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 Tolstoy, 1828-1910)1828년 9월 9일 러시아 야스나야 폴랴나의 영지에서 태어났다. 두 살에 어머니를, 아홉 살에 아버지를 잃고 백작가의 고아로 자랐다. 청년기에는 도박과 방탕에 빠져 큰 빚을 졌고, 그 시절의 욕정과 수치를 늙어서까지 일기에 적었다. 그에게 글쓰기는 창작이기 이전에 자기 심문이었다.『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로 세계가 우러르는 작가가 된 뒤, 그는 돌연 방향을 틀었다. 예술도 명예도 거짓이라 선언하고 재산과 저작권을 버리려는 남편과, 열세 아이를 낳은 아내 소피야는 평생 부딪쳤다. 인류를 사랑하라고 쓰는 그의 곁에서는, 그가 아들로 인정하지 않은 티모페이 바지킨이 마부로 늙어가고 있었다. 그 농민 여인과의 관계를 톨스토이는 소설 『악마』에 옮겨 적었지만, 죽을 때까지 발표하지 못했다.1910년 11월, 여든두 살의 톨스토이는 아내와 명성과 저택을 버리고 한밤중에 집을 나섰다. 며칠 뒤 아스타포보라는 낯선 간이역, 역장의 관사에서 폐렴으로 숨졌다./(Auguste Renoir, 1841-1919)1841년 2월 25일 프랑스 리모주의 가난한 재단사 집에서 태어났다. 열세 살에 도자기 공방에 들어가 접시에 꽃을 그리며 밥벌이를 시작했다. 이후 평생 그는 아름다움만을 그렸다. 인상파 동료들이 가난과 냉대에 시달릴 때에도, 르누아르는 볕과 살결과 웃음에 붓을 바쳤다. 그의 그림 속 세상에는 불행이 들어설 곳이 없었다.하지만 화폭 밖, 르누아르의 현실 삶에는 그늘이 있었다. 젊은 시절 모델이자 연인이었던 리즈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첫아이를 버렸고, 둘 사이의 또다른 사생아인 딸 잔은 노르망디에 숨겨 길렀다. 평생 딸에게 생활비를 부치고 혼수를 마련하고 집을 사 주었지만, 끝내 공식적으로는 딸로 인정하지 않고 평생 비밀에 부쳤다. 어느 도록도 걸지 않는 르누아르의 이 그늘은 '행복의 화가'라는 이름 뒤에 가려져 있다.만년의 르누아르는 관절염으로 손가락이 안으로 굽었다. 붓을 손에 묶어 달라 하고서야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렇게 뒤틀린 손으로 그린 그림에도 고통의 흔적은 없었다. 생애 전반 30년은 찢어질 것처럼 가난했고, 후반 30년은 손가락이 찢어질 듯한 고통에 시달렸던 르누아르는 1919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눈을 감기 직전 그는 붓을 청해 머리맡의 꽃을 그리고는 말했다. “이제 뭔가 조금 알 것도 같네.”/소설가이자 문화 기획자. 연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졸업. 장편소설 『너는, 어느 계절에 죽고 싶어』(2023)를 비롯한 작품들로 누적 13만 명의 독자를 만났다. 저서로 『최소불행사회』, 『실패의 실력』, 『어쩌면 가능한 만남들』 등이 있으며, 한국 문화 공유 플랫폼 애스크컬쳐(AskCulture)를 창업했다.2024년 강원도 원주 박경리 토지문화재단 창작실에서 '세계문화전집' 시리즈를 구상해 10권까지 초고를 완성했고, 현재 탈고 중이다. 1권 『안부를 전하며: 헤르만 헤세×빈센트 반 고흐』의 핵심 내용은 독일 국제 헤르만 헤세 학회 『헤세 탄생 150주년 기념 학술지』에 한국인 최초로 게재될 예정이다. 세계문화전집 시리즈를 통해 유럽을 비롯한 세계 문학계와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거장의 사생아들 : 레프 톨스토이 x 오귀스트 르누아르> 저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