 최초로 게재될 예정이다. 세계문화전집 시리즈를 통해 유럽을 비롯한 세계 문학계와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책에는 그의 미발표 단편소설 「청진」이 함께 수록되었다.

<만나지 않은 쌍둥이 : 프란츠 카프카 x 에곤 실레>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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