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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란

    김혜란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 박사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 학사
  • 경력 부산외국어대학교 어문학연구소 연구교수
    고려대학교, 충북대학교 강사

2014.11.26. 업데이트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1860년 러시아의 항구 도시 타간로크에서 태어났다. 1867년 타간로크의 김나지움에 입학하지만 수학 및 지리 성적의 부진으로 낙제했다. 열세 살 무렵 오펜바흐의 오페레타와 「햄릿」, 「검찰관」 등의 연극을 관람하며 예술에 흥미를 느꼈다. 1876년 4월 식료품 가게를 경영하던 아버지의 파산으로 일가족이 모스크바의 빈민가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체호프는 고향에 남아 고학으로 김나지움을 마쳤다. 1879년 모스크바 대학교 의학부에 입학하면서부터 잡지 등에 글을 투고하기 시작했고 1882년부터 5년에 걸쳐 유머 주간지 「오스콜키」에 약 300여 편의 소품을 기고했다. 1884년 의사로 개업한 뒤 본격적인 창작 활동에 접어들었으며, 검열과 잡지사의 무리한 요구 등에도 불구하고 「관리의 죽음」(1883) 「카멜레온」(1884) 「하사관 프리시베예프」(1885) 「슬픔」(1885) 「거울」(1885) 등과 같은 풍자와 유머와 애수가 담긴 뛰어난 단편을 많이 남겼다. 1886년 두 번째 객혈과 1888년 소설가 가르신의 자살 등으로 건강이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890년 사할린으로 자료 수집 여행을 떠났다. 이태 만에 모스크바로 돌아온 체호프는 멜리호보라는 마을에 정착해 창작을 계속하며 원숙기를 맞이했다. 1899년 결핵 요양을 위해 크림반도의 얄타 교외로 옮겨갈 때까지 「결투」(1892), 「귀여운 여인」(1899),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1899) 등 소설과 그의 4대 희곡 중 첫 작품 「갈매기」(1896)를 발표했다. 이어서 「바냐 삼촌」(1897), 「세 자매」(1900), 「벚나무 동산」(1903) 등의 희곡을 집필했다. 1904년 마흔넷의 나이에 병세의 악화로 “나는 죽는다.(Ich sterbe.)”라는 말을 남기고 운명했다.

<체호프 희곡선> 저자 소개

김혜란 작품 총 3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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