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박경희
나를 도대체가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출생의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희대학교 병원에서 태어나서 경희라고 지었다는 책 내용을 쓸 수도 없다.
그래, 나는 보령 촌년이다. 어린 시절 차령산맥 끝자락에 있는 성주산을 넘나들며 볏섬을 이고, 지고, 나르고, 농약 줄에 휘둘리다가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다. 그냥 보리가 패면 손으로 훑어다가 구워 먹었고, 시커먼 입술을 손등으로 쓰윽 문지르며 방앗간 참새마냥 짹짹거렸다. 흘러간다고 흘러간 곳은 대학이었다. 물이 어디 머물러 있기를 바랄까. 대학물에서 소용돌이 속에서 뱅뱅 돌다가 날아가 뚝 떨어진 곳은 절이었다. 절 생활 4년 만에 하산하여 집에 돌아온 지 일 년 만에 아부지가 돌아가셨다. 아부지. 시집 《벚꽃 문신》에서 아부지는 벚꽃으로 흩날리며 살아 계신다. 내가 당신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니.
지금은 약을 밥처럼 드시는 엄니와 산다. 늙은 과부와 노처녀 딸년이 있는 대로 정이 들어 산다. 이부자리에 누워 달빛을 받으며 구시렁구시렁 삶의 고개 넘어간다.
<꽃피는 것들은 죄다 년이여> 저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