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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봉

    경봉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892년 - 1982년 7월 17일

2014.11.07.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경봉 큰스님
경봉스님은 1892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김용국金鏞國, 경봉은 호, 시호는 원광圓光. 어려서부터 하늘이 내린 재목으로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는데, 7살 때 사서삼경을 익혔다. 15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1907년 양산 통도사 성해聖海스님 밑에서 출가 득도하였다. 1908년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에서 청호淸湖스님을 계사戒師로 사미계沙彌戒를 받았다. 1912년 4월 해담海曇스님에게서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았으며, 이후 강원에서 경전 연구에 정진하였다.
어느 날 경전을 보다가 "하루종일 남의 보물을 세어본다고 해도 단 반푼의 이익도 없다[終日數他寶 自無半錢分]"는 구절을 보고 문득 깨우친 바 있어 내원사內院寺를 찾아 혜월慧月스님에게서 법을 구하는 등, 해인사 퇴설당, 금강산 마하연과 석왕사 등 전국의 선원을 다니면서 수행하였다. 이후 통도사 극락암으로 자리를 옮겨 3개월 동안을 장좌불와長坐不臥하였다. 스님은 동시에 화엄산림법회에서 법주法主 겸 설주說主를 맡아 정진하였고, 1927년 11월 20일 새벽에 방안의 촛불이 출렁이는 것을 보고 크게 깨달았다 한다.
1930년 2월 통도사 불교전문강원의 원장으로 취임한 뒤, 50여 년을 지냈다. 1935년 통도사 주지, 1941년 서울 안국동에 있는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 이사장, 1949년 4월에는 다시 통도사 주지를 역임하면서, 전국의 선승들을 지도하여 선풍을 크게 떨쳤다. 1953년 통도사 극락선원 조실로 추대되어 입적하던 날까지 이곳에서 설법과 선문답으로 법을 구하러 찾아오는 불자들을 지도하였고, 동화사桐華寺·내원사內院寺 등 여러 선원의 조실도 겸임하여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스님은 속랍 90이 넘은 뒤에도 사자좌에 오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통도사가 오늘날의 웅장한 대 가람을 이루기까지 쉼 없이 불사를 봉행하였다. 1982년 7월 17일에 "야반삼경夜半三更에 대문 빗장을 만져보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법어집인 《법해法海》·《속법해續法海》와 시조집인 《원광한화圓光閒話》, 유묵집인 《선문묵일점禪門墨一點》, 서간집인 《화중연화소식火中蓮花消息》 등이 있다.

역자 - 명정스님
경봉스님의 효행상좌. 17세에 출가한 이래 경봉 큰스님을 모셨고, 현재 통도사 극락선원에서 선승들과 깊이를 모를 일상 삼매三昧에 빠져 있다. 저서로는 《차茶이야기 선禪이야기》, 《삼소굴 소식》, 《편지》,《마음 꽃》 등이 있다.

<니가 누고?>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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