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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무라 간조

    우치무라 간조 프로필

  • 국적 일본
  • 출생-사망 1861년 3월 26일 - 1930년 3월 28일

2017.05.0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일본의 대표적인 기독교 사상가이자 사회 사상가. 메이지유신 100주년을 맞아 ‘일본 근대화의 발전에 기여한 20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된 바 있다. 1877년 삿포로 농학교에 들어가 1881년 수석으로 졸업했고, 1884년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주립 지적장애인 시설의 간호부로 근무하다 이듬해 애머스트 대학교와 하트퍼드 신학교에서 공부했다. 1888년에 귀국하여 도쿄 제일고등학교의 교사로 재직하던 중 1891년 [교육칙어]에 대한 불경죄로 해직되었고, 이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1897년에는 일본 최대 일간지 [만조보万朝報]의 영문판 주필을 맡았으나,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고 언론사가 정부의 기관지로 전락하자 사직하고 만다. 이후 [동경독립잡지]와 [성서 연구] 등을 통해 반전운동과 성서 연구에 매진하다 1930년에 세상을 떠났다.
"기독교 신앙의 유일한 근거는 성서일 뿐이며, 교회와 그 관습은 기독교를 담아내는 껍데기"라고 보았던 그는 무교회주의 기독교 사상가를 많이 길러내어 현대 일본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김교신, 함석헌, 송두용, 최태용 등에게도 사상적 영향을 미쳤다. 저서로 《구안록求安錄》(1893), 영... 문으로 쓴 《회심기How I Became Christian》(1895) 외 다수가 있다.

<구안록>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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