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디북스 접속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강제 새로 고침(Ctrl + F5)이나 브라우저 캐시 삭제를 진행해주세요.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리디북스 접속 테스트를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 방법을 안내드리겠습니다.
테스트 페이지로 이동하기

노만수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 경력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 초빙교수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동아시아권 전문번역가
    경향신문 기자

2014.11.26.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일본 유학의 대성자로 일컬어지는 ‘백세(百世)의 홍유(鴻儒)’ 사토 잇사이는 에도 시대 최고 학문 기관인 쇼헤이코(昌平黌)의 최고 책임자였다.
그는 어린 시절, 밤에 유흥가로 나가 취객을 때리고 도망치거나 한 제법 난폭한 사무라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어른이 될 무렵 분연히 뜻을 세우고 수양에 전념하여 이른 장년기에 학문이 원만한 군자로 불리게 되었다. 나이 70세였던 1841년 11월 쇼헤이코의 주칸이 되었고, 그의 학덕은 날로 높아져 세상의 태산북두로 불리며 경앙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이 무렵 쇼군 도쿠가와 이에요시(德川家慶)에게 「역경」을 강의하였다. 또한 그에게 강설을 청하는 다이묘들이 수십 명에 달했다. 막부의 요청으로 시무책을 올리기도 하였고, 1854년 미일화친조약이 체결될 때에는 하야시 후쿠사이를 보좌해 외교문서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그가 살아 있을 적에 출판되어 대중들이 접할 수 있었던 「언지록」과 문집 「애일루문시」를 비롯해 90여 권이 있다. 1859년 여름 무렵 병에 걸려 9월 23일 밤에 쇼헤이코 관사에서 향년 88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언지록> 저자 소개








본문 끝 최상단으로 돌아가기

spinner
모바일 버전