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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해

    용서해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경력 용서해 야생이플농장 대표
    서울시립교향악단 플루티스트

2015.02.11.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용서해

열일곱 살에 음악 공부를 위해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십대의 마지막 몇 년을 파리에서 유학 생활하면서 달콤한 쇼콜라(초콜릿)에 바게트 빵 찍어 먹기를 좋아했고, 이십대에는 때로는 이방인처럼, 때로는 이기적인 파리지앵처럼 지내다가도, 또 때로는 젊은 보헤미안이나 망명 예술가를 상상하며 파리의 길거리 카페에 앉아 있는 것을 즐기기도 했다.
보봐르와 샤르트르의 계약 결혼을 이해하려고 했고, 동성애자들의 모습을 보면서는 우주적인 영혼의 자유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파리의 유명한 빵집 푸알란의 빵으로 만든 크로크 무슈 토스트의 맛을 본 뒤로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음악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플루티스트로서 24년 동안 활동하면서 국내외에서 다양한 공연을 했다. 음악가로서의 삶도, 일상적인 삶도 비교적 만족스러웠으나, 동시에 그 긴 시간은 연습, 집, 공연, 다시 연습, 집, 공연이 이어지는 판박이 같은 생활에서 진정한 나를 찾고 삶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고자 내면적으로 깊이 파 들어간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호스피스 센터에서 임종 직전의 암 환자 한 사람만을 위해 연 주하게 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하고 특별한 느낌을 받는다. 멋있고 화려한 무대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벅찬 감정을 맛보면서 비로소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 후 일주일에 한 번씩 호스피스 센터에서 말기 암 환자들을 위해 그들이 원하는 음악을 연주하는 호스피스 음악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말기 암 환자들이 먹는 문제로 가장 힘들어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호스피스 요리에 관심을 갖고, 파리 유학 시절의 꿈이기도 했던 요리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재료의 맛과 향을 그대로 살려서 요리하는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고, 우리나라에 분교가 있는 프랑스 요리 학교 ‘르 꼬르동 블루’에 들어가 체계적인 요리 공부를 했다.
그 후 ‘사랑의 테이블’ ‘삶의 마지막 축제’ 등의 자리에 말기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을 초대해, 함께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용서와 화해, 평화 속에 보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했다.
지금은 우리 땅의 맛과 향기와 얼과 추억이 깃든 야생 식물을 이용해 말기 암 환자들의 치유에 도움이 되는 호스피스 음식을 더욱 본격적으로 만들고 싶어, 강원도 깊은 산

<삶의 마지막 축제>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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